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기대감이 꽤 많이 남아있던 2003년 6월 10일.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여느 때와 별 다름 없어 보이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28개 인권단체들이 <17대 국회에 요구하는 인권입법과제 의견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눈에 띄는 점은 A4 용지 30장이 넘는 분량의 의견서에 담긴 인권입법과제들과 함께 기자회견 주최단체였다. 바로 이날이 현재 38개 단체로 불어난 인권단체들의 모임인 인권단체연석회의(아래 인권회의)가 세상에 처음으로 자기 모습을 드러낸 날이다.
너의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의견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서두에 지난 16대 국회를 과거청산과 시민정치적 권리, 노동권과 평화권 등으로 나누어 평가를 하고 17대 국회가 지켜야할 입법의 원칙과 7대 과제를 제시해 놓고 있다. 또한 각론으로 들어가서는 과거청산, 시민정치적 권리,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차별, 정보인권 등에 걸친 30여개가 넘는 법안의 필요성과 입법 방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았다. 이는 인권의 다양한 각 영역들을 아울러 발표하고 요구하며 감시할 수 있는 주체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은 ‘사건’이었다.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발간한 <2004년 인권운동보고서>를 보면 2003년 말에 진행한 인권단체 공동행동을 정리, 해소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연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근 6개월에 걸친 준비과정을 거쳐 장애,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단체 등 소수자 운동과 광주, 전북, 울산 등 지역단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같은 전문가단체 등을 아우른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정식으로 발족을 한 것이다. 앞서 말한 인권단체 공동행동은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집시법 개악 저지’, ‘이라크 파병철회’, ‘FTA 처리반대’라는 4대 요구안을 갖고 2003년 12월 대국회 투쟁을 벌여왔던 인권단체들의 활동을 가리킨다. 인권회의가 만들어질 때부터 운영진을 맡고 있는 손상열 평화인권연대 활동가는 “공동행동에 참여했던 20여개 단체 활동가들이 정세적 필요성과 긴급성에 대응하기 위해, 그리고 운동의 성과를 이어나가기 위해 연대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라고 한다.
하지만 인권단체들 간의 연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매년 있어왔던 인권활동가대회에서 인권운동의 연대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라고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말한다. 현안 대응뿐만 아니라 운동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고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각 인권운동이 다양하고 전문화되다보니 넓은 시야를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배경도 있었다. 이러한 공감대가 인권단체와 활동가로 하여금 연대단체의 필요성을 불러왔고 인권단체인권회의로 모아졌다는 것이 김덕진 국장의 진단이다. 그럼에도 6개월이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서야 공식발족을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돌다리 두드리는 심정으로 만들어진 연대체
2004년 1월 9일부터 인권단체 공동행동이 해소되고 전환한 ‘새로운 연대체 준비모임’(준비모임)은 3주간 인권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연대체 구성’에 대한 설문을 받고 “인권단체들간의 지속적인 연대틀에 대한 고민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확인”됨에 따라 새로운 연대체 구성에 대한 세 차례의 논의, 새로운 연대 모색을 위한 세 차례의 간담회 등 총 여섯 차례의 회의를 진행한 끝에 비로소 인권단체연석회의를 발족했다. 이는 공동행동에 참여했던 단체들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매우 다양한 주제와 영역, 활동방식 등을 갖고 있는 인권단체들 간의 인식의 간격을 좁히고 문제의식을 같이하고자 하는 준비모임의 ‘미래를 위한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한 편으로는 내부 의견차이로 말미암아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인권운동 연대에서의 ‘과거의 나쁜 선례’들을 밟지 않으려는 준비모임 참여자들의 조심스러움이 반영된 것으로도 이해된다.
