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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생활변화를 겪고 있는 새만금 연안 어민들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39) - 현지 주민 5명 심층면담 통한 증언들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완료가 생태계뿐만이 아니라 새만금 연안 어민들의 생활에도 엄청난 변화를 주고 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김제 진봉면의 어느 마을 주민 5명, 즉 주민 ‘가, 나, 다, 라’는 두 차례(2006년 9월 10일과 2007년 6월 10일), 주민 ‘마’는 한 차례(2006년 9월 10일) 만나서 집중 면접을 통해 증언한 내용을 정리하여 아래와 같이 싣는다.

  2006년 9월 10일, 김제 거전갯벌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허리가까이까지 차는 바닷물 속에 들어가 백합을 잡는 모습.


가 : 본인 58세(남성), 부인 51세

① 방조제 물막이 이전 상황
올해까지 바다에 종사한지 26년이다. 트렉터 운행을 하고 있는데 트렉터는 8년 전에 처음 구입했다. 현재 사용하는 것은 3년 전에 6천만 원을 빚을 내서 구입했다. 이직도 다 갚지 못했다.
방조제 내측에서 맨손어업으로 백합을 잡는 주민들을 태우고 다닌다. 어민 한사람 당 1만 원씩을 받았다. 방조제 물막이 이전엔 트렉터를 타고 백합을 잡으러 다니는 주민이 11명이었다. 백합을 잡는 어민들의 수입은 하루에 4-5시간 정도 일해서 한 사람당 적으면 7-8만원에서 많으면 15-16만원까지 벌었다. 외지 관광객들도 많이 태우고 다녔는데 하루에 10명, 1인당 1만원, 1달에 30일 동안 다닌 것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대략 3백만 원 정도를 벌었다. 잡은 백합은 크기에 따라 대합, 중합, 소합으로 나누어 도매상에게 넘겼다.

② 방조제 물막이 이후 상황
트렉터 운전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18년-20년이나 되었다. 트렉터를 운전하는 사람 중 지금은 나만 거의 매일 나간다. 지금도 거의 매일 내 트렉터를 타고 다니면서 백합을 잡는 사람은 3-4명 정도다. 수입은 어민 일인당 5만원-8만원 정도다. 백합을 잡는 일수는 15일(한 사리)중 4-5일만 잡는다. 바닷물을 많이 뺄 때만 백합 잡으러 나간다.
방조제 내측에 염분이 떨어져서 종패가 없다. 작년에 수문을 안 열고 비가 많이 올 때 백합이 많이 죽었다.
갯벌이 메말라 붙어서 집의 문을 열어 놓을 때면 집안까지 먼지가 잔뜩 들어와 쌓인다. 작년 여름철엔 하루살이, 깔따구가 많이 생겼다. 생활불편이 말이 아니다.
작년에 메말라 버린 갯벌에 염생식물을 심는 일을 했는데 트렉터 한 대당 30만 원, 그리고 씨 뿌리는 일을 하던 주민은 1인당 5만5천 원 받았다. 실제 어민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이 일을 했다. 어민들 생계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사업인데도 말이다.
현재는 15일(한 사리) 동안 25만 원(5일×5만 원) 벌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매일 적자다.
거전마을은 70가구가 되는데 농사는 부업으로 했고, 대부분 어업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4가구만 어업을 하고 있다.
(참고로 2007년 6월 10일 방문 당시 백합 18kg을 외지인에게 85,000원을 받고 파는 것을 보았다.)

  2007년 5월 22일, 바닷물이 예전처럼 들어오지 않아 메말라 버린 갯벌에서 염생식물의 일종인 퉁퉁마디 씨앗을 뿌리고 있는 모습. 일부 어민들이 한국농촌공사의 일당을 받고 일을 하고 있다.


