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정규 관련 법안의 경과
지금 국회에서는 정부가 제출한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계약직’, ‘임시직’ 노동자와 관련된 법률 제정안이 하나이고, '파견직', '용역직' 노동자와 관련된 근로자 파견법 개정안이 다른 하나이다. 정부와 여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급히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은 거의 2년간 지속되어 왔으며 현재는 임시국회 속에서 언제 처리될지 시간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비정규 관련 법안이 정부의 비정규노동법 개악안과 실제 단병호 의원의 발의로 만들어진 권리보장입법안이 어떻게 뒤섞이고 복잡하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 04년 7월부터 04년 12월까지
2004년 7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함께 마련한 비정규직 관련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 입법안의 기초는 2000년에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마련한 입법청원안으로2000년 청원안을 바탕으로 하면서 지난 6년간의 비정규직 투쟁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추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근로기준법 개정안, 노동조합법 개정안, 직업안정법 개정안과 함께 근로자파견법 폐지안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2004년 9월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비정규 노동자를 양산하는 개악안을 내놓았다. 이에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의 열린우리당 점거농성, 11월 총파업에 맞선 국회 타워크레인 고공 농성이 있었고, ‘비정규 노동법 개악 저지’와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걸고 투쟁을 만들어 나갔다. 이는 정부(노동부)가 내놓은 비정규 개악안은 반대하고, 7월에 제기했던 권리보장 입법안을 반드시 쟁취하겠다는 의미였다.
○ 05년 4월부터 05년 11월25일까지
정기국회 일정도 끝나고 다시 이 법안의 문제가 불거진 것은 05년 4월부터였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부의 개악안에 대한 문제점을 의견으로 내놓으면서 정부의 입지는 좁아졌었지만, 정부의 강경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 노사정대표자교섭이 진행되었는데, 5월 2일 노사정대표자교섭 과정에서 노동계가 제출한 '최종안'은 04년 7월 제기한 권리보장 입법안과는 다소 다른 후퇴한 입장이었다. 기간제와 관련하여 교섭석상에서 노동계 최종안으로 제출하였다는 이른바 '1년+1년안'은 사실상 2년까지 기간제고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안으로서, 기간제를 사용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의 제한' 이라는 권리입법요구안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파견제와 관련하여 '파견법 철폐-직업안정법 등 강화를 통한 직접고용 원칙의 확립'이라는 권리입법요구는 제대로 주장되지 않았고, 현행 파견법 유지에 급급하였다. 게다가 '파견허용업종 열거' (포지티브 방식)라는 현행 파견법의 틀을 유지하더라도 허용업종을 노사합의 및 의견수렴에 따라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여지마저 주었다. 다음으로 원청․사용사업주 등 사실상 사용자로서의 위치에 있는 자본에게 노동법 상 사용자책임을 확대하려는 권리입법요구는 노조법 상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지는 사용자로 제한되었다. 마지막으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관해서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므로 교섭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러한 4월 교섭은 5월 2일을 마지막으로 노사정교섭 결렬이 되면서, 11월에 와서 노사대표자교섭이 다시 재개되었다. 이때 민주노총은 문제가 되었던 ‘4월 교섭 내용’을 기초로 교섭을 하려하였고, 11월 25일 민주노총 투본대표자 회의에서 문제제기로 일단락 정리된다.
○ 05년 11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이러한 과정에서 11월 29일 한국노총이 ‘최종안’(기간제 2년 사용후 정규직화, 불법파견 고용의무, 특수고용 관련 내년 상반기 중 논의)을 발표한다.
열린우리당은 연내 조속한 처리를 통해 비정규노동법개악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고, 이에 한국노총이 노동계 최종안이라며 정부 여당의 개악안에 손들어 주며 녹색연합/민언련/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YMCA/여성단체연합/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7개 시민단체가 이를 지지했다. 이에 민주노동당의 권리보장 입법안을 촉구하며 민주노총과 이에 50여개의 노동사회정치단체가 12월 2일 지지 의사를 밝혔다.
