지역 비정규직 연대운동 활성화를 위한 제언[30호|특집1]

비정규직 노조 조직화의 성장, 상대적으로 부진한 비정규직 연대운동

비정규직 조직화가 본격화된 지 6년여가 지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구성된 노조의 양적 성장이 이루어졌다. 현재 민주노총에 소속된 비정규직 조합원의 숫자가 6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비정규노조의 증가와 함께 비정규노조 연대체 구성도 증가해왔다. 2000년 서울비정규대책회의와 2001년 서울본부비정규연대회의 구성, 2002년 특수고용 대책회의, 2003년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 구성 등 비정규노조의 지역별,고용형태별 연대체가 조직되었다. 지역에서도 비정규노조 연대체의 구성과 활동이 계속 이어져왔고, 현재 서울, 경기, 강원, 충북, 대전, 전북, 대구, 부산 등에 비정규노조 연석회의 혹은 연대회의가 구성되어 있다.

초기에 비정규노조 연대는 투쟁사업장들의 품앗이투쟁에서부터 출발했다. 대부분의 비정규노조가 결성과 동시에 계약해지(해고),폐업 등으로 사업장 밖으로 내몰려 장기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형편에서, 서로의 처지와 서러움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던 비정규노조들의 연대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서로 부족한 조직력을 보태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고용형태별로 공동대응을 위한 연대체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노동법상 노동자성 인정’이라는 공통의 요구를 가진 특수고용 노조들이 가장 먼저 대책회의를 구성하였고, 이어 사내하청,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들이 연대체 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고용형태별 비정규연대체는 품앗이투쟁을 넘어서 공동요구 마련,공동대응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반면 지역 차원의 비정규 연대체는 부침을 거듭해왔다. 대부분의 지역 비정규연대체가 구성과 재구성을 반복하고 있지만, 대표자회의마저도 안정화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현재 서울, 경기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회의체가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 가동은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비정규노조의 결성이나 투쟁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작년부터만 따져 보아도 사내하청노조의 결성과 파업, 공공부문 비정규노조의 결성, 울산플랜트노조의 파업투쟁, 전국건설운송노조 덤프연대의 파업투쟁 등 비정규노조의 조직과 투쟁은 활성화되고 있다. 비정규노조의 조직과 투쟁이 계속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비정규연대운동은 오히려 침체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 비정규 연대활동이 부진한 원인

우선 대부분의 지역 비정규연대체의 구성과 운영이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비정규직 관련 사업 부침에 따라 함께 부침을 겪을 정도로 자활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경우 비정규직 관련 사업 전담자를 두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고, 지역의 미조직특위와 비정규연대체의 역할이 구분되지 못하면서, 미조직특위가 가동되면 비정규연대체가 활동 중단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노조의 입장에서는 ‘가야 할 회의’가 하나 더 늘어난 정도로 느껴지거나 ‘왜 지역 비정규연대체 활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지역 비정규연대체의 활동이 민주노총 비정규 관련 사업의 집행 수준으로 축소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기에 지역 비정규연대운동이 부진한 원인을 해명하는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오히려 지역의 비정규노조가 늘어나고 민주노총 지역본부 사업에서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역 비정규연대운동은 활성화되지 못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서 비정규노조의 구성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역에 존재하는 비정규노조의 유형을 크게 분류해보면 첫째, 화물연대, 학습지, 건설운송 등 전국업종노조(소산별노조)의 지부,분회인 경우, 둘째, 사내하청 등 제조업 산별연맹 소속 노조인 경우, 셋째, 공공서비스노조, 학교비정규직, 문화예술노조 등 공공연맹 소속 노조인 경우, 넷째 지역일반노조, 지역건설노조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요컨대 지역일반노조를 제외하고 지역에 존재하는 비정규직 노조의 대부분이 전국업종노조의 지역조직이거나 산별연맹에의 의존도가 높은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이처럼 지역적으로 비정규노조 구성이 변화하면서 비정규노조 스스로가 지역적 연대보다도 상급조직과의 관계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이 생긴 것이다. 조건이 이렇다보니 비정규노조(조직)가 지역의 다른 비정규노조의 투쟁에 연대하기보다 중앙상경투쟁에 더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조건의 변화는 비정규노조운동의 성장을 일정 정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비정규노조의 투쟁이라는 것이 아무리 개별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하더라도 곧바로 자본의 완강한 벽과 공권력의 탄압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개별 비정규노조(조직)가 산별연맹질서 속에서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것은 분명 발전적 측면이 있다.

