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승부가 끝난 17대 대통령 선거 또한 다를 바 없다. 비전과 정책·공약에 대한 검증과 토론은 깡그리 사라진 채 온갖 비리와 이권 다툼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후보자들의 ‘쇼’에 이성은 흔들리고 진지한 토론이 언급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상황은 어색해졌다. 결국 지난 해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두고 영국
‘어디선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반장’을 자처한 것은 다름 아닌 신문들이다. 고전적인 신문의 줄서기이지만, 조·중·동의 불편했던 10년을 되찾기 위한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치열하였다. 노골적으로 정파성을 드러내며 대통령 만들기에 여념 없었던 신문들이 가장 많이 공을 들인 것은 바로 ‘BBK 의혹’이었다. 사실상 정책과 공약의 숱한 문제와 친자본적인 정책으로 일관하며 삶의 공공성이 아닌 소수의 이익을 대변해 왔던 이명박 후보의 가장 골칫거리는 다름 아닌 ‘BBK’를 둘러싼 문제였다. 물론 결과적으로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선거 운동 전후로 이명박 후보에게 ‘BBK’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지난 해 12월 5일 검찰에서는 당시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 주며 온갖 의혹을 ‘무혐의’라 선언하였지만, 여전히도 의혹의 단서들은 인터넷을 통해 흘러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여하튼 시한폭탄과도 같은 ‘BBK 의혹’을 제거하기 위해 조·중·동으로 상징화되는 언론매체들은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대통령 만들기 대작전, 챕터 1. 여론조작?
선거 시기, 그 어느 때보다도 여론조사가 넘쳐난다. 지지율 추이를 살피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각 언론사는 이벤트처럼 여론조사를 배치하고, 때에 따라서는 신문사의 입맛에 맞게 가공되기도 한다. 특히 올해 대통령 선거는 여론조사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6월 11일부터 12월 10일까지 6개월 동안 주요 신문의 자체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앙일보>는 6개월 동안 28회의 자체 여론조사를 실시하였고,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17회, <동아일보>와
특히나 BBK 의혹을 연관 지어 지지율과 부동층 등을 조사하는 여론조사는 단골손님처럼 등장하였다. 실제로 지난 11월 19일 대선 D-30을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언론매체는 여론조사를 실시하였고, 이에 대한 결과를 지면을 통해 발표하였다. BBK와 관련하여 김경준 씨가 귀국한 후 실시한 첫 번째 여론조사이기도 하다. <조선일보>는 “1·2위 후보 격차 13.9%p에서 20.3%p로 벌어져”라는 기사를, <동아일보>는 “주요 후보 선호도 큰 변화 없어”라는 기사를 보도하였다. 기사의 핵심은 김경준 씨가 송환되었어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BBK 때문에 정권교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등 상식 밖의 여론조사도 서슴지 않았다. 이 뿐 아니라 BBK 의혹에 대한 검찰의 결과 발표가 있자 언론매체는 발 빠르게 여론조사를 실시하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는 인기도 자랑으로 이명박 후보의 ‘대세론’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결국 여론조사는 수치화된 흥미를 유발시키며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략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과학적인 조사방법을 사용한 듯 포장하였지만, 실제 여론조사 관련하여 조사 응답자의 대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경우도 부지기수인 점을 본다면 여론조사의 목적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챕터 2. 사생활 침해?
여론조사를 통한 ‘대세론’에 훼방이 되는 것은 본질과 핵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특히 BBK를 둘러싸고 김경준 씨를 폄훼하기 위한 언론매체의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두드러졌다. 이런 가운데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 김경준 씨의 인권은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동아일보>의 끈기는 단연 돋보였다.
<동아일보>는 김경준 씨의 심리상태와 개인의 성격 등에 집착하는 기사를 수차례 게재하였다. 그리고 <동아일보>는 김경준 씨와 에리카김 씨의 심리상태에 대해 ‘불안’ ‘초조’, 성격은 ‘다혈질’로 정리하였다.(김경준 씨 변호사 “이 정도 사건인 줄 몰랐다”, <동아일보>, 11월 21일 ; 다혈질로 알려진 김 씨의 성격 등으로 미뤄 김 씨가 무작정 법원 판결만 기다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1차적으로 심리상태와 성격에 초점을 맞춘 <동아일보>는 차츰 가족 행보와 가정사, 외모 등에 관심을 보이며 본격적으로 BBK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며 김경준 씨를 향해 빈정거리기도 하였다. <동아일보>는 지난 23일 김경준 씨의 어머니의 귀국이 이어지자 11월 24일 “범상치 않은 ‘BBK 가족’”이라는 기사에서 한나라당의 대변인의 ‘가족 사기단’이라는 발언에 동조하더니 같은 날 황호택 논설위원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라는 칼럼을 통해 김경준 씨를 ‘미국 천재 사기꾼을 닮았다’며 ‘뺀질이’로 규정하기도 하였다.[“캐치 미 이프 유 캔”, <동아일보>, 11월 24일 ; BBK 사건은 ‘Catch me if you can(날 잡을 테면 잡아 봐)’의 한국판(版) 같은 생각이 든다. … 검찰청사 포토라인을 지나며 씩 웃는 모습은 디카프리오의 연기 같았다. … 그런데 이 후보는 어떤 경위로 사기의 백과사전과 같은 ‘뺀질이’와 한때나마 동업을 했을까]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철저하게 본질에서 비껴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김경준 씨를 폄훼하기 위한 저열한 욕망은 ‘범법자’라는 낙인 속에서 무차별적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심지어 김경준 씨의 미국 자택까지 독자들에게 공개하면서 BBK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김씨 가족 LA 베버리힐스에 주택 2채 소유”(<동아일보>, 11월 24일)라는 기사에서 <동아일보>는 김경준 씨 가족이 미국에 고급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며 미국 현지 언론을 인용보도하였다. 어처구니없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그저 김경준 씨가 소유한 주택과 BBK 의혹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전혀 맥락 없는 기사가 등장한 것은 <동아일보>가 김경준 씨의 귀국과 BBK 의혹으로 인해 지지하는 후보자가 행여나 당선되지 못할까 하는 조바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결과일 뿐이다.
