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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22호-홈리스인권 아우성] 필요하지만 구하기 어려운

[홈리스인권-아우성]은 ‘홈리스인권지킴이’활동을 통해 만난 거리 홈리스의 이야기를 나누는 꼭지입니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매주 금요일이면, 중앙지하도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한 홈리스가 있다. 벌써 3년이 넘도록 만나고 있는 분이지만, 실상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항상 등에 메고 다니는 커다란 배낭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가득차고도 넘쳐, 작은 보조 주머니까지 꽤 많은 물건들이 들어있는 듯 빵빵했다. 짐작이지만 그가 자고, 씻고, 입고, 먹고 하는 등의 고단한 삶이 큰 가방에 가득 들어있을 것 같았다. 만날 때마다 그는 언제나 팔짱을 낀 채로 계시거나 손에 신문을 한 뭉치씩 들고 있었다. 그리고 말씀이 별로 없으셔서 인사만 나누었지만, 다른 홈리스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조용히 옆으로 다가와 이야기를 들으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다른 활동가에게 옷과 운동화를 요청하셨다. 하지만 한주가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때, 요청하신 것들을 깜빡하고 챙겨다드리지 못했다. 씁쓸해하는 눈빛이 언뜻 보이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그를 자세히 바라봤다. 여전히 커다란 가방을 멘 그의 어깨가 축 쳐져있는 것 같아서 그런지 키가 큰 편인 그가 작아보였다. 그리고 소매 부분을 돌돌 말아 올린 와이셔츠는 지저분했다. 몸에 맞지 않은 듯 보이는 커다란 바지 아래에는 운동화를 신었지만, 너무 낡고 닳아서 옆이 터지고 심지어 구멍까지 뚫려 엄지발가락까지 보였다. 그 발가락을 보는 순간 섬세하게 챙기지 못한 미안함에 사무실로 바로 찾아오시면 다음 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가 조금은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그 이유를 들었다.
종교단체에서 주는 조금의 구제금을 받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낮 시간에는 때를 맞춰서 서울과 경기지역을 돌아다녀야 한다고 말이다. 500원, 1000원을 받기 위해서는 계속 걸어야 한다. 부지런히 걷지 않으면 그마저도 받을 수 없고, 교통비와 담뱃값도 벌 수 없다. 낮에는 그렇게 하루살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다른 노숙인 지원 단체를 이용하기도 어려웠고, 이용해도 물품을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볼 때마다 축 쳐지는 그의 어깨와 절룩이는 다리, 또 어느 날은 새빨갛게 변한 그의 눈이 그가 얼마나 힘들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돌아오는 월요일 밤에 물품을 챙겨다 드리기로 했다. 다행히도 누군가가 주신 운동화 한 켤레가 남아있어서 지원할 수 있었다. 비록 새 운동화는 아니지만, 짐 가방을 든 채로 또 온종일 걸어 다닐 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종각역에서 만난 거리홈리스. 발에 맞는 신발 구하기가 어려워서 작은 슬리퍼를 찢어서 끈으로 묶어 다닌다. 노숙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넉넉하지 않아도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할 수 있었으면
요즘 거리에 계신 분들이 그 홈리스처럼 운동화를 자주 찾으신다. 겨울동안 신었던 운동화가 낡기도 하고, 이제는 날씨도 더워져서 발에 땀이 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운동화, 튼튼하고 큰 가방과 옷, 양말 등은 거리노숙을 하는 분들에게 필요 물품이지만 구하기가 어렵다. 개인적으로 물품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가끔 있지만, 필요한 수요보다 부족하다. 특히나 여성홈리스들에겐 위생용품이나 속옷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쉽지 않다. 물론 이런 것들은 노숙인 지원체계 안에서 마련되어 있는 부분이지만, 홈리스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함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물건을 얻으려면 돈을 주고 사야 한다. 하지만 이런 구매력을 잃은 홈리스에겐 먼 이야기일 뿐이다. 필요한 물품들이 있지만, 원하는 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더욱 귀할 수밖에 없다.

매주 현장 활동을 나갈 때 최소한 가방이 터져 테이프로 칭칭 감거나 비닐봉지로 가방을 대신한다든지, 너덜너덜 떨어진 신발을 테이프로 감아 걸어야 하는 홈리스가 없도록 넉넉하지 않아도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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