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송국현 동지의 생전 모습. |
올해 그의 나이는 53세였습니다. 25살 무렵에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나 가족들은 국현님을 장애인생활시설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23년을 살았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시설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시설이 좋아서 있었을까요? 그 누구도 나가서 살지 않겠냐고, 나가서 살아보자고 이야기한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다 시설에 방문한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들을 만났습니다. 활동가들이 물었습니다. 나가서 살아보지 않겠냐고, 힘들지만 동네에서 살아보지 않겠냐고 말이죠. 국현님은 용기를 냈고, 2013년 10월 시설에서 나와 자립을 시작했습니다. 큰 욕심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냥 동네에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장애를 갖고 있는 국현님은 집만 있다고 자립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먹고, 자고, 밖을 돌아다니려면 누군가의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또 오랜 기간의 시설생활은 시설 밖에서 살기 위한 많은 연습을 요구했습니다. 누군가의 지원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마침 한국에는 이런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장애인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활동지원제도’라는 서비스인데요. ‘활동지원제도’는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을 지원하는 국가제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제도는 장애 1~2급인 장애인에게만 지원된다는 것이었어요. 송국현님이 시설에서 나와 받은 등급은 3급이었습니다. 장애인의 장애등급을 결정하는 장애등급심사센터에서는 국현님이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4월 10일, 송국현님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은 장애등급심사센터를 찾았습니다. 자신은 활동보조인이 꼭 필요하니 자신의 장애등급을 다시 심사해달라고, 그리고 심사가 끝날 때까지 긴급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요청 역시 법에 보장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돌아온 것은 문전박대와 이의신청 거부였습니다.
4월 13일 오전 11시, 혼자 있었던 송국현님의 집에 불이 났습니다. 화재가 나면 자동으로 열리게끔 되어 있는 설비로 문은 열렸지만 국현님은 혼자서 문 밖으로, 침대 밖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급히 찾았을 때 송국현님은 온통 새카맣게 타버린 침대에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었습니다. 이미 그의 몸의 3분의 1이 심한 화상을 입은 후였습니다.
4월 17일 새벽 6시, 시설에서 나와 동네에서 산지 6개월 만에, 화상 후유증으로 4일간 고통을 겪던 송국현님은 끝내 돌아가셨습니다. 송국현님에게 활동보조인만 있었어도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장애등급으로 서비스제공을 가르는 복지제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 않았을 겁니다.
왜 사람의 몸에 등급을 매겨야 할까? 등급은 ‘낙인’입니다.
한국의 그 어떤 서비스도 사람의 몸에 등급을 매기지는 않습니다. 유독 장애인은 자신의 몸에 등급을 매겨야만 복지의 테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등급을 정하는 기준은 오로지 장애인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손상만을 보고 판단하며, 이를 판단하는 이는 의사입니다. 손상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환경이나 사회적 활동을 하는데 있어 불편함을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없습니다. ‘1급 장애인’이라는 말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능력 없는’ 몸을 가진 자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라는 것이 몸에 손상을 갖고 있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이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 수 없도록 구성된 사회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10년 넘게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건물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은 이동의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서 그 사람은 이동의 어려움 즉 이동의 장애를 겪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의 장애등급제는 몸의 손상만으로 그 사람의 몸에 등급을 매기고 있습니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장애인이 겪는 문제는 여전히 개인의 문제일 뿐입니다.
등급은 꼭 필요한가? 행정 편의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등급제입니다.
장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지체장애인과 지적장애인에게 필요한 지원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같은 지체장애라도 1급 장애인과 6급 장애인에게 필요한 지원 역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급수에 따른 지원만 있을 뿐입니다. 개인의 필요와 환경은 거의 고려되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복지 1년 예산 약 1조원 중 45%는 ‘장애인연금’입니다. 그리고 또 45%는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제도’입니다. 그런데 전체 90%를 차지하는 ‘장애인연금’과 ‘활동지원제도’의 지원기준이 바로 급수입니다. 이마저도 1~2급 장애인이 아니면 거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 등급이라는 것은 객관적이기 어렵습니다. 검사하는 의사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죠. 정부가 등급 기준을 강화하여 1급 장애인 수를 조절하는 것 역시 늘 있는 일입니다. 장애인 본인은 자신의 몸 상태와 필요한 것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낼 수 없고, 오로지 의사의 판단으로 몸에 등급이 매겨지고, 그 등급에 해당하는 서비스에 몸과 생활을 맞춰야하는 복지가 지금의 장애인복지입니다. 또한 새로운 서비스를 시행할 때마다 등급을 정하는 기준을 강화하여 재심사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장애인이 언제든 등급이 떨어져 그나마 받고 있는 서비스도 받을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일상의 공포 속에 살게 합니다.
송국현님 집에 불이 나고, 돌아가신 지금까지 보건복지부의 그 어느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제도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책임이라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만나는 공무원과 경찰 모두 귀찮은 일이 생긴 것처럼 피하고 변명만 할 뿐이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이 사회의 얼굴입니다.
송국현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며 25일간 장례투쟁을 진행하고, 송국현님을 보내드린 5월 12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농성이 630일을 맞았습니다. 농성을 시작하고 장애와 가난으로 돌아가신 8분의 영정을 광화문농성장에 모셨습니다. 이 죽음의 행렬을 이제는 막고 싶습니다. 사람의 존엄을 대가로 요구하는 잘못된 복지제도를 바꾸고 싶습니다. 광화문농성장으로 와주세요.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분명히 바꿀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