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으로 EU통합 한발 다가서

EU헌법 부결 당시 우려는 그대로

유럽 민중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었던 EU헌법이 ‘조약’으로 명맥을 잇게 되었다. 27개국 EU(유럽연합)정상들은 23일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유럽헌법을 ‘개정조약’으로 대체하는 것에 합의했다.

EU헌법은 2005년 5년 프랑스, 6월에는 네덜란드 국민투표에서 연이어 부결되었고, 이런 흐름에 못이겨 영국 정부는 비준 국민투표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해 EU헌법추진은 잠정 중단된 상태였다.

이번 ‘개정조약’은 국민 투표를 피하기 위해 ‘헌법’이라는 명칭도 사용하지 않았다. 유럽통합을 넘어서는 초국가적 이미지를 줄 수 있는 EU국기, 국가 등과 같은 조항들도 삭제되었다. 영국 관리들은 이번 조약이 노동권과 사법권에 대한 EU의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니조약’으로 불리는 이번 ‘개정조약’은 일부 문제조항을 삭제한 채 EU 대통령직 등 법규와 제도관련 핵심조항들은 그대로 담고 있다. 이번 개정조약은 EU의 법적 토대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로서 EU창설 50년 만에 유럽이 정치적 통합으로 이를 것이라는 기대가 한껏 물이 올랐다.

2년 6개월 임기 대통령제 도입 등
EU영향력 강화될 것


'개정조약‘은 기존 임기 6개월의 순회의장직 대신 2년 6개월 임기의 대통령제를 도입했으며, 외무장관 대신 외교안보정책 총괄 고등대표직을 신설했다. 이로서 단일 법적 단위로 기능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으며, 특히 이번에 논란의 핵심이 되었던 이중다수결제 등으로 인해 EU가 각국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중다수결제는 EU 27개 회원국 중 15개국(55%)이상, 또는 EU전체 회원국 중 인구 65% 이상이 찬성할 경우 주요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는 의사결정방식이다.

유럽연합(EU)국가들은 연말까지 최종안을 마련해 내년에 각 회원국들의 비준을 거쳐 2009년 상반기 조약을 발효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독일을 의식해 이중다수결제를 끝까지 반대해온 폴란드를 고려해 이중다수결제의 시행은 2017년으로 미루어졌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기존 EU헌법에 포함되었던 ‘자유주의 경쟁’조항도 삭제하자고 제한해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ETUC는 일단 환영
'신자유주의적 통합'비난은 여전히 설득력 있어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UC)는 일단 이번 합의에 대한 환영성명을 냈다. 유럽노동조합총연맹은 “EU내의 제도적 위기 아래서 유럽 정상들은 한 획을 긋는데 성공”했다며 “연대와 지속가능성에 기초한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는 데 다가섰다”고 밝혔다. 동시에 사회적 파트너들을 협상 가까이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하며, 지속적을 감시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EU 통합이 가속화된다면, 통합이 '시장 통합'과 '자본의 자유화'를 본래적 목표로 한다는 점과, 미국 등 국제 블록에 대당하는 '거대유럽'으로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군사력 강화'는 필연적 귀결이라는 점에서 EU헌법 부결 당시의 우려는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개정조약'으로 인해 유럽의 정치적 통합마저 가속화되었을 경우, 국가간 자본 및 노동력 이동이 더욱 활발해 질 것이고, 이 과정에서 노동권과 일반 민주주의가 더욱 위협 받을 것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2005년 당시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의 좌파들은 EU헌법 부결 투쟁을 통해 “영미식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EU 헌법에 의해 학교·병원·우체국 등 모든 공기업과 공기관이 민영화 순서를 밟게 되며, 의료보험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도 악화하는 등 유럽의 사회주의적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투표 없이 ‘편법’으로 EU헌법 사실상 관철

당시 EU헌법이 부결된 배경에는 프랑스를 필두로 유럽 좌파에서 EU통합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강화라는 맥락에서 좌파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EU집행위는 ‘서비스 부문 역내 자유화조치’를 제안하면서,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제안을 철회한 바 있다. 당시 프랑스 좌파들은 EU헌법의 비민주성, 400페이지에 이르는 EU헌법에 대한 일반 민중들의 접근성의 부재, 일단 한번 통과되었을 경우 수정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특히 이 헌법이 유럽을 단일 시장화 함으로써 경쟁을 강화하고 노동유연화를 강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하향 평준화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에서 반대를 표했다.

아울러 EU헌법으로 인해 EU회원국들이 군비증강에 협력해야 하고, 군사적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NATO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좌파만 EU헌법에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우파 민족주의도 EU헌법에 대해서 반대하며 유럽 통합이 가시화될 경우 동유럽 등지에서 저임금 노동력이 유입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되어 실업과 이민이 높아지면서 이슬람계열의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된다는 점과, EU 분담금으로 인해 긴축재정을 해야 한다는 등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EU헌법 부결에 한 몫을 했다.

따라서 EU헌법을 ‘개정조약’으로 대체한 이번 합의는 EU의 법적 기초를 놓았다는 의미와 동시에 국내에서의 합의를 충분히 만들지 않은 채 일부 정상들만의 ‘편법’으로 유럽통합에 한 발 다가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