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머프의 웃고 울었던 삼백일의 기록

뜨거웠던 이랜드 집회 일곱 시간 참관기


<주> 이 글은 이랜드 삼백일 문화제에서 낭송된 황선영 조합원의 편지를 글쓴이가 재구성하여 쓴 집회 참관기입니다. 따옴표의 인용문을 제외하고는 황선영 조합원과 관련 없음을 밝힙니다.


황선영 씨는 하늘색 반팔 티셔츠를 서랍장 깊숙한 곳에서 꺼냈다.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다. 아직 4월인데, 봄 햇살이 아니라 따가운 햇볕이다. 오늘은 <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한 300일 결의대회 및 문화제>가 있는 날이다.

황선영 씨는 4월 19일에 굵은 동그라미를 그려두었다. 홈에버 월드컵점에 가는 날이다. 일을 하러 가지 않는다. 물론 쇼핑은 더더구나 아니다.

황선영 씨는 애칭으로 ‘스머프 티’라고 부르는 반팔 티셔츠를 입었다. 스머프 티는 이랜드 투쟁의 상징이다. 홈에버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에서 무자비하게 끌려갈 때 입은 스머프 티. 꺼내는 순간 지난 300일이 눈시울을 젖게 한다.

“지난 여름 이 푸른 스머프 티를 벗어놓을 때만 해도 다시 입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오늘 서랍장을 뒤져 다시 꺼내 입는다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고 두렵습니다.”

오후 3시,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 앞.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모여 이랜드 승리를 염원하는 집회가 한창이다. 스머프 티를 입은 황선영 씨는 따가운 햇볕을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가렸다. 힘찬 팔뚝질을 하며 ‘비정규직 철폐가’를 부른다.

낯설기만 했던 투쟁가, 그리고 어색하기만 했던 팔뚝질. 이제는 거리낌 없다. 이제 팔뚝질로 눈물을 물리치고, 투쟁가로 힘을 얻는다.

  이꽃맘 기자

지난 300일 동안 용역경비가 폭력을 휘두를 때 방패막이 되어주었고,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휘청거릴 때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이들이 조합원을 감싸고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황선영 씨는 이들을 ‘동지’라고 부른다. 자신보다 나이어린 학생에게도, 흰머리가 가득한 늙은 택시노동자에게도 ‘동지’라고 부른다.

불혹의 나이가 훌쩍 넘도록 황선영 씨는 동지라는 말이 자신의 입에서 써야하는 말이라고는 떠올려본 적도 없다. 스스럼없이 입에서 나올 때 황선영 씨도 뜨끔해진다. 그리고 가슴이 설렌다. 마치 ‘사랑’이라는 말처럼 열여덟 처녀로 돌아가 가슴이 울렁인다.

3시 30분. 사회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한다. 우리의 일터인 매장에 들어가자고 한다.

“조합원이 일터에 들어가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고객에 피해를 절대 주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매장은 경찰차 수십대로 꽁꽁 막혀있습니다. 고객들이 미로 찾기를 하듯 매장에 들어가던 일부 통로마저 조합원들이 다가서자 방패로 가로 막습니다. 구호도 노래도 외치지 않고, 그저 삼삼오오 걸어갔는데. 누군가 ‘우리도 고객이다’고 외칩니다. 분에 겨워 나이든 조합원이 ‘우리 다 포기해 버렸다. 이제 잡아가라’며 울부짖습니다.

  이꽃맘 기자

삼백 날이 흘렀는데 어찌 마음의 갈등이 없었겠는가. 황선영 씨도 포기하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날마다 농성으로 바쁜 날이었다. 큰아이가 문자를 보냈다.

‘드뎌 전기가 끈어졌다’

집회가 끝나고 회의가 밤늦게까지 이어지도록 황선영 씨는 아이에게 문자의 답을 해주지 못했다. 전기가 끊겼다는데 무슨 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정이 다 되어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집은 사라지고 없다. 어둠,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저 멀리 희미한 불꽃이 출렁인다. 발끝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불꽃을 찾아 조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큰아이의 뒷모습이다. 촛불을 켜놓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 황선영 씨는 아이를 부르지 못했다. 인기척을 느꼈을 아이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 밤, 황선영 씨는 밤새 베개를 적시며 새벽을 맞이했다.