나 : 본인 47세(남성), 부인 47세, 아들 2명(25세, 23세)

① 방조제 물막이 이전 상황
어업을 시작한지 30년이나 되었다. 부부가 함께 임시허가 받은 배(7.3톤)를 가지고 백합, 동죽, 배꼽(우렁이), 소라, 꽃게, 새우를 잡았다. 바닷일만 한다.

② 방조제 물막이 이후 상황
지금은 어업 구조를 삼각망(정치망)으로 바꾸어서 사용하는데 새우(2월-겨울), 우럭(6월-12월), 망둥어(8월-11월), 숭어(12월-2월), 돌게, 소라, 배꼽 등을 잡고 있다. 물막이 이후엔 배꼽이 작년 8월 20일 즈음부터 완전히 폐사했다. 작년 9월 10일부터 5명이 공동 투자하여 어업을 하다가, 지금은 3명이 하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그물은 7천만 원을 주고 그물 86틀과 닷, 부위를 구입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작년 11-12월에 펌프배(백합 잡이용)들이 다니면서 절반 정도의 그물을 훼손시켰다. 그래서 2천만 원을 손해 보았다. 올해는 그물을 훼손하는 배들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목선(7.3톤) 1대가 자꾸 섞어가고 있어 얼마 전 감척 신청을 했다. FRP 7.93톤(4년 전 6천만 원에 구입)과 선외기 FRP 1톤을 가지고 있다. 올해 김제시에 배당된 감척 척수가 57척이다. 지금까지 43척이 신청을 했다. 올해가 제일 많이 신청을 했다.

  2007년 5월 27일, 김제 거전갯벌을 의지해 백합을 잡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어민들의 모습.


며칠 동안 수질이 안 좋았다. 그런데 이틀 전부터 수질이 좋아졌다. 배수갑문을 통해 바닷물을 많이 넣다 뺐다 하는 모양이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불면 수질이 나빠진다. 바람이 안 불면 수질이 좋다.
전적으로 어업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할 자신도 없다.
매일 조업시간은 5시간 정도 된다. 많으면 17-18시간, 더 많으면 24시간 조업하는 경우도 있다.
직거래로 수산물을 판다. 직거래를 해야 타산이 맞다.
어민 생계대책 일환으로 추진하는 상시근로자의 경우 새만금 연안에 153명인데 한 어민이 한 달에 85만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경비를 빼면 30만 원 정도 밖에 안 된다.
어촌계원이 37명(80세까지 있음)인데 지금도 어업을 모두 하고 있다.

다 : 시아버지 85세, 시어머니 74세, 본인 38세(여성), 딸 17세(고1), 아들 9세(초2)

① 방조제 물막이 이전 상황
‘그레’를 가지고 백합잡이(맨손어업)를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 중간에 애기 낳고 키우기 위해 3년 동안 잠시 쉰 적이 있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백합잡이를 시작했다. 직접 아이들을 부양을 하고 있다.

② 방조제 물막이 이후 상황
시아버지께서 벼농사(2필지 반)를 짓고 있다. 여기서 1필지(8마지기)만 시아버지 땅이고 나머지는 임대를 하고 있다. 겨울철엔 보리를 심는다. 농사 돕는 일은 조금만 할 뿐 거의 매일 갯벌에 나가서 백합을 잡고 있다. 트렉터를 타고 매일 두 명은 거의 빼먹지 않고 나가고 있다. 작년엔 그레 10명, 갈고리 3명이 같이 갯벌에 나갔으나, 어제는 그레 6명, 갈고리 2명만 나갔다.
백합을 잡지 못하는 날에는 조개구이집(식당)에 가서 하루 8시간 동안 일한 적도 있다.

  [표] 2006년 9월부터 2007년 5월까지 ‘다’씨의 매월 백합잡이 수입 상황표.


