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네트워크의 필요성: 과거와는 다른 오늘날의 ‘빈곤’
또한 고학력자들도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력서에서 학력을 누락하고 나서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지 못해, 어리석기 때문에 빈곤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착취와 사회적 불의에 기반한 특수한 경제적 구조로 인해 빈곤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기업이 이윤과 배당금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비용을 줄이면서 그들은 해고당했습니다.
▲ 확연하게 달라진 과거와 현재의 자동차 생산방식 |
고도의 기술적 발전으로 그간 인간이 해왔던 작업들을 컴퓨터와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자동차 공장의 생산과정 또한 거의 대부분이 자동화되었습니다. 1950년대에 크라이슬러(미국의 자동차 회사) 공장에는 약 10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똑같은 수의 자동차를 생산하는데 1만 명 미만의 노동자만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다양한 산업들에서 자동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장치산업들의 경우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비용을 줄이기 시작했고, 노동집약적인 부문은 중국과 같은 저임금 국가들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실업 상태에 처하게 되고 빈곤층의 상당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힘을 모으기 위해, 홈리스 연합의 이전 활동의 실패와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고 성공적인 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대중들의 조직화 과정: 중요성과 의미
가난한 대중들은 인종을 가로질러 사회세력으로 조직화되고 단결했습니다. 단결을 이루기 위해 지도자들은 협력과 훈련의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사상가 그람시는 이러한 단결된 지도자들을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난한 대중들이 더 깊게 공감하고 더 멀리 보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더 큰 대중으로 통합되기 위한 과정에서 가난한 대중들로부터 지도자들이 출현했습니다. 이것은 가난한 대중들의 조직화 과정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단결과 통합이라는 부분은 교육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성찰하면서 배우는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를 알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던 것들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거칠게 대략적으로 그린 그림보다는 상황의 특이성 및 복잡성에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개발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당신이 큰 그림만을 그리고자 한다면, 당신은 구체적인 투쟁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미묘한 무언가를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대중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하고 상황을 바꿀 책임이 있습니다.
▲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년 ~ 1937년) |
‘반(反)지성주의’에 관하여
물론 반지성주의는 지식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것에 대한 비판에서 출현한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대중에 대한 맹신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보통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 이들이 반지성주의의 경향을 나타냅니다. 미국 대선 후보 트럼프에게서 이러한 반지성주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말이 곧 정답이며 절대적 진리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타인의 판단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또한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근거가 빈약한 데이터, 왜곡된 사례를 거리낌 없이 활용합니다. 지금 당장 정답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인해 현실의 ‘여러 가지 원인의 복합적 효과’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반지성주의 경향은 지식인들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실용주의는 근본적인 원인과 장기적인 결과보다 즉각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결과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실용주의자들은 종종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주장하지만, 반대로 그들은 이론적 지식의 개발과 활용에 있어 엄청난 성급함과 함께 편협한 실용주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론적 통찰 없는 실천은 맹목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