“진정 나와 우리 가족이 처해 있는 전기마저 끊긴 이 참혹한 현실 속에서 지금의 선택이 과연 옳은가. 지금 당장 먹을거리가 없고 기본적인 삶도 살지 못하는데……. 이런 가족들의 고통을 뒤로 하고 길바닥에 앉아 투쟁만을 외치는 내 모습이……, 진정, 진정 우리 아이들의 엄마의 모습인가.”

삼십 분 넘게 일터를 들어가게 해달라고 울부짖었지만 경찰의 방패는 꿈적하지 않는다. 경찰 뒤쪽에는 흰 와이셔츠를 입은 용역경비들이 헤죽헤죽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황선영 씨는 흰 와이셔츠만 봐도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되었다. 저 흰 빛깔에 지난 삼백 날 동안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미치지 않고 살아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결국 경찰에 막힌 조합원들과 황선영 씨가 동지라고 부르는 학생과 노동자들은 다시 집회장으로 돌아왔다. 6시부터 있을 문화제를 위해 저녁도 먹고 잠시 쉬기 위해서다.

집회 신고를 받은 장소에서 합법적인 집회를 하고 있는데 경찰과 이랜드 자본은 끊임없이 집회에 참가한 이들의 얼굴을 기다란 망원렌즈가 달린 사진기로 찍고 있다. 공포감을 주어 집회를 방해하려는 행위에 조합원들이 항의를 하였다. 하지만 아랑곳도하지 않는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위원장이 갑자기 마이크를 잡았다.

“조용히 문화제를 시작하려 했는데, 안되겠습니다. 합법 집회를 방해하는 행위에 일침을 놓읍시다.”

조합원을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김경욱 위원장이 달리기 시작하니 집회 참가자도 함께 뜁니다. 영화관이 있는 출입문을 통하여 2층 홈에버 입구로 달려갔다. 매장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이 허겁지겁 막아섰다. 조합원들은 죽을힘을 쓰며 일터로 들어가려고 경찰의 방패에 몸을 던집니다.

아수라장이 되고 드디어 매장 안으로 열 걸음을 들어갔다.

  19일, 이랜드 노동자들은 매장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찰의 봉쇄로 들어가지 못했다./이꽃맘 기자

황선영 씨는 동료들의 사이에 끼여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숨이 멈춘다 해도 저 방패너머 일터로 들어가야 한다. 작은아이의 급식비를 위해서라도.

며칠 전이다. 작은아이가 황선영 씨의 전화기에 문자를 남겼다.

‘급식비를 못 내서 점심 못 먹으면 운동장 수돗가 물이나 먹지 뭐.’

빨리 급식비를 달라는 말보다 몇 십 배의 고통으로 황선영 씨의 가슴을 짓눌렀다.

돌덩이가 자신을 향해 소나기 붓듯 쏟아져 온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이런 문자를 보내려 마음먹고 한자 한자 찍어 내려갔을 때 작은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삼백일 간 나름 강한 결의로 싸워왔지만 그 순간들만큼은 의지만으로 극복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열 걸음을 매장 안으로 밀고 들어갔지만 조합원 앞뒤로 경찰병력이 숱하게 밀려들어왔다. 결국 철수를 했다. 당장 경찰과 부딪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집회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문화제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매장 진입 싸움을 하고 온 터라 황선영 씨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삼백일 동안 질리게 먹어온 김밥 한 줄이 오늘 저녁밥이라고 황선영 씨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뭔 일인가. 오늘만은 뜨뜻한 국밥을 준비했다고 한다. 사회자가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와서 부족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긴다.