  2007년 6월 10일, 며칠 동안 잡아 온 백합을 팔기 위해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 모습.
라 : 본인 49세, 부인, 자녀 2명 (대학1, 고1)

① 방조제 물막이 이전 상황
주 생업은 바닷일이었고, 거의 매일 갯벌에 나갔다. 트렉터를 가지고 다녔고, 백합과 동죽을 잡았다. 30년 정도 어업을 했다. 결혼 전 처음에는 실뱀장어를 잡았다. 정지망으로 실뱀장어를 잡을 때 돈이 많이 됐다.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수입이 많이 줄었다. 결혼 하고 나서 배를 탔고 부인이 갯벌에 나갔다. 백합은 ‘그레’와 ‘갈코리’로 잡았다. 배로도 펌프질을 해서 백합을 잡았다. 다른 것으로 어업을 하다가 펌프배로 바꾸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펌프배로 잡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농사는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5천 평으로 시작해서 7천 평까지 늘렸다. 농업은 부업이었다. 트렉터를 운전한 지는 4년이 된 것 같다. 마찬가지로 백합, 동죽을 잡았다. 부부가 같이 다녔다.

② 방조제 물막이 이후 상황
물막이 이후에도 변함없이 백합, 동죽을 잡았다. 그러나 2006년 10월 이후로는 거의 잡지 못하고 있다. 2005년엔 동죽이 많이 나서 손님이 매일 30명씩 트렉터를 타고 다녔다. 평일도 쉬지 않고 다녔다. 일부 트렉터 하는 사람들이 그물을 일자로 치고 종패를 잡았다. 충남 서산 간척지 바깥의 원당리에 넣었는데 다 죽었단다.
수입이 형편없다. 그래서 백합을 잡지 못하니까, 2006년에 백합 등 죽은 조개들이 많았을 때 껍질을 주우러 다닌다고 서로 경쟁이 심했다. 1인당 일당으로 5만 8천 원 받고 나갔다. 마을 사람들이 두 번 정도 나간 것 같다.
처음 죽은 패각을 군산폐기장으로 가지고 갔고, 그 후엔 염기를 없앤다고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서 묻었다고 한다. 조업구역은 여전히 큰 변화가 없다. 큰 민가섬 좌, 우,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바닷물이 많이 들어와 버리면 잡을 장소가 없어 나갈 필요가 없다. 갯벌이 메말라 버려 이미 백합들이 죽었기 때문에 잡을 수 있는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수입은 2005년에 비하면 하늘과 땅이다. 2005년엔 주로 동죽을 잡았다. 2005년엔 하루에 5만 원-10만 원 벌었다. 2006년에 동죽이 다 죽었다. 이제는 바닷물을 얼마나 빼느냐에 따라 잡을 수 있을지 결정된다. 물막이 이후론 백합을 주로 잡는다. 어느 때는 하루에 20kg씩(중합 크기로 1kg당 2천 원)을 잡았다.
향후 어선어업을 하든지 그물을 바꾸어 새우, 숭어 잡는 일을 하든지 할 예정이다. 여자들은 어업을 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여전히 어민들의 생존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백합.


여자들이 갯벌에 나가면 많이 벌었다. 여자들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도 있다.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이곳에 살 수밖에 없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애들 어릴 때는 돈을 많이 벌었는데 아들 하나가 2006년에 대학을 가서 돈이 더 필요한데 돈을 벌 수가 없다. 어업을 통해 돈 벌어서 집 한 채 짓고 나니 남은 게 없다. 트렉터 하는 사람들도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트렉터 가는 장소가 거의 같기 때문이다. 집을 짓긴 지었는데 집을 유지할 돈이 없어 문제다.
지금이라도 방조제를 텄으면 한다. 배수갑문을 모두 열고 바닷물이 많이 들어오도록 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 해수유통을 확대했으면 한다. 외지 관광객들도 방조제 막은 것을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2006년 11월부터는 갯벌에 거의 나가지 못하고 있다. 2007년엔 논농사에 주력을 하고 있다.
2007년 4월-5월엔 부인이 감자 재배용 하우스로 일을 나가서 40일 정도 감자 캐는데 총 200만 원 정도 벌었다.