○ 05년 12월 6일부터 현재까지
12월 6일 한나라당은 재계안과 유사한 입장을 발표했고, 이로써 비정규 관련 법안을 둘러싸고 정부/여당/한국노총/7개시민단체(녹색연합/민언련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YMCA
/여성단체연합/함께하는 시민행동)가 같은 입장을, 민주노동당/민주노총/50개 노동사회정치단체가 또 하나의 입장을, 나머지는 한나라당과 재계가 한 축을 차지하는 3개의 구도로 나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12월 6일 민주노동당이 차별시정을 중심으로 단계적 분리처리를 제안했고, 환노위 법안심사소위가 열리던 8일에 민주노동당은 기간제 사유제한 관련 수정안을 제시했다.
결국 12월 9일 정기국회가 마감되면서 환경노동위 법안심사소위에서는 기간제 28개, 파견제 14개 등 총 42개의 조항을 의결했고, 남은 기간제 4개와 파견제 7개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입장이 일치하는 조항을 제외하면 4개의 쟁점만 남은 상황이다.
남은 쟁점 사항은 구체적으로 기간제법의 4조 '기간제근로자의 사용' 본문 중 기간으로 할 것인지 사유제한을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과 연계조항, 제 8조의 차별적 처우의 부분과 연계조항이 남아있고, 파견법 5조 근로자파견대상 업무의 문구 조정, 파견법 6조3항 고용의무에서 고용의무와 고용의제 등이다.
2. 개악안 통과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 사무금융 업종을 중심으로
○ 전업무에 걸친 전면적인 파견사용 가능해진다
사무금융업종의 경우 파견제 합법화 이후 계약직, 촉탁직, 파트타이머 등 직접고용 비정규직과 파견직이 복잡하게 얽혀 확대되었다. 사측이 임의로 계약직을 파견직으로 전환하기도 하고 거꾸로 파견법을 회피하기 위해 장기근속 파견직을 임시직, 아르바이트로 전환하기도 한다. 현행 파견법 허용업무 중에는 가장 비중이 높은 '비서, 타자원 및 관련사무원'의 업무를 비롯하여 '컴퓨터 보조원의 업무', '전화 외판원의 업무', '관리비서 및 관련 준전문가의 업무'등 사무금융업종과 관련되는 것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콜센터, 채권추심업무, 창구업무 등 기업의 핵심업무에 광범위하게 그리고 탈법적으로 파견직이 활용되고 있다. 분사 등을 통해 전체가 비정규직 직원들로만 구성되는 프랜차이즈 점포, 본사의 영업부서 등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문제는 지금도 이렇게 일상화된 사무금융의 모든 업종에 파견이 합법화되고 난 뒤의 상황이다. 현재도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파견업무가 공개적이고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관리노동을 제외한 전반 업무 비정규직으로 교체, 고용불안 심화된다
금융권의 광범위한 계약직 노동자들은 파견노동자들이 교체되듯이 3년에 한번씩 주기적 해고에 직면할 것이다. 전반적인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노동자들은 회사에 확실한 줄서기에 들어갈 것이다. 노동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실적관리는 정당한 해고 명분에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개악안에는 전문적 지시, 기술의 활용이 필요한 경우, 그리고 사업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3년 이상 무제한적으로 비정규직 사용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바로 사무금융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를 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증권산업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의 비율이 급속하게 증가되었다. 1997년 비정규비율은 7.84%였으나 1999년에는 32.27%(여성의 경우 57%)로 비정규직 비율이 급속하게 증가되었다. 그 후로도 비정규직은 계속 확대되어 S증권이나 M증권처럼 거의 100% 계약직으로 구성된 증권사도 출현하게 되었다. 2003년 전체 증권사 비정규직 비율은 26.2%이고, 2005년에는 30%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증권산업 비정규직은 본사, 콜센타, IT, 지점관리직 등 직무를 가리지 않고 도입되었고, 비정규직의 고용형태도 직접과 간접고용 모두를 포함하고 있으며, 콜센타의 경우 불법파견도 심각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정부가 금융산업의 아웃소싱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관련 노동법까지 개악안으로 통과된다면 증권산업의 모든 직무는 비정규직으로 채워질 것이 자명한 현실이다.
