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미래를 2006년 3월호 제117호
연재/ 노동조합 손자병법 제2회
다시 지도력에 대하여
노자(勞者)
1.지도력이란 무엇인가?
진짜 노자의 글(헌책방에 굴러다니던 훌륭한 말씀)
가장 좋은 지도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는 사람이고
그 다음은, 백성들이 가까이 하며 칭송하는 사람이고
그 다음은,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며
그 다음은 백성들이 업수이 여기고 깔보는 사람이다.
믿음이 부족해지면 결국 믿지 못하게 되니 염려스럽도다.
그 말의 끝난 후에는 백성들이 모두 내가 저절로 그리되었다 말하게 해야 한다. <노자 도덕경 가운데. 이경숙 지음 ‘노자를 웃긴 남자’ 2권. 197쪽 도서출판 자인>
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자발성에 의존한다. 그래서 군대에서 말하는 지도력보다 노자를 인용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노자의 글에서 이런 점을 읽는다. “묵묵하게 실천하라.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니 시끄럽게 굴지 말고 그냥 네 갈 길을 가라. 한 눈 팔지 말고.” 민주노총 지도력이 땅에 떨어졌다. 총파업을 입으로만 남발하더니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세 후보가 나왔는데 공약들이 자못 그럴듯하다. 그중 몇 가지만 제대로 해치우면 민주노총이 정말 잘 돌아갈듯 하다.
민주노총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KT노조 사람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KT라면 한국노총에 있는 웬만한 어용보다 더 확실한 회사노조라고 알고 있다. 바로 얼마 전 부정선거 시비가 있었고 증거물까지 확보되어 있다. 그런 자들이 농성을 할 지경이면 민주노총은 껍데기만 남았다.
나는 민주노총이 제 모습을 찾을 때까지 민주노총 핑계를 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가진 실력껏 싸워라. 스스로 설 힘도 없으면서 민주노총이 어떠니까, 민주노총이 나서지 않으니까 이런 식으로 핑계를 대려면 차라리 투쟁을 접어라. 민주노총 그렇게 된 게 하루이틀이라고 언제까지 의존할 셈이냐? 욕하면서 책임을 떠넘기고 욕하면서도 의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이 있다면, 투쟁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가 있다면 그냥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자. 그것이 안되면 맨땅을 일구면서, 묵묵하게 조직하고 투쟁을 준비하라. 그런 의미에서 유인물이나 책자를 내며 욕만 일삼는 사람들은 신용할 수 없다.
그러니까 진짜 노자의 말씀은 “조용히 앞장서서 실천하는 지도자가 최고”라는 말씀이겠다.
백성들이 칭송을 한다면 기분 좋은 일이겠다. 그러나 반드시 선거로 통하고, 후보가 되고, 정치세력화의 첨병이 된다면 타락의 길로 이어지기 십중팔구다. 한때는 전설적인 투사들이 모두 이와 같은 길을 거쳐 노동자들과 멀어졌다.
요즘은 노동자들이 지도자를 깔보는 시대, 모두 그놈이 그놈인 시절이 되었다. 매일노동뉴스를 펴면 보건의료노조와 병원노조협의회가 비난광고를 내고, 민주노총 비대위는 “산별노조의 집단탈퇴는 무효”라는 결정을 내렸다. 당사자들은 전혀 인정하지도 않는데 무슨 그런 한심한 결정을 하고 있는지 보기가 딱할 지경이다. 민주노총이 수긍하지 않는 공공연맹이나 병원노조 협의회 산하 노조들을 얼마나 단호하게 처리하는지 한번 지켜보기로 하자. 구경꾼이 되었다간 양심에 거리끼므로 한마디 덧붙이기로 하자. “민주노총 비대위의 결정은 옳지 않다.” 구구절절하게 그 이유를 쓰는 것은 능력도 안되고 이글의 취지에도 맞지 않으므로 조조의 글을 인용하기로 하자.
손자가 말하였다.
형벌과 명령을 어느 쪽이 더 엄격하고 공정하게 시행하는가?
조조가 말하였다.
군법이나 군령은 지도자가 내리는 것으로, 모든 책임은 지도자에게 있다. 그러니 한번 군법을 정하고 명령을 내리면, 앞장서서 지키고 어기지 말아야 한다. 만일 자기가 정한 군법과 명령을 스스로 어기거나 부하가 따르지 않는다면, 부하는 물론이고 자신도 예외 없이 꼭 처벌하여야만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
노자가 공손히 답하였다.
병원노조 협의회를 벌하기 앞서 산별협약 10장 2조 관련자들을 먼저 벌하라. KT 대의원 입장을 막은데 대한 진상조사를 하기 전에 KT노조 선거부정을 먼저 조사하라. 대전본부 선거에서 시비가 된 부정투표혐의 투표용지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라.