마 : 본인 48세, 부인 44세, 아들 2명(군대 21살, 고 2)
- 부모님이 따로 살고 계시지만, 부양을 하고 있다


① 방조제 물막이 이전 상황
어업에 종사한 지는 20년이 되었다. 부부가 바다에서 주로 어업을 했다. 부업으로 1985년부터 3600평(3필지)에서 벼농사를 지었다. 맨손어업도 하고 배도 가끔씩 탔다. 백합, 동죽, 바지락을 잡았다. 새만금사업으로 보상을 290만 원 받았다.
어업을 할 때 하루에 평균 8시간 일을 했다. 부부가 나가면 적어도 10-15만 원은 벌었다.

   2007년 6월 10일, 메마른 갯벌에 소금이 스며나와 하얀색을 띠고 있는 거전갯벌의 모습.


② 방조제 물막이 이후 상황
2005년과 2006년에 22필지(절반은 임대)에 농사를 짓고 있다. 1년에 100일 정도만 일을 했고 2006년 9월 10일까지는 가끔씩 맨손어업을 한다. 안하동에 사는 한 선주의 배를 가끔씩 탄다. 올해는 맨손어업을 통해서 100만 원밖에 못 벌었다. 2006년 7월 15일부터 어촌계장을 시작했다.
갯벌이 많이 달라졌다. 바닷물이 갯벌에 들어오지 않자 많은 조개들이 폐사를 했다. 또 물에 잡기는 지역이 늘어나 작업시간이 줄어들어 조개들을 잡을 수 없다.
언제 물이 들어오고 나갈지 모르니까 언제 작업할지 모른다. 올해는 돈 벌이가 안돼서 갯벌에 거의 나가지 않는다. 간척으로 인해 수입이 2/3 이하로 줄어들었다.
많은 주민들이 일을 못하니까 먹고 놀고 있다. 바닷일이 없으니까, 몸이 아픈 사람이 많다. 만경에 가면 병원에 사람이 많다.
마을 사람 중에 공동으로 내수면 어장을 하려는 사람들도 있으나, 마을에 대책이 없다.

  2007년 6월 3일, 바닷일을 하지 못하고 벼농사일에 전념하고 있는 마을 주민.


나는 방조제를 막기 시작하면서부터 농토를 많이 늘렸다. 마을에서 가장 많다. 빨리 대책을 세워서 다행이다. 그런데 대책을 못 세운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크다. 나는 앞으로도 마을에서 계속 살 예정이다.
만약 간척사업을 하지 않았으면 이 지역에서 농사를 안 짓고 양식 사업을 했을 것이다.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물막이 공사를 강행했다. 만경강 폐수가 심각하다. 김제지역은 만경강 폐수 때문에 어패류가 많이 죽는다.
말이 국책사업이지 선진국들은 방조제를 트고 있는데 여기를 막아서 땅은 커질지 몰라도 김제 경제는 바닥 경제가 될 것이다. 김제 재래시장 소비는 여기 사람들이 많이 한다. 그런데 수입이 줄어들어 여기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다가 보니까, 김제 재래시장이 죽고 있다. 어민들은 앞으로 부안이나 군산으로 떠날 것이다. 정치권이 문제다.
농사짓는 것도 힘들 것이다. 보증문제로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거전마을은 72가구 인데 이사 간 사람도 있고 이사 갔다가 돌아 온 사람도 있으며, 배가 갯벌에 걸려 묶여 버린 사람도 있다. 시내 나가서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별로 수입이 안 된다고 한다.
앞으로 마을 주민들 모임을 법인으로 만들어 대책을 세울 예정이다. 어촌계에 자본금이 2천만 원 정도 된다. 지역 주민 간에 갈등만 더 생길 수밖에 없다. 생계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주할 수 있는 기간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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