때문에 인권회의는 만들어질 당시부터 느슨한 연대체, 네트워크 수준의 조직을 구상하고 별도의 집행위원회나 사무국을 두지 않은 채 월 1회의 정기회의와 정기회의를 준비할 운영진 모임만을 갖는다. “과거 어떤 연대체든 일단 활동을 어느 정도 하게 되면 집행책임자, 또는 집행단체에 권한이 집중되고 다른 단체는 거리감을 갖게 되거나 무관심하게 되기 쉽다. 따라서 사무국이나 집행담당자가 없는 것은 한편으로는 연대를 더 잘하기 위해서”라고 김덕진 국장은 밝힌다. 언뜻 듣기에 따라서는 모순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단’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혹시 지금에 와서 인권단체연석회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기회의 참석률이 점차 낮아지는 문제나 소수자 영역과 같은 부문별 단체의 결합력이 떨어지고 있는 문제가 인권회의 운영이 형식적인 측면에서만의 새로움이었지 내용에서의 전혀 새로움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손상열 활동가는 그러한 진단이 성급하다는 입장이다. “인권단체들이 여러 의제별 활동을 잘 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라 할 수 있는데 3년간 활동이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나름의 성과도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발족 첫 해였던 2003년, KT 노동자에 대한 인권침해 의견서를 발표해 노동 감시도 인권침해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인권회의의 목적의식적인 결합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2004년 이주노동자 문제에서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이슈화한 것, 국가인권위의 NAP에 개입하고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 올해 평택 투쟁에서 평화적 생존권을 의제화한 것 등 인권운동의 사안별, 주제별 네트워크의 구성과 활성화에 나름의 역할을 해왔고 그 역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전략적 측면에서 인권회의가 나름의 역할과 기능을 다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최소한 한 해를 전망하며 의제별 네트워크나 팀을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먼저 제안했어야 했다.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제안이 되길 바랐지만 희망사항에 그쳤다.”라며 손상열 활동가는 아쉬움을 밝힌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그동안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에 대한 차분하고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한다.
느슨한 네트워크인가, 연합체인가
장기적인 전략이나 과제를 설정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38개나 되는, 지역을 포괄하고 있는 인권회의에서는 각종 현안들은 속출하고 각 단체별 주문이나 요구도 빗발친다. 이러한 사업을 정기회의에 올리고 시급한 대응을 위해 조율하는 역할은 운영진에게 주어져있다. 현재 운영진은 5명이 맡고 있으며 매년 바뀌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연속성을 고려해서 한두 명은 연임을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연임을 하는 활동가에게 업무가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내부에서는 실제 상근체제를 두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는 문제의식도 생기기 마련이다.
과연 느슨한 연대체, 네트워크 수준의 활동이 올바른 것이며 그렇게 사업을 해왔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누구도 잘 보지 않는 공동성명서와 보도자료가 남발하고 있다. 이것은 실제 네트워크 수준에도 맞지 않고 이름만 거는 과거의 관행에서도 못 벗어난 방식이다.” 인권회의를 밖에서 바라보고 있는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의 따끔한 지적이다. 이는 운영진도 인정하고 있다. “함께 하고 있는 단체의 요청이 왔을 때 거절하기 힘들다. 하지만 모든 사안에 입장을 표명할 수 없는데 사안의 중요성이나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전에 성명이 나가고 공동성명에 이름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김덕진 국장은 말한다. 손상열 활동가는 “성명 발표 과정에서 성과도 물론 있고 의미도 있다. 하지만 너무 많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부문운동과 어떻게 만나고 연대할 것인가는 인권회의가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사진 | 강곤 |
한편 김도경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활동가는 “인권회의가 장애운동과 같은 부문운동이나 소수자 단체들과 연대하는 것에 있어 성명에 이름을 같이 하거나 기자회견에 발언을 하는 일, 농성을 하면 방문하고 하루 참여하는 일 외에 더 실질적인 연대, 바람직한 방식이 무엇일까 고민이 된다.”고 한다. 정리해보자면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입장발표와 같은 품이 들지 않지만 높은 수준의 연대의식이 필요한 행동은 부지런히 한 반면에 실제 연대활동에서는 구색맞추기식 구태의연한 활동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느슨한 네트워크가 가진 장점도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 될 것이다.
