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인 영어광풍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예고된 토플대란, 정부가 방조한 것이다!
최근 토플 응시를 위한 인터넷 접수에 문제가 생겨 소위 ‘대란’이라 불릴만한 사태가 발생했다. 최대 토플 시장의 고객들인 한국 응시생들의 원성이 드높아지자 공급자인 미국 교육평가원(ETS)의 수석부사장이 4월 21일 방한하여 해당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올해 토플 수용인원 2배 이상 확대, 50만 명 동시등록 서버 구축 등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수용-공급 간의 불균형 해소나 기술적인 지원에 의해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 차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사실 이번 ‘대란’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부터 토플시험응시생들 사이에서는 새로 바뀐후 시행되는 토플접수에 따른 불편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고 급기어 2007년 연초부터는 이번 9월 새 학기에 외국에 교환학생을 가야하는 학생들이 토플시험을 미리 볼 수 없어 서 결국 포기하거나 시험 응시표에 웃돈이 붙고 인근 일본과 중국으로 1박2일 시험을 보고 오는 등 예고된 접수대란 절차를 밟아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초유의 사태는 한국 고유의 사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상열기를 넘어서서 광풍이라 할만한 한국사회의 영어 맹신 풍조와 더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영어 패권주의에 식민지화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사태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단지 수요의 급팽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공급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수요 자체의 성격 문제인 것이다.
토플시험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영어권국가 대학(원)에 진학(유학)할 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영어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인증시험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토플시험에 대해 지나치게 의존적이다 못해 절대적이다. 이미 오랜 세월 ‘미국’과 ‘영어’를 경유하지 않고는 한국사회에서 출세하기 어렵게 되어 있고, 영어능력, 그나마도 정확한 능력 여부를 불문한 채 고작 토익, 토플이라는 일개 시험을 기준으로 규정된 영어능력이 곧 만능이 되어 인간의 우열과 차등을 낳고 있던 차에, 근래에 취직시험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중학교, 외국어고등학교, 대학의 국제학부 입시의 전형요소로 사용되고, 심지어 토플만점이면 자동 입학이 가능한 대학도 여러 곳일 정도로 토플의 영향력이 급속히 확대되자 너나 할 것 없이 토플이라는 블랙홀로 뛰어들고 있다. 한국응시생이 세계 전체 응시생의 20%에 육박하고, 그 응시생중 초·중·고생의 비율이 과반수를 훌쩍 넘는다는 사실이 년간 토플응시료가 거의 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토플대란은 영어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문제이다. 학생들은 입시에서의 성공 수단을 토플에서 찾음으로써 정상적인 공교육은 더욱 멀어지고, 응시를 위한 경제적 비용은 개인의 부담과 동시에 사회적 낭비가 되며, 토플, 언어연수, 유학 등 미국중심적 자원이 곧 한국사회의 계층과 지배관계로 이어지며 사회통합을 깨고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이에 함께교육은 정부와 관련기관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정부는 토플대란을 계기로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자각하고, 한국사회의 영어능력 맹신주의와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지 않도록 총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이를 위해, 우선은 정부가 나서서 영어 열풍을 조장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무분별한 영어 교육제도와 영어마을과 같은 시설 도입을 자제하고 영어교육이 필요하다면 필요한 만큼 적정 수준으로 평등한 영어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토플대란을 계기로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선발 기준으로 토익, 토플 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처럼, 대학이나 취직 시험에서 불합리하고 맹목적으로 강조되는 영어 비중을 낮추도록 해야 한다. 특히, 대입전형에서 토플, 토익, SAT 등을 전형요소로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넷째, 이러한 근본적인 대책 위에서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효율적인 영어인증시험의 개발 및 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007년 4월 24일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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