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빈곤, 사회 파괴 기계로 작동하는 현실

[특별기획]사회적 빈곤에 철퇴를(1) - 사회적 가난의 자화상, 가난은 예외적인가<1>
끊임없이 일하면서 끊임없이 실업에 노출되는 빈곤층, 불안정 심화

신빈곤이 아닌 사회적 빈곤의 실상

17대 총선 결과를 두고 우리 사회가 '좌선회'를 했다는 진단이 대부분이지만 그러나 참여복지가 계승하고자 하는 생산적 복지는 사회의 빈곤화를 막아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현재의 빈곤에 대한 적절한 대책도 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우에도 전국민 대비 수급자 비율은 과거 생활보호대상자의 비율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자활사업의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임금노동자의 60%에 육박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대부분 사회보험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실정이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더라도 하루에 3명꼴로 ‘생계형 자살’(엄격히 말하면 ‘사회적 타살’)을 한다는 경찰청의 통계는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증가한, 좀더 정확히 IMF 구제 금융 이후 증가한 빈곤층을 흔히, 신빈곤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신빈곤은 노동시장 유연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노동시장유연화와 사회보장제도로부터의 배제라는 점을 함께 고려하지 못한다. 따라서 청년실업이나 여성의 빈곤화 문제를 소홀히 다르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오늘날 우리사회가 경험하는 빈곤의 실상을 '사회적 빈곤'으로 재개념화 하고자 한다.

사회적 빈곤의 생산

사회적 빈곤이 생산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의 생산으로서 끊임없이 일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끊임없이 실업에 노출되는 불안정한 노동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에서 YS정부 이후 자본이 요구한 유연화는 기능적 측면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유연화가 아닌 임금, 고용시간, 고용의 성격(정규직/비정규직) 등과 관련한 수량적 유연화(quantitative flexibility)이다. 이런 과정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확대, 임금격차가 심화되는 등 노동시장 내에 머무르면서도 최저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계층이 늘어나고 있을뿐더러 이들에게 더 이상 희망은 거세되었다.

게다가 날로 증가하는 청년실업과 장기실업의 증가는 앞으로 근로빈곤층이 더욱 고착화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들 또한 새로이 취업을 한다 해도 낮은 임금의 일자리로 취업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노동시장 진입으로도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충분하지 못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노동의 불안정성은 비단 남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지고 이에 따라 가구주의 월급이 하락하자 여성들은 자신의 자아실현이나 경제적 독립이 아니라 가구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살벌한 직업선전에 투신한다.

그러나 노동의 불안정성은 여성에게 더욱더 가혹한 것이어서 일하는 여성의 70%이상이 불안정노동자이다. 고용만 불안정한 것이 임금도 남성정규직 그리고 남성비정규직보다 낮아 남성정규직에 비해 100만원이 훌쩍 넘는 임금격차가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온갖가지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이제 사회적 빈곤은 한 명의 가구주를 넘어서 청년에게 그리고 여성에게 확대재 생산된다.

사회적 빈곤이 발생하고 확대되는 두 번째 방식은 근로자가구의 자산감소와 가계빚이다. 산업사회에서 발생하는 위험들, 노동의 불안정성은 개인은 물론 가계의 소득안정화를 해치고 그런 상태의 반복이나 지속은 사회적 살인으로 치닫게 된다. 만약, 사회보장제도가 이런 사회적 살인을 중간에서 멈추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면 다행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실질적인 대응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생계는 유지되어야 한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 돈을 빌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항상 좋은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자산감소와 신용을 통한 부채증가이다. 결국, 자산감소와 부채를 통해 유지되는 가계경제는 결국 ‘처분할 재산이나 저축’도 없는 빈털터리 신세와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빚쟁이를 양산할 것이다.

사회적 빈곤이 발생하는 세 번째 이유 혹은 방식은 최저생계비와 최저임금의 문제이다. 최저생계비는 노동유인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최저임금보다 높지 않지 않은 독특한 메커니즘을 형성해왔다. 둘 사이의 간격이 늘어날수록 노동능력자를 노동시장으로 내모는 효과와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다. 실제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의 격차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커지고 있어서 2004년 격차는 1999년 격차의 5.8배에 이르고 있다.

이로써 우리사회는 근로의욕 감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오히려 이것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는 자본과 정부의 의도는 한편으로는 노동자를 불안정한 고용으로 내몰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에서 빠져나온 노동자들에게 복지를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게’ 훈육하여 삶의 의지마저 꺾고 있다. 그들에게 빈곤문제는 해결해야 될 문제가 아니라 노동유인을 유지하기 위해 관리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마지막 사회적 빈곤의 확대재생산의 방식은 바로 복지의 사각지대이다. 현재 우리의 현실은 복지제도의 보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이데올로기적 의미 이상을 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빈곤에 대한 관리는 오히려 매우 제한된 소수의 ‘일정부분의 소득’만을 보전해 주면서, 실은 더욱 확대되고 여타의 사회적 관계로부터 차별받고 배제되어 가는 빈곤을 더욱 양산하면서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가장 방치되는 사람들이 바로 차상위계층으로서 고용 및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복지혜택이 절실한 이들이 무엇인가를 요구하려하면 노동능력이 있으면서 노동의지가 없는 게으른 사람으로 간주하고 오히려 이들에 대한 방치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이처럼 제한된 제도를 구비하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방식조차도 아닌, 이전에 비해 많이 다듬어진 제도적 보완에도 불구하고 아예 복지제도의 외곽에 존재하면서 빈곤이 방치되는 경우도 있다. 노숙자나 이주노동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노숙자는 이제 하나의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치 곤란한’ 대상으로 취급받고 있다.

