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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국익도 독소조항도 아닌 노동자의 삶과 맞닿아있는 한미FTA 비판이 요구된다

5월 25일, 정부는 한미FTA 협상을 타결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협정문을 공개했다. 협상 타결을 끝끝내 막지 못하고, 오히려 타결 이후에 70% 가까이까지 높아진 찬성 여론에 잠시 숨을 골랐던 한미FTA 저지세력은 협정문 공개를 기회로 다시 반대 여론에 불을 붙이기 위해 협정문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범국본은 협정문 공개 당일, 협정 내용에 대한 ‘국민검증’ 활동과 범국민적 끝장 여론작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상정 의원 또한 당일, “정책자문단과 함께 오늘부터 협정문 분석작업에 착수, 협상의 내용을 철저하게 평가하고 검증해 낼 것”이라고 밝혔다. 진보여론에서도 협정 내용에 대한 비판들을 내놓고 있다.

공개된 한미FTA 협정문에 대한 지금까지 나온 비판들을 보면, 대개 다음과 같다.
먼저, 양국에 공동의 권리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국가 간의 협정임에도, 도저히 상호협력을 위한 협정이라고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만이 일방적으로 의무를 부담해야하는 굴욕적인 조약이라는 비판이 있다. 가령 자동차세재 개편 의무, 섬유산업 정보 제공 의무, 금융감독기관의 규제 개정 의무, 대부분의 의약품/의료기기 협정 관련 의무 등은 오로지 한국만이 부담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한미FTA가 부여하는 권리가 민중을 위함이 아닌 자본이 마음껏 이윤을 추구할 권리임을 간과하고 국가 간의 불공평한 관계만을 문제 삼음으로써, 자칫 한미FTA 자체의 반노동자성에도 불구하고 협상에서 미국과 동등하게 권리를 획득했다면 오히려 찬성해야 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물론 한미 간의 힘관계상 균형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국익론에 근거한 대차대조표 작성은 겉으로는 손해인 것처럼 보이는 한미FTA를 왜 한국 자본가들이 그토록 원하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애초부터 국익론은 한미FTA가 한미 자본가들의 노동자에 대한 공동공격이라는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고, 국익이라는 누가 정말 이득을 보는지 헷갈리게 하는 실체가 모호한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협상의 불공평성을 제기하는 입장은 한편으로는 정부가 내세우는 성과라는 것이 실제로는 실효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심상정 의원의 경우는 정부가 얻었다는 세이프가드(수입규제)나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인정을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에도 실효성이 없는 사례로 든다. 하지만 이런 대응은 정부가 국익이라는 틀 내에서 이미 형성해놓은 이슈를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국익론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 뿐이다. 세이프가드라는 국내자본 보호책의 미비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한미FTA가 초래할 노동에 대한 공격을 비판해야 한다.

다음으로, 협정문 내의 독소조항을 꼼꼼하게 폭로하는 비판이 있다. 투자자 국가제소권, 비위반제소, 기술선택권 및 과세주권 제한 등의 국가주권을 제한하는 독소조항과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독소조항 등이 폭로되고 있다. 특히 후자에서 눈에 띄는 것이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허가-특허연계와 특허기간 연장, 특허보호 강화 등으로, 이로 인해 의약품 및 건강보험료 부담이 치솟을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개별적인 독소조항의 폭로는, 협상 관료의 “협상은 원래 제로섬이다”라는 말마따나 전체적인 이해득실 계산 논란에 휘말리면 곧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여론의 과반수가 한미FTA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써 기능할 것이라는 정부의 논리에 수긍하는 형세에서, 이런 국지적인 비판만으로는 대중을 설득할 수 없다.

한미FTA 저지가 다시 탄력을 받았음에도, 한국이 얼마나 손해를 보았는지 같은 득실계산에 독소조항 폭로 정도를 비벼 넣는 비판 내용으로는 큰 줄기도 없이 산만하고 전문가나 이해할 듯 어려워서 대중적 힘을 얻기 힘들다. 문제는 한미FTA가 자본과 자본가정권이 한국사회에 제시하는 기만적인 전망이라는 것이다. 미국시장과 개방과 경쟁을 통해 재도약 하겠다는 자본의 선전에 맞서 한미FTA는 새로운 전망이 아닌 개방과 경쟁을 명분으로 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가속화, 즉 그동안 노동자의 삶을 파탄내온 임금억압, 비정규직화, 고용불안의 심화확대에 불과함을 폭로해야 한다. 그리고 자본의 대안이 아닌 노동자계급의 대안을 갖고서 노동자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 때에만, 한미FTA 저지는 대중적 힘을 획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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