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7일 재정경제부는 ‘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가칭)(이하 자본시장통합법)’의 제정방안을 발표했다. 그간 말로만 돌던 ‘자본시장 통합법(안)’이 수면위로 부상한 것이다. “자본시장과 자본시장 관련 금융 산업의 발전이 미흡하여 자본시장에서의 금융 빅뱅이 필요한 시점”이란 정부 판단 하에서 ‘금융시장 빅뱅’을 예고한 법안 인 만큼 그 내용 또한 충격적일 만큼 무차별적으로 포괄적이다.
이 법안은 자본 시장 규제 방식을 바꿔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대형화ㆍ전문화를 촉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법안이 정부 바램처럼 2008년에 시행 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이미 공론화 된 만큼 국내 자본 시장은 2금융권의 칸막이가 모두 사라지고, 보험-은행-금융투자회사를 중심으로 한 3대 축으로 재편될, 시기만이 점쳐지고 있을 뿐이다.
자본시장통합법(안)이 발표되자 국내 금융 산업계는 대규모 투자은행(IB)과 특정분야 영업을 특화한 소규모 회사들로 이분화 될 것으로 전망하며, 이 과정에서 외국 IB의 국내시장 공략, 금융투자기관 간 인수합병(M&A) 등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주회사 계열이 되거나 자산운용사와 투신사, 선물회사를 인수해 대형화되지 못하거나, 자산운용전문, 온라인 투자 등으로 특화되지 못하거나, 제대로 자기 짝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죽을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 법은 대형화 된 몇 곳을 제외하고는 시장의 자율경쟁 속에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정부의 단호한 입장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두가 당연하게 자본시장의 빅뱅을 외친다. 그러나 한편 내실없는 대형화와 규제 완화의 위험성은 이미 수차례 경고된 바 있다. 자본시장통합법(가)이 단순히 겸영 허용, 규제 방식을 통합하는 것 이상의 파장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는 그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본시장 통합법(가), 2금융권 관련 규정이 ‘하나’로 통합 되는 것
지금까지 제 2금융권이라 하면 자산운용사, 선물회사, 투자자문회사, 증권사, 투신사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지만 자본시장 통합법(가)이 입법되면 ‘금융 회사 간 장벽을 제거 한다’는 방향에 맞춰 이 회사들의 ‘이름’은 남겠지만 서로간의 업무 경계가 사라지게 된다. 또한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겸업도 허용하게 된다. 당연히 합병을 거쳐 금융투자업을 한꺼번에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대형 투자은행(IB)도 설립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자본시장 통합법의 시작은 은행법, 보험업법 등을 제외한 자본시장을 규율하는 14개 법률 중 절반 정도를 통합하고 나머지 관련 규정은 정비하게 되는 것이다.
< 현행 금융법 체계 >
은행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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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거래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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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거래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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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형 간접 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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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운용업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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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거래 (장외파생거래, FX마진거래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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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업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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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금업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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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금융 투자업법 (창업․부동산․선박투자회사법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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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업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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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금융관련 금융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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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후 금융법 체계>
은행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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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업과 자본시장에 관한 법률(가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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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업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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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금융관련금융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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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금까지 금융기관에 따라 적용하던 규율체제를 ‘경제적 실질이 동일한 금융기능’에 따라 동일하게 규율하는 ‘기능별 규율체제’로 전환되게 된다. 그러면 지금까지 각 금융기관별로 차별적으로 존재했던 규제차익이 사라지게 된다. 만약 금융 기능이 동일할 경우, 금융회사의 형태가 다르다하더라도 시장진입과 건전성, 영업행위에 대한 동일한 규제를 적용 받게 된다.
또한 명칭과 형태를 불문하고 원본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 즉, 투자성을 갖는 모든 금융상품을 포괄적 개념으로 ‘금융투자상품’으로 정의하는, 단일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자본시장통합법(가)은 증권과 파생상품도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기초자산의 개념도 넓게 정의하고 있다. 향후 출현 가능한 신종 금융투자상품의 장외파생상품은 ‘평가 가능한 모든 위험을 대상으로 모든 상품 설계가 가능’하게 되기 때문에 재난, 재해, 범죄 발생율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이 나올 수 있다. 장내파생상품의 경우도 ‘설계 가능한 모든 파생 상품의 장내 거래가 가능’해 지기 때문에 ‘탄소 배출권’ 등 환경 관련 선물, 옵션, 전력 등 에너지 관련 선물, 옵션 등이 등장 할 수도 있다.