문제는 비정규노조 내부에서 점차 사업장의 현안에 매몰되고 ‘연대’ 보다는 자기 투쟁에 대한 물리적 지원에만 관심이 몰리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비정규노조운동 초기부터 있어 왔다. 아무리 소박한 요구를 걸고 개별적인 사업장에서 비정규노조가 조직되더라도 처음부터 자본과 공권력의 융단폭격을 경험해야 했던 상황에서, 비정규노조가 자기 사업장 현안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최근에 변화된 조건이 있다면, 여전히 많은 비정규노조가 이러한 탄압에 시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노조의 유지가 이루어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임금․노동조건 등 사안에서는 일정하게 교섭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반면 부당해고․부당노동행위는 여전히 극심하게 자행되고 있고 이로 인해 노조가 내적으로 위축되거나 존립이 위태로운 것은 여전하다. 말하자면 비정규노조가 ‘비정규직’이라는 존재형태를 건드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노조 조직 자체를 유지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조차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합원과 노조의 괴리, 현장 활동의 빈곤이라는 문제가 놓여 있다.

결국 현재 지역 비정규연대운동이 부진한 데에는 비정규노조 공동투쟁의 내용이 부족하고, 개별 사업장에서의 ‘노동조건 개선과 정규직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운동의 방향성이 부재한 것이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역 비정규연대운동의 부진이라는 현상은 개별 현안을 넘어선 전체 비정규연대운동이 약화된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역 비정규연대운동의 상과 역할

이제 비정규연대운동은 품앗이투쟁을 넘어설 것을 요구받고 있다. 비정규노조의 투쟁은 여전히 자본의 완강한 태도, 공권력의 폭력, 법·제도적 배제라는 겹겹의 장애에 둘러싸여 있다. 건설비정규직노동자의 인간선언이자 노동자선언이었던 울산플랜트노조 투쟁이 너무나도 정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계엄을 방불케 하는 폭력을 당해야 했던 것이 지금의 현실이고, 원청의 부당노동행위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사용사업주와의 교섭이 가로막힌 사내하청노조의 모습이 바로 노동기본권을 박탈당한 비정규직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역 비정규연대운동의 상과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선 무엇보다도 자본과 노동의 대리전의 성격을 띤 상징적 투쟁에서 노동운동의 역량을 집중하여 승리하는 경험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원CC노조 투쟁에 대한 경기지역본부의 간부파업, 대성MPC지회 투쟁에 대한 충남지역본부의 연대파업,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투쟁에 대한 충북지역본부의 지역총파업 결의, 울산플랜트노조 투쟁에 대한 울산지역본부의 지역총파업결의 등은 최근 지역 연대운동의 발전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의 연대투쟁에 비정규노조들이 선도적으로 결의하고 모범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비정규노조 공동투쟁을 기반으로 지역의 노동운동이 힘을 결집하도록 하는 것이 지역 비정규연대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연대투쟁,공동투쟁에 있어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 요구’를 전면화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예전에 사업장과 지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 사수’가 공통의 요구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비정규노조의 투쟁은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쟁취, 나아가 역사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쟁취해 온 노동기본권을 보다 보편화하는 투쟁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한원CC노조의 사례를 보자. 골프장의 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인 경기보조원이 하나의 노조로 조직되어 임단협을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에서 이를 깨고 일방적인 용역 전환을 강행하며 조합원에 대한 해고,구속,용역깡패 동원 폭력행사,각종 가처분,가압류 등 온갖 탄압을 자행하였다. 이렇게 특수고용 노동자의 조합 가입을 막기 위해 이미 체결한 임단협도 깨버리거나, 법원의 근로자성 확인이 있을 때까지만 조건부로 단협을 맺는 사례들은 비(非)노동자화 전략, 노동기본권 말살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조들의 사례는 어떠한가? 노동부로부터 사내하청 전체가 불법파견 판정을 받을 정도로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사용자로서의 위치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는 법·제도적 모순을 활용하여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도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 조합원에 대한 감시․사찰이 일상화되고, 백주 대낮에 노조 대표자가 폭력 연행되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당한 단체행동에 대해 수백 명의 회사 경비대가 폭력을 행사하고, 부당해고․가처분․가압류를 남발하면서도 사용사업주가 어떠한 법적 제재도 받지 않는 현대자동차의 상황을 보면, 이것이 단지 비정규직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실은 민주노조가 현장에서 자신의 역량을 잃어가고 자본의 통제력이 전면화되고 있는 모습은 아닌가?