2. 조직의 기본을 거스르는 사람은 최악의 지도자다.
언제부터인지 임금교섭이나 단체협약에서 직권조인이 횡행하게 되었다. 사실상 직권조인을 해놓고도 형식적으로만 투표를 거치는 경우는 더 흔하다. “지금 타결하지 않으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조직이 패가망신할 것이다.” 정보를 독점한 채 조합원을 위협하며 울며 겨자먹기로 투쟁을 접어버리게 한다. 파업을 접겠다는 기자회견을 하여 분위기를 버려놓고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지도자들이 노련해진 탓이다.
손자가 말하였다.
이러한 기본계략을 충실히 따라서 지휘하는 장수는 반드시 승리한다. 따라서 이런 장수는 유임시켜도 아무 걱정이 없다. 그러나 계략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군사를 지휘한다면 반드시 패배하게 된다. 따라서 곧바로 장수를 바꿔버려야 한다.
조조가 말하였다.
조직전체의 방침이나 계략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조직의 지휘권을 주어서는 안된다. 곧바로 내쫓고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길밖에 없다.
노자가 공손히 답하였다.
옛날 군대에서 패배한 장수는 목이나 허리를 베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장수들은 아무리 패배해도 바꿀 수도 없고, 처벌할 길도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 패를 지어 변호하고, 자리를 나누어 가지며 노동자들의 고통은 아랑곳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워 조끼를 입고 다닐 수 없다고 합니다. 머리띠는 연설할 때나 혹은 선거할 때 사진 찍으려고 매게 됩니다. 사정이 이럴진대 저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손자가 답하였다.
그냥 초야에 묻혀 노동자로 살아 가거라.
조조가 답하였다.
노동자들 속에 묻혀 몰아낼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갈고 닦아라.
다시 노자가 답하였다.
그런데 연구소인지 하는 곳에서 자꾸 떠들어라 합니다. 괴롭습니다.
조조가 한마디
남의 흉내나 내면서 연구소 탓이나 하는구나. 변변찮은 놈 같으니.
3. 지도자의 능력
관상
나는 곰처럼 둔탁한 인상을 지도자로 선호한다. 신경이 무디어 스트레스에 잘 견디고 간부들의 판단을 존중하므로 민주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고집이 센 지도자를 선호한다. 노동조합에서 한번 결정한 일을 혼자서 바꾸면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또 겸손한 지도자를 좋아한다. 조합원에게는 한없이 겸손하고 상대방에게는 높은 지위에 있는 자일수록 우습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나는 이런 덕목을 한 가지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제껏 지부장으로도 선출된 일이 없다.
강대국 로마를 휘저으며 흔들었던 카르타고의 전설적인 장군 한니발은 병사들과 똑같이 노숙을 했다고 한다. 중국혁명에서 홍군 총사령관을 오래 지낸 주덕은 더 훌륭하다. 자신의 말은 부상자에게 주고 병사들과 똑같이 걸어서 2만 5천리 대장정을 마쳤다고 전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걸어 다녀서 다리가 매우 튼튼하니까 걸어 다니는 게 좋다.”는 것이다. 평등을 지향하는 우리 노동조합 운동은 어떠할까? 각자 판단해볼 일이다.
손자가 말하였다.
지도자의 능력이란 정세를 한눈에 파악하는 지략, 포상과 처벌을 공정하게 시행하는 믿음, 부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인품, 작전을 밀고 나가는 결단력, 군기를 엄격하게 하는 위엄을 가리킨다.
조조가 답하였다.
위에서 말한 것을 장수가 스스로 갈고 닦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힘써야만 한다.
전하기를 조조는 휘하 장수들을 위해 ‘손자병법 주해’를 지었다. 스스로 모범을 보여 군기의 엄정함을 세웠다고 한다. “농작물을 해치지 마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조조가 탄 말이 듣지 않아 밭으로 뛰어 들었다는데, 조조는 스스로 머리칼을 잘라 군령을 세웠다는 것이다.
노자가 답하였다.
자격 없는 지도자를 선출한다는 것은 조직을 파탄낼 뿐 아니라 자신을 망치는 길이다.
“전혀 대비하지 못한 곳을 공격하고, 뜻하지 않은 곳으로 출동하라.(攻其無備 出其不意)”
노동조합 투쟁은 노동자들의 자발성에 의존하고, 그 파괴력은 조건과 사기에 달려 있으며, 그 완강함은 의식화의 정도에 달려 있다. 노동조합 투쟁은 파업을 기본전술로 하고 나머지는 보조전술이다. 따라서 파업을 얼마나 완강하게, 그리고 파괴력을 키울 것인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파업투쟁도 보조적인 전술과 적절히 결합하느냐에 따라 파괴력을 달리할 수 있고 승산 또한 달라질 것이다.