챕터 3. 적반하장도 유분수?
지지율 1위를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노력은 다름 아닌 정책 선거 주장이다. 많은 이들이 선거를 접하면서, 특히 17대 대선을 겪으면서 정책과 공약의 심각한 부재를 지적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17대 대선을 ‘최악의 선거’라고 꼽는 데에는 그 어느 때보다 정책과 공약의 미래와 그림보다는 구호와 후보자 공방으로 인해 훼손된 민주주의만이 형식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누이 이야기하고 수차례 강조하였지만,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정책 검증이 실종될 것이라며 우려를 하고 나섰다. 그 시점은 다름 아닌 김경준 씨의 귀국. 11월 17일 <조선일보>는 “D-32 대선, ‘BBK 늪’ 속으로” 기사의 작은 제목으로 “대선 코앞인데 정책검증은 실종”을 달았다.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대선을 32일 앞두고 유권자의 심판이 필요한 정책검증 등 다른 이슈들은 모두 ‘BBK 늪’에 빠져 실종된 상태”라며 걱정하였다. <동아일보> 역시 11월 19일 “정책은 없고 ‘검찰’만 남은 대선 정국”이라는 기사를 통해 “대선을 한 달 앞둔 지금도 정책적 쟁점은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라며 한탄하였다. 사실상 후보자 간 공방에서 열을 올려왔던 신문들이 갑작스레 맘을 바꾼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 만들기 대작전의 일환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후보자의 정책이나 공약에 대해서 제대로 된 검증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고, 공약에 대한 소개조차도 면밀하게 수행하지 못한 이들의 입에서 느닷없이 정책검증의 부재를 걱정하다니, 정말인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대통령 사수 궐기대회?
그리고 지난 해 12월 19일, 17대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인 덕인지 ‘대통령 만들기 대작전’은 일단 성공하였다. 데이터나 신뢰성보다는 결과를 부각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여론조사는 물론 작전에 방해물이 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도하였다. 행여나 걱정스러워 <동아일보>는 대선 당일 “심판의 날, 미래에 투자하는 날”이라는 사설을 통해 “선진화의 문턱에서 주저앉을 것이냐, 아니면 재도약의 기틀을 다질 것이냐가 오늘의 한 표에 달려 있다.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 내년은 건국 60주년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그 첫 단추를 끼우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라며 마지막까지 지지자에 대한 애정을 쏟아 부었다. 대다수의 신문들이 ‘선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과는 달리 <동아일보>는 ‘심판’이라는 표현으로 저돌적인 방식을 택하였고, ‘선진화’라는 당선자의 레토릭을 차용하기도 하였다. 마지막 쐐기 박기까지 잊지 않았다.
다음 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은 자축하는 등 설렘이 가득한 대선 기사를 보도하였다. 특히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재도입 이후 최다 표차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쭐거리는 태도를 보였다.(“이명박 528만표 차 압승” <조선일보>, “이명박 최다표차 대통령 당선” <동아일보>) 그리고는 이미 국회에서 의결한 BBK 특검법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사명(使命)”이라는 사설을 통해 “당선자의 발걸음을 가장 먼저 붙잡는 것은 역시 특검의 조사”라며 “대선 사상 최대의 표차다. 그렇다면 당선자에 대한 특검을 의결했던 국회의 뜻은 당선자를 과반에 육박하는 표로 당선시킨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흥분하였고, <동아일보> 역시도 “법조계 ‘BBK 특검’ 원점 재검토론 ‘솔솔’”이라는 기사를 통해 “특검법 자체가 정치적인 결단인데, 이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다면 그것 역시 국민의 뜻 아니겠느냐”며 실명없는 어느 재경지검의 중견간부의 말을 전달하였다.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는 ‘BBK’에 대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노력이 마냥 갸륵(?)하기만 하다.
지난 해 12월 19일로 ‘대통령 만들기 대작전’은 종료하였다. 그러나 조만간 ‘BBK’의 남아 있는 불씨로 인해 ‘대통령 사수 궐기대회’가 한바탕 몰아닥칠 기세다. 그리고 그 기세 속에서 아무리 입 아프게 떠들고, 손가락 아프게 두들겨 봐도 작전에 참여했던 그들의 잃어버린 이성을 찾기는 힘들 법하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