지역과의 소통과 호흡을 함께 하는 데에도 아쉬움이 존재한다. 김종섭 전북평화와인권연대 활동가는 “인권회의가 지역운동의 강화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은 아니란 점에서 1차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라고 전제하면서도 기획단계에서부터 지역과 함께 하고자 하는 사업이 부재했다고 말한다. “인권회의가 지역현실을 면밀히 진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충분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야 한다.”라는 따끔한 지적과 주문도 덧붙인다.
실종된 전략과 정책
처음 인권단체연석회의가 만들어질 당시의 요구였던 인권진영의 운동전략과 정책에 대한 고민과 각 영역별, 단체별 소통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평가는 부정적이다. 매년 나오기로 했던 ‘인권운동보고서’는 2005년판을 기약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으며 인권회의 홈페이지는 유명무실하다. 물론
대표적인 예로 올 한해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한미 FTA 문제에 있어서 인권운동 측면에서의 구체적인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 대응도 더디기만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난 해 전용철 농민 사망사건 시 인권회의가 진상조사팀을 꾸려 활동한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지만 결론적으로 경찰청장 바뀐 것 외에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보다는 전의경제도 전반의 문제로 접근하고 이슈화해야 하지 않았나 싶다.”라는 허창영 인권실천시민연대 활동가의 말 또한 장기적 전략의 부재, 정책생산의 부족에 대한 지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지난해부터 해오고 있는 ‘반차별집중행동’은 정기회의에서의 각 단체별, 영역별 활동 공유 차원을 넘어 실질적 연대를 모색하기 위한 방식으로 시작한 사업으로 2005년에는 이주노동자 인권을, 올해는 HIV/AIDS 감염인 인권을 그 주제로 진행해오고 있다. 물론 2005년 반차별집중행동의 성과로 출입국관리법 문제가 이슈화 되었다는 성과가 있지만 역시 대체적으로 인권회의 내에서의 결합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인권회의 주최의 토론회나 기자회견 등에서 조차 인권단체 활동가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인권회의를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기운
좋든 싫든 인권운동진영의 연대체로 인권운동의 대표성을 띄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각종 대규모 집회는 물론 국가인권위원회, 법무부 등의 창구로 활용되면서 인권단체연석회의가 갖는 책임성은 만들어질 당시에 비해 대단히 커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라난 위상만큼 내부의 활동력은 위축되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며 연대의 끈이 얇아졌다면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손상열 활동가는 “인권운동론까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인권운동의 전략, 한 해의 사업계획을 마련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공감대가 인권회의 안에서 만큼이라도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러한 한계와 문제점을 오롯이 인권회의 탓으로 돌리고 과제로 미루기는 힘들 것이다. 영역 간 소통의 문제, 인권회의 활동의 공유와 결합력을 높이는 문제도 결국 정기회의에 참석하는 각 단체 활동가들과 그렇지 않은 활동가들 사이에 문제, 인권회의를 둘러싼 인권운동진영의 환경과 조건이 같이 변화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인권단체연석회의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무관심에 다름이 없었다. 심지어 4지선다의 문항을 제시하고서야 답을 듣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물론 애교 섞인 문답이었지만 대다수가 ‘2번, 그런대로 운영진이 열심히 하고 있다’를 골랐다는 점에서 오히려 인권회의를 둘러싼 인적 환경은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개인적인 판단이다. 좀 더 비약해서 낡은 운동습관과 관성에 대해 인권회의뿐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활동가들조차 무감각해지고 정체되어 있다면 변화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고 전망은 몹시 어둡다.
인권단체연석회의에서는 이제 세 돌을 맞는다. 인권운동이 위기인지 암중모색기인지는 보는 시각과 서 있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운동은 그 존재이유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인권단체연석회의의 선택이 자못 궁금하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