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에 눌려버린 대학생들

[인권오름] [발에 비친 인권풍경] 방학은 없다

방학, 이름만으로 설레는 단어이지만 대학생들은 여름방학이 되어도 방학다운 방학을 누릴 수 없는 현실이다. 대학생들에게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권리, 꿈을 위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권리,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개개인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필수적인 인권일 뿐 아니라 구성원의 건강하고 안정된 삶이 가지는 잠재력이 밝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대학생들은 방학을 반납하고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일해도 턱없이 높은 등록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갈수록 여유를 누리는 것을 사치로 여기게 되고 꿈을 갖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현재 대학교 4학년생이자 편의점 아르바이트만 3년차, 더불어 필자의 오랜 동네친구인 김동욱 씨를 만나 대한민국 땅에서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에 대해 들어 보았다.

  활짝 웃는 그에게 방학은 없다.

방학은 없고 꿈도 사치다

주말 저녁 알바를 마치고 자정이 넘어서야 만난 그에게는 짜증만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반가운 기색도 없이 한숨만 푹푹 쉬는 까닭을 물었다. 이유인즉슨, 오늘 그가 다니는 만화학원에서 한 달간 기다려온 누드데생이 있는 날이었는데 전날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잠에 취해 그만 학원에 가지 못했다는 것. 너는 내가 아니니까 이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다시금 한숨을 내쉬는 그 앞에서 88만원 세대에게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스물여섯 만화가를 꿈꾸는 대학 4학년 김동욱 씨의 일상은 방학이 되어도 다를 것이 없이 힘겹다. 주중에는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주말에는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번다. 벌써 여름방학이 다 끝나가지만 남들 다가는 바닷가 한번 가지 못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며 3달을 꼬박 안 쓰고 모아야 한 학기 등록금이 모인다. 그동안 주간 시급 3800원, 야간 시급 5000원하는 아르바이트비를 아끼고 모아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했지만, 4학년 2학기가 되면 등록금 분할 납부를 할 수가 없어 어떻게든 이번 방학동안 목돈을 마련해야만 한다. 다음 학기 등록금 이외에도, 2004년도에 학자금 대출을 받은 것이 아직 200만원이나 남았고 여태 이자만 60만원이 넘게 쌓였다.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연애도 못하고 제대로 학과 공부도 못하는 형편에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일주일에 세 번, 만화학원에 가서 만화를 배우는 일이다. 그런데 일에 치여 좋아하는 만화공부마저 제대로 할 수 없다니 그의 답답한 심정이 이해가 간다. 졸업해서 제대로 만화가의 길을 가려면 현재 많은 공부와 연습이 필요한데, 잠잘 시간은 부족하고 일은 하면 할수록 주머니는 비어간다. 만화에 대한 부푼 젊은 열정도 아르바이트에 치인 지친 생활의 반복 속에 자꾸만 사그라진다.

노동의 방학

이러한 상황은 비단 한 사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대학생들에게 여름방학은 2학기 등록금을 마련해야 할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몬(www.albamon.com)이 6월말에 대학생 12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대학생 88%가 ‘올 여름 아르바이트 계획이 있다’고 응답했다. 올 여름 알바를 하겠다는 응답은 학년이 어릴수록, 그리고 여학생(85.6%)보다는 남학생(90.6%)이 많았다. 이렇게 벌어들인 아르바이트비를 어디에 사용하겠냐는 질문에는 △‘등록금에 보태겠다’는 응답이 24.3%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용돈(21.1%)’, △‘여행, 피서 등 여가비용(13.2%)’, △‘학원비(11.7%)’, △‘생활비에 보탠다(10.1%)’ 순으로 응답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등록금을 걱정하는 현 상황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경제침체, 물가상승으로 서민가계가 대단히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마련을 위해 단기 일용직 근무를 마다하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학습권과 여가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상황이 실제 어떠한지 김 씨의 생각을 물어봤다.

"학기 중에는 못해도 '주3'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20학점을 3일에 꽉꽉 채워 시간표를 짜고 수업이 끝나면 동아리, 학회 같은 것은 해볼 엄두도 못 내고 서둘러 편의점 근무지로 가야하죠. 야간 알바면 그나마 책 읽을 시간 정도는 나지만 주간 알바에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몰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죠.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탓에 전공 책 한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시험을 치러 간적도 많아요."

이렇게 학업에 많은 무리가 가는데도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집안의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학비를 조달할 수 없는 정도의 상황은 아닙니다. 하지만 벌써 제 나이가 스물여섯이고 집안의 장남인 입장에서 등록금과 생활비 정도는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제 꿈이 만화가인데 사실 앞으로 안정된 경제적 능력을 가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가 죄송스러운 이유도 있고요. 그래도 대학은 졸업을 해야 하니까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해보려 합니다."

