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보건의료단체연합 |
이는 한국타이어에서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의 이야기다. 얼마 전 그 성실한 노동자의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남편이 그렇게 힘든 데서 일하는지 몰랐어요.”라며 눈가에 눈물을 글썽인다. 성실하게 돈 잘 벌어온다고 좋아했던 남편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그런 끔찍한 현장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을 그 동안 몰랐던 게 너무 미안하다고 한다. 남편은 산재(산업재해)인정을 받았지만 그건 그 전에 돌아가신 분들이 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편도 혼자만 산재인정을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유족들과 함께 싸우기를 바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가에 물기가 번졌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저 그녀의 어깨를 살짝 감싸 안아 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타이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갑자기 죽어나갔다. 1년 반 동안 15명이라고 한다. 자살과 암을 제외하더라도 최소 8명의 노동자가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그 공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람이 죽었는데 원인이 없다고요?
문제 제기가 시작될 무렵, 한국타이어나 대전지방노동청 모두 자신들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대전지방노동청은 “법과 원칙에 의해 산업안전 관련, 근로감독 업무를 충실히 진행했다”고 밝혔고, 한국타이어는 “작업장 내 유해물질에 대한 객관적·과학적 근거도 도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것은 일방적인 의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결과 이들의 주장은 완벽한 거짓임이 드러났다. 2005년부터 3년 동안 공장과 연구소 등지에서 발생한 183건의 산업재해를 은폐해 온 것으로 집계됐다. 산재사고의 발생을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공상처리해온 것이다. 또 최근 3년간 건강진단결과에서 나타난 질병유소견자 및 요관찰자에 대한 근무 중 치료 등 적절한 건강보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총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노동청은 근로감독을 철저히 했다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한편 사망자들의 사망 원인을 살펴보면 식도암, 폐암(2명), 뇌수막종양, 심장질환(2명), 폐암, 기계이상작동, 심근경색(8명), 자살, 간세포암, 기계압사(2명), 급성골수성백혈병, 뇌출혈, 돌연사 등으로 다양하다. 사망 장소도 공장, 자택, 병원, 기숙사 등 일정치 않고, 근무기간도 최소 1년에서 최장 26년까지며, 사망한 근로자들의 나이도 26세에서 55세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죽음에 공통점은 별로 없어 보인다.
주목할 대목은 15명 중 절반 이상이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점이다. 이러다 보니 ‘집단 발병’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타이어는 고무를 가지고 타이어를 만드는 회사이다. 고무 공장은 전통적으로 수많은 유기용제와 화학물질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신탄진의 한국타이어 공장 근처의 주민들에게 공장은 심각한 유기용제 냄새를 내뿜는 공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또 지역 내에서는 탄탄한(?) 노무관리로 유명한 회사다. “현 노조 집행부와 의견을 달리하거나 사측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직원들은 흔히 말하는 ‘왕따’를 당한다. 이들 왕따 직원들은 밥을 먹거나 휴식시간에도 혼자 다녀야 하며, 직원들도 이들을 멀리해야 회사 생활에 유리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TV에 비춰진 화면에는 카메라를 피하고, 의심과 두려움에 가득 차 진짜 방송국임을 재차 확인하거나 인터뷰를 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누구나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일반인구보다 16배나 높은 심장질환 사망률
지난 11월 28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는 역학조사 진행과정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역학조사가 마감되지도 않은 시점에 무언가를 발표하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물론, 구체적인 원인물질을 밝혀내지 못한 단계였고 실제 과정상에서의 많은 문제도 지적되었지만 발표된 단 하나의 결과는 그 자체로 충격적이었다.
심장질환으로 의심되는 돌연사 7명에 대해 이를 같은 연령대의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률과 비교할 때 16배나 높은 것이라는 것이다. 사망률이 16배라는 것은 최소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에 관해서 예상되는 수준보다 훨씬 발생률이 높은 ‘유행(집단발병)’이라는 것이다. ‘유행(집단발병)’은 뭔가 원인이 있게 마련이고, 원인을 밝혀내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예방해야 함을 의미한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이의 전파와 확산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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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역학조사의 최종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심장질환과 관련해서 이황화탄소와 같은 물질의 관련성을 확인 중에 있다고 한다. 이황화탄소는 약 20년 전 수많은 원진레이온의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유기용제이고 당연하게도 심장질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유족들이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TV에도 나오던 유기용제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역학조사가 시작되던 당시 이미 솔벤트는 과거의 ‘그’ 솔벤트가 아니고 작업장은 대대적인 청소를 마친 후였다고 한다. 암과 관련해서는 명백한 발암물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조사 중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심장질환의 위험요인인 스트레스와 교대제, 장시간 노동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학조사에는 부족한 지점이 있다. 역학조사의 특성상 사업주가 자료를 내어주거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그 원인을 밝히기 어렵다는 한계를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과정상 노동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은 매우 부족해 보인다. 이미 1천여 건의 산안법 위반 사항이 묻히는 것을 수년간 보아온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그래도’ 견디면서 남아있는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라 힘들어서 떠난 이직자들을 포함한 조사와 유사질환에 대한 전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암의 경우 폐암으로 한정짓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러다 보니 역학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의혹은 남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죽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한국타이어에서 발생한 일련의 죽음의 행렬은 우리나라 산업보건제도상의 취약점을 모두 모아놓은 집약 판이다.