겸업이 가능한 금융투자회사의 설립 허용
현재 7종류로 세분화 되어 있는 펀드 상품의 구분을 증권펀드와 부동산펀드, 특별자산펀드, 단기금융펀드(MMF) 등 4종류로 재편 해, 펀드 운용에도 제한 칸막이를 제거하게 된다. 주 투자대상 자산을 특정하지 않고 어떤 자산에나 자유롭게 투자 가능한 펀드(혼합자산 펀드) 허용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 주 투자대상을 증권 → 부동산 → 실물→ 증권 등으로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펀드 개발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한 자본시장통합법(가)는 기존의 증권, 선물, 자산운용, 신탁업 등 6개 금융투자업을 모두 영위할 수 있는 투자회사 설립을 허용한다. 이런 투자회사가 생긴다면 파생결합증권 등 구조화 증권, 각종 간접투자상품, 일임형 랩, 특정 금전신탁 등 다양한 상품을 직접 설계하여 제공하는 종합자산관리서비스 가능하게 되고 금융투자회사의 건전성이나 투자자 보호에 문제를 초래하지 않는 한 부수업무를 원칙적으로 모두 허용하게 된다. 또한 인가 받은 모든 금융투자업은 외화로도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게 된다.
이렇게 겸업이 허용된 조건하에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용이하기 위해서 부수적으로 금융투자회사의 계좌에서도 은행계좌와 동일하게 송금, 카드결제, ATM 수시입출금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될 예정이다. 예를 들어 금융투자회사 계좌에 월급을 자동이체 하면서 필요시 증권 등에 투자하고 카드 결제, 전기요금 납부, 송금, 은행 ATM에서의 출금 등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판매권유자 제도’를 도입해 금융투자회사의 금융투자상품을 투자자에게 투자 권유할 수 있도록 판매권유자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이들은 특정 금융투자회사에 소속되어 해당 회사가 판매하는 ELS(주식연계증권), 적립식 펀드 등에 대해 상품설명의무, 적합성원칙을 준수하면서 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하도록 권유함으로써 금융투자회사와 투자자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즉 자본시장통합법(가)은 법안 통합과 관련 법안 정비를 토대로, 겸영 허용, 규제 완화, 상품의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해 결국 자본의 이동을 최대한 용이하게 지원하겠다는 취지인 셈이다.
물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앞으로는 의무적으로 투자자의 투자목적과 재산상태 등을 파악한 뒤 서면확인을 받아야 한다. 또 투자자에 대한 설명의 의무도 강화돼 설명을 하지 않고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배상책임을 져야하는 항목들을 강화할 방침이기도 하다.
한국판 골드만 삭스, 망상을 버려야
그러나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자본시장통합법(가)은 사실상 업종간의 장벽 속에서 성장해 온 국내 금융 회사들의 보호 규제를 모두 풀고, 무차별적으로 외국/대형 투자은행들과의 경쟁 속에 노출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그리 선망하는 대형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모습은 어떨까. 1997년 진로 부도 직후 경영컨설팅을 맡았던 골드만 삭스는 이듬해 화의 상태의 진로와 진로 홍콩의 채권을 무더기로 헐값에 사들여 경영권을 장악해 하이트맥주에 매각, 1조7천억 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남긴 바 있다. 또한 골드만삭스는 1999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과정에서도 5억 달러를 투자해 1조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남긴 바 있다. 수익률이 높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투자은행의 목적이 오직 수익 창출에만 있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 보다는 오직 ‘돈’벌이를 위한 금융기구가 될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하나의 투자은행(IB)이 여러 형태의 영업을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 견제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당연히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규제할 수 있는 금융감독당국의 능력도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필요조건이 아닌 필수조건이 되는 셈이다.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가)의 대형, 규모화된 투자은행의 장밋빛 전망만을 제시했지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