흔히 대학은 지성의 전당이며 대학생들의 주된 사명은 본인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키우고 부단한 학습을 통하여 사회에 나가 지성인으로써의 적절한 역할을 수행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대학생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준비할 기본적인 시간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더해 학기 중에도 본연의 학과공부보다 아르바이트가 우선순위가 되곤 한다. 사회는 갈수록 창의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을 채용하려하지만, 이런 일은 부모님께 전적인 지원을 받고 넉넉한 형편을 누리는 학생들이나 가능하다. 당장의 등록금 해결과 휴대폰 요금 납부가 시급한 입장에선 꿈꾸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여유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꺼려져요."

이런 상황에서 여가생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여가권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사회 전반에 주5일제와 문화 복지확대를 시행하려는 시점이지만 대학생들은 전혀 그 고려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노동시장에서 여가권은 시간이 갈수록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왜냐하면 여가권은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로서 노동자들은 여가를 통해 육체의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더불어 여가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적 활동으로 사회 전반의 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비노동자의 입장으로 현재 여가생활을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 묻자 그는 이런 저런 셈을 해가며 현 상황에 대해 묘사했다.

"한 달 동안 120만 원 정도 벌어요. 여기에서 만화학원비 30만원, 휴대폰비, 교통비 같은 생활비 40만원을 제외하면 50만 원 정도가 겨우 남죠. 이 돈은 다음 등록금과 학자금 이자를 내기위해 고스란히 저축해야 해요. 실제적으로 여가생활을 누릴 돈이 남질 않는 거죠. 어쩌다가 선후배와 술자리라도 하게 되면 4학년이나 된 예비역 선배 체면으로 어떻게 돈을 안낼 수 있어요. 술값으로 3~4만원을 한 번에 쓰고 나면 하루치 일당을 모두 써버린 꼴이 되죠. 사실 이런 얘기 하면 많이 쪼잔 해보일 수 있겠지만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많이 망설입니다. '영화표 7천원=1시간 반 분량의 일당' 이렇게 저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니까요."

이런 부담스러운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갈수록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게 된다. 아르바이트 시간을 제외하고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갈수록 많아지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여가는 곧 돈이자 사치이기 때문이다. 20대 젊은 청춘에 노는 것이 두렵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까.

"사실 여유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꺼려져요. 제가 여가시간을 가질수록 그만큼 돈이 나가는 거니까요. 쉬느니 차라리 편의점에서 1시간 더 일하고 말죠."

예비 노동자로 겪는 또 다른 서러움

이뿐만이 아니다. 아르바이트 현장에서의 곳곳의 불합리한 노동조건은 열심히 일하는 젊은 청춘을 더욱 좌절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알바몬이 2008년 대학생 1211명을 상대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알바생의 67.8%는 아르바이트 중 업무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무를 해본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연장근무를 경험한 알바생 중 법정 연장근무수당을 제대로 받고 일해본 경우는 7.7%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연장 근무시 시간당 50%가 가산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연장근무 경험이 있는 알바생 가운데 45.4%는 ‘법정 연장근무 수당에 못 미치는 금액’을 받고 일했으며, 46.9%는 ‘아예 수당을 받지 않고 일했다’고 응답했다. 이 밖에도 알바생 상당수는 ‘말과 행위로 이루어지는 각종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58.5%)’고 호소했다.

김 씨도 사실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력만 3년차이기 때문에 '시급 5000원이나' 야간 근무 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아직도 낮에 일하는 편의점에서는 시급 3800원을 받고 있다. 그는 2009년 현재 최저임금이 4000원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제때 임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장님이죠. 예전에 일하던 데에서는 한 달이 지나도 임금을 주지 않아 날마다 전화하고 아주 괴로웠어요. 낮에 일하는 편의점은 사실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지하철에 있는 편의점인데도 손님이 많이 없는 편이거든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큰 고충이 무엇인지 물으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편의점 사장님의 경영방침이 저와 맞지 않을 때 가장 어려움을 느껴요. 저는 비록 아르바이트생이지만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는 나름의 책임감으로 일을 하거든요. 지하철 편의점에서 손님들에게 잔돈을 거슬러주기 싫어서 껌 같은 것을 카운터 밑에 숨겨둔다든가 1+1같은 이벤트 상품 목록은 모두 판매품목에서 제외하는 것과 같은 방침을 따라야만 할 때면 참 마음이 불편하죠. 그 외에도 혹시나 돈이 부족하면 제가 채워야 하기 때문에 야간에도 안심하고 근무할 수 없는 것, 근무대타를 구하지 못해서 친구들과 여름 여행을 가지 못한 것들이 고충이라면 고충이죠."

벌써 8월 중순에 접어들었고 대학생들의 ‘휴가도 없는 아르바이트’는 방학이 다가도록 끝나지 않는 노동이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시급 몇 천원에 청춘을 보내고 있는 사이, 사회의 젊은 열정도 점점 식어가고 있다. 20대는 갈수록 착취하는 구조에 길들어져가고 지쳐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젊은 청춘들이 여가를 누리고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가능성을 보여주고 지원해야한다. 적어도 방학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공부할 시간에 공부할 수 있는 지원이 가능하다면 우리 청춘들의 미래는 더 밝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미크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