갈수록 집회장의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백 명이 조금 넘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오백에 가까워졌다.
  이꽃맘 기자


부족할지 모른다는 말에 이랜드 조합원들은 연대온 사람들이 식사를 다 할 때까지 기다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한 손에 들고 집회장 곳곳에 흩어져 앉아 숟가락을 바쁘게 움직인다.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국밥이다. 먹는 것을 보니 황선영 씨의 뱃속에서 더욱 요란한 신호를 보낸다.

마지막으로 이랜드 조합원들이 밥을 주는 곳에 갔을 때는 국밥은 다 떨어졌다. 사발면에 밥 반 주걱을 담아서 내준다. 국밥에 대한 미련이 사무친다. 그래도 맛있다. 사발면에 흰 쌀밥이 담긴 게 어딘가, 황선영 씨는 게 눈 감추듯 비운다.

문화제는 그야말로 감동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앉을 자리가 없어 집회장 밖에, 지하철 입구 계단에 서있는 사람도 무지 많다. 보통 집회가 길어지고 밤이 늦어지면 곳곳에 빈자리가 듬성듬성 생기기 마련인데 오늘은 정반대다. 황선영 씨는 그간의 고통이 싹 가시고 힘이 부쩍 솟아오른다.

“엄마 전기 끊긴 열흘 동안 촛불 밑에서 공부를 하니 집중도 잘 되고, 책도 열권이나 읽었어.”

큰아이의 목소리처럼.

“엄마 급식 먹을 때 절대 잔반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싫어하는 반찬이 나와도 싹싹 긁어 먹는다.”

작은아이의 말처럼.

돈 한 푼 받지 않고 음향에 노래에 춤에 시까지. 그리고 열정. 모두 ‘동지’의 사랑으로 문화제는 진행되었다.

진보신당의 심상정 의원도 오고, 민주노동당의 홍희덕 의원 당선자도 왔다. 서비스연맹 위원장도 왔다. 마이크를 잡고 격려를 해줬다. 격려사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다른 곳으로 갔다. 모두들 이랜드 싸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승리할 때까지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을 했다.

오늘 문화제는 이들 말고는 연설을 하지 않은 게 너무 좋았다. 연설이 없으니 빨리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없다. 앞에 나와 말하는 사람들도 고마운 동지지만, 앞에 나서지 않고 여덟 시간 동안 집회를 함께 해준 이들, 이들은 정말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황선영 씨가 나와서 편지글을 읽었다. 다시 스머프 티를 꺼낸 이야기로 시작해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황선영 씨도, 이를 듣는 참가자들도 모두 울어야 했다. 취재를 하며 끊임없이 지키려고 했던 기자와 집회 사이의 ‘거리’가 이 순간에 무너졌다. 저 눈물들을 찍어야 하는데, 차마 저 눈물 앞에 사진기를 들이대는 것이 두려웠다.

  이꽃맘 기자

이어 마이크를 잡은 홍윤경 노조 사무장도 울먹이며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사람을 날려버리는 물대포를 맞으며, 일터에서 경찰에게 사지 질질 끌려 나가며, 용역경비에게 주먹질과 욕설을 먹으며,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 지나 봄. 그리고 여름옷을 꺼내야하는 그 시간 앞에 더는 할 말들을 잃었다.

눈물바다 집회장 위로 보름달이 누렇게 떴다. 달빛이 환희 웃으며 조합원들 마음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

눈물을 흘리다 웃는다. 웃다 눈물을 흘린다. 문화제도 끝이 났다. 삼백일 투쟁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울 일만 있었다면 이 자리에 남아있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밤 열시.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주위 사람을 꼭 껴안아주자고 제안한다.

황선영 씨의 눈에 숱한 얼굴들이 스쳐지나간다. 지금 황선영 씨와 같은 자리에 있는 얼굴도 있고, 지금은 다른 자리에 있는 얼굴도 있다. 어디에 있든 비정규직법의 희생자 이랜드 노동자다.
덧붙이는 말

오도엽 작가는 구술기록작가로 전태일 어머니 이소선의 구술기록작업을 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목소리를 찾고 있습니다. 기록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야 될 일이 있는 분은 참세상이나 메일(odol@jinbo.net)로 연락을 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