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급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우리는 서울역, 대전역, 대구역 등 전국의 대도시 역사 인근에서 무료로 밥을 나누어주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무료로 나누어주는 밥을 우리는 무료급식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주된 이용자들은 거리노숙인들이나 쪽방 등과 같이 주거가 불안정한 도시빈곤층들, 그리고 저소득 노인층들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여러 가지 얘기들을 한다.
‘거리에 쪼그려 앉아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어쩌다가…’
‘나는 열심히 살아야겠다. 안 그러면 저렇게 된다.’
‘어디 가서 무슨 짓이라도 하면, 밥은 안 굶고 살 껀데, 사람들이 게을러서…’
‘얘야, 너도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 사람들처럼 된다. 알았지?’
내가 들어본 얘기들만 적어본 것이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얘기들이 있을 것이다.
동대구역세권 개발로 밀려나는 급식공간
내가 사는 대구에서도 마찬가지로 대구역, 동대구역, 만평네거리, 북비산네거리, 달성공원, 두류공원 등에서 노숙인,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진행하고 있고, 지금 말한 곳은 전부 거리급식을 하는 곳이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을 맞아가면서, 급식을 나누고, 밥을 먹는다. 우리 단체는 2002년 4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동대구지하철역에서 저녁 7시에 무료급식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동대구급식의 다른 요일은 교회 등 다른 단체들이 각각 한 요일을 맡아서 급식을 하고 있다. 평균 200~250명 정도의 인원이 식사를 하신다. 비단 그 인근지역을 중심으로 생활하시는 거리노숙인들, 쪽방주민들 뿐만 아니라 먼 곳에서 지하철로 40~50분씩 타고 오시는 노인분들도 있다. 아마도 연세가 있으셔서 지하철 이용이 무료여서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급식을 매일 드시러 오시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에 동대구역세권 개발, 동대구복합환승센터에 대한 대구시의 승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사장의 펜스가 올라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펜스가 넓어지고, 높아지고, 나무들은 뽑혀나가고, 벤치도 사라지고 있다. 그 넓던 동대구지하철광장 중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급식공간으로 묵인되어 오래도록 급식을 하던 곳이 자본을 앞세운 펜스에 밀려서 그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개발이 시작되기 전에는 그나마 숲 뒤에서, 자전거 거치대 아래서, 벤치에서, 이도저도 아니면 공원바닥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등을 지고라도 먹을 수 있었는데, 지난달부터는 아예 도로 바로 코앞에서 먹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하철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저녁 꽉 막힌 퇴근차량에 정차해 있는 사람들, 인도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되었지만, 그래도 배가 고프니 먹어야 하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좀 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어깨를 움츠리고, 철지난 점퍼 깃을 세우고라도 줄을 서 있다.
▲ 비를 피할 곳이 없어 자전거 주차공간에서 무료급식을 먹고 있는 모습 [출처: 대구쪽방상담소] |
그래서 우리는 최근에 동대구급식을 이용하시는 분 140여 명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를 간략히 요약해 말씀드리자면, 설문조사에 응한 이들의 42%는 무료급식으로만 식사를 해결하시고, 56%는 경제사정이 어려워서 급식소를 찾는 분들이다. 이들의 평균연령은 70세이고, 여성이 남성보다 조금 많다. 95% 이상은 특정한 직업이 없으며, 80%는 정부보조금이나 친구, 친척의 도움으로 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이들의 월 평균 수입은 13만원 정도였으며, 수입의 60% 정도는 식비와 의료비로 지출을 한다. 수입의 나머지 20% 정도는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이들의 62%는 혼자 살고 있고, 77%는 비수급자이다. 이들이 비수급자인 이유는 61%가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수급자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비수급자들은 노령연금이 거의 유일한 수입이며, 모자라는 생활비는 파지나 고물을 팔아서 수입을 보전하고 있다. 동대구역에서 무료급식이 중단된다면 54%는 다른 급식소를 찾아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고, 24%는 저녁은 굶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저녁을 굶어야 하는 이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할 만한 차비의 여유조차 없는 지하철 무료이용이 되지 않는 65세 이하의 노숙인들이나 쪽방주민들일 것이다. 생활상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97%가 먹고 사는 생계의 문제와, 건강의 문제라고 답했다. 이는 지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과도 일치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향후 급식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67%는 ‘비나 눈을 피할 수 있는 실내급식이라면 좋겠다’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25%는 ‘다른 곳으로 옮기든, 거리급식이든 괜찮으니 급식이 없어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결론을 요약하자면, 정부의 공공복지체계에서 제외된 대부분의 이들이 굶지 않기 위해 선택하는 곳이 무료급식과 같은 서비스이고, 비인간적인 거리급식이 눈비를 피할 수 있는 실내급식으로 바뀌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큰 바람이고 거리급식이라도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게 속마음인거 같다.
실내 무료급식소 설치, 무시된 공약사항
지난 주, 동대구복합환승센터를 건립하는 시공사인 신세계 측은, 급식을 중단하라는 통보를 해 왔다. 이미 몇몇 급식단체들은 인근의 체육공원으로 옮겨서 급식을 하고 있지만, 옮긴 곳의 상가들, 주민들의 민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여전히 동대구지하철광장을 고수하는 우리단체를 포함한 몇몇 단체들은 점점 더 좁아진 공간에서 헤드라이트 불빛과 차량의 매연과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하며 급식을 하고 있다.
실내 무료급식소 설치는 지난 몇 차례의 대구시장 후보들의 공약사항이었지만, 시장이 되면 무시해버렸다. 2012년에 어렵게 제정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른 급식지원과 제16조에 따른 노숙인급식시설이라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이번 6.4 지방선거에도 실내 무료급식소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법도 생기고 구체적인 지원과 시설유형이 만들어 졌음에도 우리의 요구와 목소리는 그다지 커지지 못한 채, 여전히 ‘거리라도 괜찮으니, 맘 편하게 급식을 하고 드실 수 있게만 해 달라’는 정도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인간적으로 밥 한 끼 먹을 수 있도록 하면 안 되나?
‘요즘 세상에 밥 굶어 죽는 사람이 어디 있나? 자기만 부지런하면 무료급식소든 어디든 가면 해결할 수 있는데, 게을러서 굶는 거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무료급식이라는 환경과 이러한 곳을 이용하는 분들의 상황에 조금만 더 다가서면, ‘밥 굶는 사람들이 매일 수백명씩 저렇게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실내급식소 만드는 게 돈이 수십억 드는 것도 아닌데, 좀 설치해서 인간적으로 밥 한 끼 먹을 수 있도록 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하는 사람, 공무원, 정치인, 돈 있는 사람은 잘 없다. 그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