○ 계약직 2년이 지나도 짤린다
그래도 정부 법안이 통과되면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은 함부로 해고할 수 없게 되니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이 아닐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제일은행은 3년에서 9년까지 근속한 계약직 텔러(창구여직원)들을 차례차례 해고하고 있다. 제일은행에는 876명의 계약직 텔러들이 일하고 있는데 6개월 단위로 재계약을 하고 있다. 그동안에는 재계약과정에서 특별한 심사절차도 없었고 본인이 원하는 한 계속 근무할 수 있었는데 작년부터 나이가 많고 근속년수가 긴 계약직들이 집중적으로 정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측에서는 일방적으로 계약해지통보를 하면서 ‘인적 평정’이 나쁘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그 근거자료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일선에서는 “나이가 많고 근속년수가 오래된 계약직은 부담스럽다”, “젊은 후배들을 위해 알아서 나가 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식의 핀잔을 하고 있다. 이들이 해고된 자리에서는 신규채용된 계약직들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전체 1,568명 직원 가운데 정규직이 537명, 비정규직이 1,031명으로 비정규직이 전체 인원의 65%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비정규직 중에는 5년차가 195명, 6년차가 411명에 달할 정도로 장기근속자가 많다. 그럼에도 상대평가제를 통해 하위 30%는 무조건 계약해지한다.
정부 법안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오래 근무했어도 사측은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다. 이 때 ‘정당한 이유’의 단골 메뉴가 바로 인사평가와 실적이다. 비정규직 재계약의 칼자루는 역시 사측이 쥐고 흔드는 것이고, 정부 법안은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
3. 우리의 방향과 과제는 무엇인가?
특별법 적용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한 노동기본권 보장이 핵심이다.
권리보장 입법안의 원칙은 '입법'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적용을 통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2004년 7월 이러한 요구를 담은 권리보장입법안은 같은 해 9월 정부의 개악안에 의해 묻혀버리게 되었다.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가로막는 장벽부터 없애는 것이 권리보장으로 나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입법안에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보호에는 아무런 실효도 없고,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계화하고 해고의 구렁텅이로 내몰고 정규직이 될 가능성을 빼앗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입법안은 각종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던져졌다. 비록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근로기준법'이 있다. 그런데 각종 '특별법'을 만들어서 근로기준법을 무너뜨리고 비정규직을 일반화하려는 것이 정권과 자본의 시도였다. 우리는 그것에 반대해서 '개악안'을 폐기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만들려면 일단 정부의 입법안부터 폐기시켜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근로기준법'이 아닌 '특별법'으로는 절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고 오히려 비정규직 양산에만 기여하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입법을 폐기하고 그 때부터 우리의 요구를 갖고 투쟁해야 한다.
○ '권리보장 쟁취'는 '노동법 개악저지'로부터 나온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지난 2004년 7월 권리보장 입법안을 발의한 것은입법그 자체에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사수한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지난해 7월 발의한 권리보장 입법안은 얘기조차 나오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의 노동법 개악안이 권리보장 입법안인 것처럼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법을 통해 비정규직을 굳히려는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타협안 제시도 지금 시점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지금의 투쟁 목표는노동법 개악저지에 있고, 이 목표에 한 치의 물러남도 없는 것이 애초의 권리보장 입법안의 의미를 살리는 것이며 정부의 노동법개악을 저지시키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 비정규직 법안 처리는 정기국회가 아닌 임시국회로 넘어갔다. 한나라당이 사학법 무효 장외 투쟁으로 임시국회가 연장되고는 있지만, 열린우리당에서는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민주노동당이 많은 조항을 양보하고 타협한 상황이라 ‘강행처리’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은 상황이기에 최악의 경우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타협안이 비정규 개악법안의 통과를 부추긴 것과 다름없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들은 개악입법안이 아닌 권리보장입법을 할 것을 전면에 내걸고 투쟁해왔고, 이제 더욱 열심히 투쟁을 전개하여 개악법안을 저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권리보장 쟁취는 비정규 개악입법 저지로부터 명확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