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는 반팔도 지나치지 않은 날씨지만 아침저녁은 영락없이 쌀쌀하다. 옷 입기 애매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십상이지만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이야말로 겨울옷을 입기도, 그렇다고 벗기도 애매한 시기다. 하지만 이런 불편쯤이야 지난 겨울 한파에 비하면 호사다. 지하도나 초저녁이면 금세 만원이 되는 응급대피소가 아니면 도통 추위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서울시에서 월세를 두세 달 지원하고 이후에 자력으로 납부하게 하는 ‘임시주거지원’사업은 정작 한파가 가장 매서웠던 1, 2월에는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당해 예산의 고갈이었다. 올해 사업은 지난 달(3월)에 들어서야 재개되었다.
서울시는 임시주거지원 사업의 재개에 맞춰, “서울시, 단기월세 지원한 노숙인 77.8% 거리생활 탈출”이라는 보도 자료를 냈다. 이에 따르면 꽤 효과적인 사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예상은 350명에 대해 지원할 계획이었으나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여 572명을 지원하게 됐고, 그중 445명(77.8%)이 노숙을 벗어나는 데 성공하였다 한다. 그들 중 24%는 취업에 성공했고, 28%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어 주거•생계 대책도 마련되었다고 한다. 허나, 아쉽게도 위 사업은 서울시처럼 칭찬 일색으로 평할 수 없는 여러 빈틈과 과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턱없이 부족한 물량
서울시는 올해 임시주거지원 대상 인원을 작년과 같이 350명으로 편성하였다. 적절한 규모일까? 우선 임시주거지원 제도가 대상으로 하는 인구집단의 규모를 살펴보자. 먼저, 서울시는 지침을 통해 임시주거 지원사업의 대상을 “(1순위) 만성 거리노숙인, 여성노숙인, (2순위) 초기노숙인, (3순위) 찜질방, 만화방, 쪽방 등에 거주하는 잠재 노숙위기계층”으로 정한 바 있다. 그 중 만화방, 찜질방 등 이용자 규모가 파악되지 않은 집단을 제외한 대상자군은 아래 표와 같다. 즉, 서울시의 임시주거지원 사업의 대상자군은 최소 15만 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 ‘비주택거주가구 주거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2014년 노숙인등의 복지사업안내’ 재구성 [출처: ‘비주택거주가구 주거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 ‘2014년 노숙인등의 복지사업안내’ 재구성] |
물론 서울시의 표적 집단은 ‘거리노숙인’이다. 그렇다면 거리홈리스의 규모를 보자. 일시보호시설이란 거리홈리스들이 월 20일 간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사실상 서울지역 거리홈리스는 약 1,200명에 이른다. 350명이란 물량은 거리홈리스에 한정하더라도 채 30%도 포괄하지 못하는 극소량인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거리홈리스들에게 임시주거지원 사업은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입시나 취업 관문과 다르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다.
주거의 권리는 실종되고
서울시가 내세우는 1, 2순위 대상도 사실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위에 보다시피 모든 거리홈리스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 중 노숙한지 오래됐거나 여성이거나 노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어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 이 범주에 들지 않으면 거리노숙을 지속하거나 시설에 입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노숙인복지법은 시설은 물론 임대주택, 임시주거비지원, 그 밖의 주거지원 등 다양한 주거정책을 정부와 지자체에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서비스 대상자의 현실과 욕구를 반영하여 그에 적절한 주거지원을 하라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는 노숙인 권리장전을 통해 이를 “주거지원을 받을 권리”로 명문화하고 있다. 권리, 즉, 홈리스는 주거지원을 보장받지 못했을 때 서울시에 주거지원을 청구할 수 있고 서울시는 이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짠 예산대로 물량을 공급하고 그것이 다 소진되면 내년을 기다리라는 지금까지의 방식은 이런 권리성을 전혀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초기 노숙인’을 임시주거지원 사업의 2순위로 두는 것 역시 적절치 않다. 초기노숙인(노숙력 6개월 미만)은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른 지원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주거와 생계를 동시에 지원(2014년 기준 생계=399,900원, 주거=357,600원. 단, 주거는 현물지원)받을 수 있어, 이 제도는 임시주거지원보다 보장 수준도 더 높다. 따라서 서울시는 얼마 되지도 않는 임시주거지원을 조각내기보다 초기 노숙인을 현장지원체계를 통해 신속히 발굴하고, 긴급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했어야 했다.
주거지원에 대하여, 선서!
서울시는 올해부터 임시주거지원 대상자에게 ‘임시주거지원 입주자 서약서’를 받을 예정이다. 의식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법률이 정한 복지지원을 받는 데 서약을 한다는 것도 의아하지만, 그 내용에 이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아래는 총 여섯 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서약서의 일부다.
“임시주거 입주 전까지 일시보호시설, 응급대피소 등 노숙인복지시설 실내에서 취침하겠습니다”, “주거지원 기간 동안에는 거리에서 잠을 자는 행위를 하지 않겠습니다”, “위 내용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임시주거지원을 중단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여섯 가지 항목 중 세 항목은 거리노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이다. 주거지원에 앞서 받는 다짐에 왜 이토록 ‘거리 노숙 금지’가 강조되어야 할까? 임시주거지원 사업이 주거지원을 통한 지역사회 정착이 아니라, 거리노숙인구 줄이기에 목적이라도 두었단 말인가? 이런 의혹은 특별자활근로라는 서울시 일자리 사업을 볼 때 더욱 짙어진다. 이 역시 일자리를 주는 조건으로 거리노숙 금지, 주거지 진입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복지지원은 수단으로 기능해서는 안 된다. 주거지원 정책이면 주거지에 잘 진입하고, 주거유지와 상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하면 될 일이다. 대부업자나 요구할 법한 서약서를 강요해 노숙을 하지 않겠다고 몇 번에 걸쳐 다짐받는 것은 당사자로 하여금 그간의 노숙생활을 단죄하도록 하는 반인권적 조치다. 더욱이 서울시는 권리장전을 통해 “본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나 프로그램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제도 시행 3년, 이제는 바꾸자
서울시 임시주거지원이 올해로 3년차를 맡는다. 그러나 전술했듯, 작년 사업과 올해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위에 언급한 것들과 함께 고질적 문제로 제기됐던 ‘사례관리’의 문제도 여전히 작년 그대로다. 임시주거지원의 핵심은 주거지 진입이 아니라 ‘주거유지’를 위한 방안마련에 있다. 기초생활수급이든 일자리확보든 지원을 받은 홈리스가 향후 자력으로 주거를 낼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야 성과를 보는 것이다. 당연히 이 중심에는 임시주거지원 전담인력이 자리한다. 그러나 5개 기관에서 진행되는 이 사업에 서울시는 단 3명의 전담인력 예산만을 편성하였다. 그러면서 기관당 사례관리자 1인이 40명 이상을 넘지 않도록 지원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도대체 앞뒤가 안맞는 얘기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주거지원을 받더라도 방에 들어갈 때 한번, 생활물품 지원받을 때 한번 기관 실무자 얼굴을 보게 된다는 당사자들의 푸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임시주거지원은 시설일변도로 달려왔던 노숙인 복지 체계안에서 홈리스의 주거권을 정책화한 더 없이 중요한 사업이다. 과거의 한계를 답습하거나 거리노숙 금지를 위한 수단으로 도용하는 파행을 속히 중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