회사는 문제가 언론을 통해서 크게 발전하기 전까지는 쉬쉬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유족들의 가계도를 그리고 뒷조사까지 해서 관리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회유를 하고 어떤 때는 협박하면서 문제가 더 안 번지게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다. 평상시에 관리를 잘 해왔다고 당당히 이야기했으면서 역학조사를 받기 전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협조를 회피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아니면서 공장을 대대적으로 청소하고 평소에 안하던 유기용제에 대한 특별 관리 지침을 하달했다.
건강검진기관과 작업환경측정기관은 매년 1회 이상 사업장을 방문하고 노동자들을 만났을 것이 분명함에도 어떤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황화탄소와 같은 유독한 물질이 쓰이고 있고, 사람들이 죽기까지 했는데 이에 대한 사후관리와 원인을 밝히는데 인색했던 것이다. 물론, 검진기관이나 측정기관이 강제력을 가지고 조처를 명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심각한 냄새가 나고 사업장에 고무 분진들이 날릴 정도로 쌓여있는데 어떤 조처도 취하지 못했다.
지방노동청은 관리감독을 잘 하고 있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무색하게 감사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무슨 이유에서인지 1천여 건이 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을 적발하지 못했다. 틀림없이 일 년에 몇 번씩 사업장에 대한 감사를 했을 텐데 어찌 된 일인지 100여 건이 넘는 산재 은폐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신청된 산재에 대해서 불승인을 내었다. 아마도 산재보상보험법상의 과로 기준에 맞지 않는다거나 명백한 유해요인을 확인할 수 없다고 불승인을 냈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들이 자신이 노출된 물질을 명백하게 입증하기 어렵고,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를 증명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저 노동자가 어렵게 제출한 서류만을 평가하고 불승인을 내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 노동조합도 한몫 거들었다. 조합원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노동조합은 도대체 뭘 했는지 궁금하다. 이 문제를 사회에 알린 것은 조합에 대해 문제인식을 가지고 있던 한 ‘왕따’ 노동자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해고를 각오한 그 노동자의 발언이 없었다면 이 일은 영원히 묻힐 수도 있었다. 죽음에 대한 의혹을 가지고 찾아온 유족에게 ‘개인질병’이라고 마치 근로복지공단이나 사측처럼 대답한 노동조합이 있었다. 노동조합은 사측이 ‘개인질병’이라고 주장을 하더라도 혹시 작업관련성은 없는지 따져야 정상인 것인데, 무언가 이상하다.
내 아들, 내 남편은 죽었지만…
역학조사 결과 유기용제와 같은 명백한 화학물질의 영향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사측이 허락한(?) 만큼만 확인할 수 있는 역학조사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미 유해성이 밝혀진 화학물질만 확인할 수 있는 지금의 과학적 수준에 따라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따라서 이미 사망한 노동자들의 산재인정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지방노동청은 잘 해야 청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수준으로 정리가 될 것이고, 작업환경측정기관이나 건강검진은 또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처럼 검진을 하고, 측정을 할 것이다. 사측은 이미 적발된 산안법 위반에 대해 벌금을 물게 될 것이고 몇 명이 사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은 노동자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한국타이어의 부회장이 이명박 당선자와 사돈지간이라고 한다. ‘어떡하죠? 대선 끝나고 나면 이거 밝히기도 힘들어지는 거 아니에요? 세상에 사돈지간이래요.’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를 하면서 예측되는 최악의 결과들에 대해 유족들과 나누던 자리, 유족들의 한마디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내 아들/남편은 죽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면 앞으로는 안 죽지 않을까요? 저것(회사)들이 그래도 우리를 인간 취급은 해주지 않을까요?”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