때로는 파업투쟁을 할 수 없고 농성, 점거, 기동, 타격 등 보조전술로만 싸워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어떻게 사측을 기만할 것이냐, 어떻게 사측이 가장 약하고 아픈 곳을 찌를 것이냐, 는데 모든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당해 투쟁을 시작한 한국통신 계약직 노조의 투쟁을 보자. 기동, 점거, 타격, 농성 등으로 점철한 투쟁은 그 처절함과 완강함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이 든다. 무엇보다 경찰과 사측을 따돌리는 기만적 분산과 기습적인 타격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이다.
농성장소에서 하나둘씩 노동자들이 빠져 나가면 경찰에 초비상이 걸리는데, 그들은 번번이 경찰을 따돌리고 전화국 점거, 국회 회의장 기습시위, 케이블 고공시위 등을 성공시켰다.
파업이란 무기를 잃고도 이런 투쟁만으로 손해배상 철회, 사측의 벌금대납, 위로금 지급, 취업알선 등을 쟁취했던 것이다.
그런 노동자들도 초기에는 한겨울 본사 앞 노숙농성으로 힘을 빼고, 대오가 떨어져 나갔던 점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노동자들 투쟁은 대개 초기에 가장 많은 대오와 가장 높은 사기를 가지게 되는데, 사측의 온정을 기대하는 그런 투쟁은 하지 않았어야 옳다고 생각한다. 세상일이란 양면성이 있으므로 그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단련되고, 자본의 냉혹한 본질을 깨달은 점은 인정할 수 있겠다.
비슷한 사례로는 새마을호 승무원 해고반대 및 정규직화 투쟁사례를 들 수 있겠다. 이 투쟁은 소수의 승무원을 주체로 한 투쟁으로 주로 연대투쟁 대오로 이끌었던 투쟁이다. 사측의 약점(비리, 철도안전, 합의위반)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집회, 농성, 스티커를 주요 투쟁전술로 삼았다. 그러나 이 투쟁 또한 스티커에 대한 면역력이 커진 뒤 새로운 투쟁전술로 전환하지 못하므로 해서 장기화되고 사측의 일방적인 배치전환을 막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집단단식이니 삼보일배니 하는 것은 매우 수세적인 전술이다. 이런 수세적이며 상대방에게 온정을 기대하는 전술을 전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단식투쟁은 초인적인 어느 스님에 의해 자본은 물론 시민, 노동자들의 면역력이 극단적으로 강화되었다. 삼보일배는 초기에 신기하였기 때문에 주목을 끌었던 것이지, 지금에 와서는 무릎과 팔꿈치가 절단나는 데도 보도사진 한 장 얻기가 힘들어졌다. 촛불시위는 노동자들 투쟁을 촛불처럼 가물거리게 만들기 때문에 아예 논외로 친다.
선전물 문구를 보더라도 “우리는 이렇게 불쌍하게 당했다. 그러니 우리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사측에 압력을 가해 달라.”고 읍소하는 경우가 있다. 매우 옳지 못한 일이다. 심지어 “대통령님, 불쌍한 저희 노동자들을 굽어 살피소서.” 따위의 읍소까지 구경하는 데는 신경질이 나올 지경이다. 칼 든 강도에게 조금만 훔쳐가 달라고 비는 꼴이라 할까.
어떤 전술이든 사측을 결정적으로 몰아붙이거나, 결정적인 위협을 느끼지 않는 한 승리할 수 없다.
손자
병법이란 결국 적을 속이는 기만술이다.
조조
병법에는 배운 대로 곧이곧대로 따를만한 고정된 본보기란 없다. 그때 그 자리의 상황에 맞게 적을 속이고 쳐서 이기는 것이 핵심이다.
노자
상대방이 뻔히 알고 대비하는 줄 알면서도 기계적으로 나아간다면 승산을 찾을 수 없다. 사측이 가장 싫어하는 논리로, 사측이 가장 싫어하는 장소에서, 사측이 가장 싫어하는 전술로 사정없이 쳐라. 파업전술과 같은 대중투쟁 전술은 정공법으로 가되 기동, 타격, 점거, 농성과 같은 보조전술은 철저하게 사측을 기만해야 한다. 상대방의 의표를 찔러라. 상대방을 당황시키지 않으면 승산은 매우 적어진다.
뻥치는 총파업, 타성에 빠진 집회, 일년이고 이년이고 한자리에 있는 텐트, 시기집중 분리타결하는 연대파업, 제도언론에조차 칭찬을 받으려는 태도…. 이래가지고 이길 수 있을까? 노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고난의 세월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