비정규노조 투쟁을 노동기본권의 확장 및 실질화라는 관점에서 의미를 살리고, 연대투쟁 속에서 그러한 요구를 부각시키는 것이 비정규연대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지금 요구되는 것이다.


지역 비정규연대체 활성화를 위한 고민

이렇게 ‘노동기본권 쟁취’를 전면에 내걸고 상징적인 투쟁에서 힘을 집중하여 승리하는 비정규연대운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도 대단히 의식적인 역량투여와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노총의 사업을 전달․집행하는 회의체 수준에서 나아가 비정규 노조운동 주체를 묶어세우고 고립 분산되어 있는 비정규투쟁을 공동의 요구로 모아내기 위해서는, 지역 비정규연대체 구성과 활동에 그만큼 의식적인 역량 투여가 있어야만 한다. 실제로 지역 비정규연대체를 담당하는 의식적인 운동주체가 있는가 여부에 따라 비정규 연대운동의 활발함 정도가 좌우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조직 활동가를 양성하고 의식적인 역량 투여를 해야 한다는데 운동진영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온 것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연대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의식적인 역량 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운동역량 배치와 함께 구체적으로 어떠한 실천들이 필요한가?

우선 비정규노조들이 상호소통할 수 있는 실천이 필요하다. 연대운동의 기본 전제는 상호 투쟁요구에 대한 이해이다. 비정규직 내부도 고용형태에 따라 나뉘어져 서로의 존재조건과 기본적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고용형태 안에서도 이러한 이질감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간접고용 노동자 내부에서도 사내하청과 공공부문의 용역노동자가 서로의 존재조건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거꾸로, 종사하는 업종이 달라도 사내하청 노동자가 건설플랜트노동자의 처지를 쉽게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경우이든 비정규직 상호간의 이해와 소통은 연대투쟁 조직화를 위한 출발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정규직노조들의 상호소통과 교류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일상적 연대활동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조합원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를 선전하는 내용이 꾸준히 각 노조의 매체에 실릴 수 있도록 하는 것, 노조 간 상호방문 및 공동 간부교육 등이 있을 수 있다. 서울비정규연대회의의 경우 비정규노조 간부교육을 공동으로 기획하여 하반기에 진행할 예정이다. 또 대표자회의와 함께 서울비정규연대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노조들의 조직화 현황을 공유하고 투쟁에서 부딪치는 문제점들에 대해 집단적으로 분석하는 ‘조직진단 논의’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대구비정규연대회의의 경우 공동간부교육을 진행한 바 있고, 얼마 전 결성된 경기비정규연대는 분기별로 주제를 잡아 지역토론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지역 비정규연대운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전국단위 비정규노조의 의식적인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화물연대, 건설운송노조, 공공서비스노조, 사내하청노조 등과 같이 일정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고 전국적 체계를 가진 비정규노조들이, 지역 비정규연대체 활동에 해당 노조의 지역조직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국단위 비정규노조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조합원 규모는 일정하게 성장하고 있는데 비해 지역조직 자체의 역량이나 현장투쟁은 아직 미약한 경우가 많다. 지역 비정규연대운동에의 적극적 참여는 비정규노조 지역조직의 현장투쟁력을 강화하고 조합원의 의식과 실천을 상승시키는데 있어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필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장 윤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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