'사회적 일자리’는 사회적 빈곤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정부는 청년실업을 포함한 실업문제에 대해 노사정 수준에서 일자리만들기 사회협약을 관철시켜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은 시민사회단체가 지향하는 대로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아니다. 빈곤의 시급성이나 절박성을 따진다면,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와 10개월의 고용을 따질 게재가 아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빈곤상태와 불안정고용 상태를 반복할 것이 뻔하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 또한 사회적 빈곤의 거대한 메커니즘에서 빈곤을 양산해 낼 것이다. 결국 겉으로는 ‘사회적’인 무늬를 띠고 있지만 내용은 ‘반사회적인’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은 현재의 빈곤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사회적 일자리가 사회적 빈곤의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여성의 부불가사노동을 사회화시키는 탈가족주의전략과 장애인과 노령자의 자립생활과 활동보조를 위한 서비스의 사회화전략과 결합되어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조건과 결합되어야 한다. 이런 전략을 추진하게 되면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통해 실업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사회적 일자리를 통해 삶을 회복한 사람들을 광범위한 지지층으로 형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빈곤은 노동시장과 사회복지제도가 동시에 빈곤을 양산하는 구조에 있기 때문에 한번 빈곤상태에 빠지면, 본인이 어떤 원인에 의한 빈곤이든 가구의 빈곤상태로 이어지게 되며 그로 인하여 자녀의 교육이 어려워진다.

다음 세대에게 적절한 교육의 질을 제공하지 못하는 가구는 자녀가 다시 불안정한 노동에 처하게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후속세대 역시 반복적인 빈곤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제 빈곤의 덫(poverty trap)이 현세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의 전승물이 되어가고 있다.

빈곤의 장기화는 물론이고 그 안에서 은폐되고, 반복되고, 확대재생산되고, 관리되고, 방치되는 빈곤은 이제 사회를 파괴하는 기계가 되어 공동체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사회적 빈곤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안정노동과 그것으로 인한 빈곤연쇄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과 대안없이 신뢰와 기반과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 없는 사회협약은 붕괴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일자리 창출은 일자리수의 양적확대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지 모르지만 양호한 일자리(decent work)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 동안 힘겹게 쌓아온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후퇴시키는 새로운 진앙지가 될 것이다.

이렇게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의미에서의 사회안전망은 내부자(insider)에게 유리하고, 노동시장으로부터도 사회안전망으로부터도 배제되는 불안정노동층은 외부자사회(outsider society)를 강화하게 될 것이다(Esping-Andersen, 1999: 304). 이것이 사회적 빈곤이 사회를 파괴하는 기계로 작동하고 있는 현실이다.

[미디어참세상] [불안정빈곤공동행동] 공동기획 : 사회적 빈곤에 철퇴를

1회 -'사회적 가난'의 자화상 : 가난은 예외적인가?(10월 29일)
(기고)사회적 빈곤, 사회 파괴 기계로 작동하는 현실 (사회복지와노동 포럼팀)
(취재)"800만 빈곤층 불안정노동의 결과" (김삼권 기자)
2회 - 빈곤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 '인권침해'(11월 3일)
3회 - ‘가난’의 관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허와 실(11월 17일)
4회 - 자본금융화의 ‘폭력적 희생자’-신용불량자(12월 1일)
5회 - ‘가난’의 여성화, 여성의 빈곤화(12월 8일)
6회 - 사회연대기금, 노조운동의 활로인가? 늪인가?(12월 15일)
7회 - 기업의 사회공헌, 기부운동의 실태, 과연 아름다운가?(12월 22일)
8회 - 가난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자(12월 29일)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사회복지와 노동’ 8호에 강동진, 김종건, 성은미, 조성은, 한진 님이 공동집필해 실은 한 ‘사회적 빈곤의 원인, 실상 대책’을 기획 취지에 맞게 요약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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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빈곤 , 신빈곤 , 사회적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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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익

    좀 더 대중에게 널리 읽히기 위해서는
    문장을 쉽게 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꾸 투박란 전문용어가 넘처나는 것도 문제이고,
    논리적 일관성을 논문식으로 짜맞추다 보니
    문장들이 매끄럽지 않게 진행되는 것도 문제네요.

    예를들어,

    "최저생계비는 노동유인을 약화시킨다는 이유로 최저임금보다 높지 않지 않은 독특한 메커니즘을 형성해왔다."

    이 문장의 경우,
    "최저생계비는 사람들을 노동 시장에 끌어들이기보다 정부에서 주는 생계비에 의존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최저임금보다 높지 않게 책정되어 왔다."로 써 보면 어떨까요?
    "노동유인"이라는 전문적인 용어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대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이 글은 양호한 편입니다.
    노동자의 힘이나 다른 노동 관련 소식지들에서 몇몇 글들을 읽다보면,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문투에 스며있는 엘리트주의와
    문장을 다듬지 않는 게으름에 짜증이 납니다.

    대학에서 하는 교수나 학생들의 논문발표에는 어울릴 지 모르겠죠. 하지만 여기 진보넷에 소개될 때에는
    누구를 향해 이야기하는가 하는가를 고려해서
    발표한다면 연구의 성과가 더 빛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