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이동통신 청소년보호요금제를 마련하라
KTF를 비롯하여 SKT, LGT 등 이동통신사들이 조만간 데이터 통화료를 월 최대 20만원까지만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 지난 2월 15일 한 청소년이 370만원이라는 휴대전화 요금에 대한 충격과 정신적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 반만의 조치이다. 사건의 사회적 파장과 향후 사업 안정을 고려했을 때, 자식을 잃은 통한으로 외로이 시위를 벌였던 부모의 피맺힌 절규와 본 모임의 문제제기에 완전히 귀를 닫아두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혀 진일보한 면이 없지는 않다는 점에서 일단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보았을때 여전히 청소년들이 위험에 빠질 함정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고, 근본적으로는 청소년이라는 특수한 사회 경제적 지위를 충분히 배려한 조치가 아니라는 점에서 아직 부족하다고 하겠다.
전 세계를 주름잡을 만큼 비약적으로 발달한 한국의 이동통신은 단순히 생산 및 공급자의 자기발전적 노력과 성취를 위한 피땀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의 발전은 산업의 요구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산업의 요구란 실질적으로 영리를 위한 생산 및 공급자의 욕구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그 욕구의 실현은 철저한 영리적 목적의 대상으로서 소비자를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의 도구로 삼음으로써만 가능하다. 한국의 이동통신기술과 산업의 발전은 국내 이동통신사업자 간의 과도한 경쟁 속에서 청소년들을 대한 무분별한 착취를 통해서 가능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
두 가지 점에서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데이터 통화료는 말 그대로 ‘통화료’이다. 무선인터넷접속료를 의미하는 데이터통화료 외에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지불하는 비용의 다른 하나의 큰 축은 컨텐츠사업자(CP)가 제공하는 ‘정보이용료’이다. 청소년들로서는 그 유혹을 떨치기 힘든 각종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지나치게 용이하다. 아무런 제한이 없는 정보이용료에 무방비로 노출된 청소년들이 자기 절제를 통한 이성적 대응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청소년에게 성인과 같은 수준의 자기책임을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컨텐츠사업자들과의 결탁 속에서 이동통신업체는 그에 대한 책임이 없는 것인양 발뺌해서는 안된다.
둘째는, 20만원이라는 상한금액의 근거이다. 10만원도 아니고, 30만원도 아닌 하필 20만원이라는 기준은 청소년의 경제적 피해를 일차적으로 고려했다기보다는, 종합적인 실익 계산을 통한 자의적인 기준에 불과하다. 정치적 비난은 모면하면서 여전히 수익 창출과 보전을 꾀하겠다는 ‘속셈’에 불과하다. KTF 관계자는 "데이터통화료가 과다하게 부과돼 무선인터넷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본 조치는 "요금을 월 20만원 이상 부과하지 않는 방식으로 무선인터넷에 대한 불신을 제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선인터넷사용에 대한 불신과 공포를 줄여 소비자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겠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그 실수요자는 청소년이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은가?
이번 기회에 청소년보호요금제에 관한 확실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순한 요금제의 차원이 아닌 한 국가의 특정 산업과 관련한 사회적 철학과 논리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이동통신업계는 근거없는 액수의 ‘데이터통신료상한제’로 수익 경로를 변모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청소년 보호 대책으로서의 요금제를 수립하라. 가장 기본적인 제도는 선불제 형태일 것이다. 그리고, 기왕 상한제를 실시하려면, 청소년들에게 유의미한 수준의 기준을 산정하도록 하라. 휴대전화의 가장 왕성한 사용자인 청소년이 그로 인한 개인적 피해에 시달리지 않도록, 그리고, 나아가 불미스런 극단적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마지막으로 사회 전체적으로 청소년의 휴대전화사용에 따른 문제가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을 주목적으로 삼는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와 같은 과당 경쟁 체제는 언제든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지 청소년을 볼모로 한 영리행위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부를 비롯한 정부는 세계산업경쟁에서의 우위를 핑계로 IT산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장려와 지원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건강한 균형을 위한 사회적 보호장치 마련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언제 또 우리의 사랑스런 아이들이 한낱 휴대폰요금 때문에 소중한 삶을 재촉할지 모를 일이다.
2006. 4. 5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