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 노동자들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르포] 하루에 커피 천 잔, 월급 190만 원, 여산휴게소 노동자 이야기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휴게소 [출처: 연정]


13번을 만나도 입장 변화가 없는 회사

“노동 탄압 중단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라!”

10월 14일 오후.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휴게소(천안 방향)에서 공공운수노조 전북지역평등지부가 주최하는 ‘여산휴게소 성실 교섭 촉구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편의점과 식당, 야외 매장 등 상·하행 휴게소 곳곳에서 근무를 마친 노동자들이 집회에 참석했다.

여산휴게소는 1977년에 설립돼 45년 역사를 가진 호남고속도로의 대표적인 휴게소 중 하나다. 현재 한국도로공사가 민간업체에 위탁해 운영되고 있다. 40년 동안 여산휴게소를 운영해온 (주)큰길(구 해태관광)이 2017년에 분뇨 무단방출 등 관리부실로 계약 해지되고, (주)한남상사(대표 이해창. 동서식품·농심 등 식품을 유통하는 업체)가 새롭게 선정돼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도로공사가 관리·운영하는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는 199개다. 이 중 3개 휴게소(하남 만남의광장·문막 인천 방향·문경 양평 방향)를 제외한 196개는 민간업체가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는 휴게소 운영업체로부터 매출액에 따라 0.1%~23%의 수수료를 받는다. 그리고 운영업체는 휴게소 내 외주 업체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식품이나 식당의 경우 수수료가 매출액의 40%~50%에 이른다.

“어제 두 달 만에 13차 임금 교섭을 진행했는데, 회사는 여전히 아무런 입장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매출이 하락해서 힘들다는 말만 하지, 매출이 하락한 만큼 현장 인원이 줄어 인건비가 줄었다는 말은 하지 않더라고요. 회사는 현재 인원으로 매장 운영 시간을 일방적으로 확대하고 노동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늦은 시간에 업무 배정을 합니다. 운영 시간 확대해서 돈은 벌고 싶고, 현재 인원만으로 노동력을 최대한 뽑아서 이윤을 창출하고자 하는 이 여산휴게소에 우리 노동자의 권리가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최은아 분회장)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최은아 분회장(공공운수노조 전북지역평등지부 여산휴게소분회)이 그간 참아왔던 울분을 터트린다. 갑자기 직원이 그만뒀다고 며칠만 일해달라는 지인의 요청을 받고 “아, 싫은데…” 하며 와서 일한 게 23년이 지났다.

상여금 600% 삭감도 받아들였는데….

1989년, 여산휴게소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회사의 비인간적인 대우에 맞서 노동조합(구 해태관광노동조합)을 설립했다. 30여 년간 크고 작은 노사 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합의를 통해 그럭저럭 잘 해결해왔다. 하지만 한남상사가 들어온 이후 노사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불안과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한남상사가 들어와 가장 먼저 노동자에게 요구한 것은 기존에 있던 상여금 600%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연간 천만 원에 가까운 임금 삭감이었지만,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 고용 승계와 외주업체 노동자의 직접 고용을 위해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평가 시 직영매장 가산점제도 도입으로 한남상사도 외주업체 직영화를 추진했다) 학자금과 가족수당 폐지도 수용했다. 폐지된 상여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근속수당(경력수당 6~20만 원)이 신설됐다. 하지만 한남상사는 2019년부터 근속수당 폐지를 강요하더니 지난해에는 30년간 유지해온 단체협약 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업체 변경 이후 1년도 되지 않아 기존 노동자 50명 중 절반이 여산휴게소를 떠났다. 지난해 노사 임금협상이 결렬되고, 노동조합은 다섯 차례 파업을 했다. 지방노동위원회의 일방중재 끝에 근속수당 유지와 근속기간에 적합한 근속수당 지급 결정이 내려지면서 임단협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올해 임단협이 시작되자 한남상사는 또다시 최소한의 임금인상마저 거부했다. 지방노동위원회 조정이 결렬되고, 결국 노동조합은 쟁의행위를 가결했다.

“회사는 경력수당 없이 기본급만 책정된 3년 미만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에게 월 2만 원이라는 있지도 않은 근속을 만들어 최저임금 위반을 꼼수로 넘어가려고 해요. 노동조합은 그 2만 원에다가 7천 원을 더한 2만7000원을 전체 노동자 65명에게 동일하게 적용해 달라고 요구한 거고요. 최저임금보다 8천 원 높은 금액입니다. 회사는 근속수당 때문에 최저임금 위반을 피해갈 수 있는 3년 이상자는 한 푼도 못 올려준다고 하다가 일방적으로 만근수당 1만 원을 책정해서 지급하고 있어요.” (최은아 분회장)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2만7000원은 올해 최저임금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실제 노사 간의 임금인상 금액 차이는 월 34만 원(연 410만 원) 밖에 나지 않는다.

노동조건 저하와 인권침해,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 부당노동행위 등의 문제도 끊이지 않는다. 회사는 노동자에게 근무시간 휴대폰 소지를 금지하고, 휴대폰 사용 시 사실 확인서를 작성하게 했다. 관리자가 노동자의 주머니와 사물함을 뒤지는 일도 있었다. 고객과 직원이 보는 앞에서 몸수색을 당한 노동자는 극심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회사를 떠났다. 아이가 다쳐 타지역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사실을 뒤늦게 알거나, 가족의 사망 사실을 모르고 있는 노동자를 가족이 데리러 오는 일도 있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긴급한 연락을 받지 못해 불편을 겪는 일도 발생했다.

노동강도 4배, 커피 천 잔의 마술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여산휴게소 커피 매장에서 노동자 두 명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든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30초, 카페라테 한잔에 1분. 커피를 제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손님은 늘 대기 중이다. 노동자들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휴식은커녕 화장실은 언제 가는지, 갈 수는 있는지 궁금하다.

“커피 매장은 코로나 초기 때 말고는 영향을 거의 안 받은 것 같아요. 평일에는 5백 잔, 주말에는 천 잔이 넘어요. 중간에 빵도 몇백 개씩 만들어야 하고요. 아침에는 출근하자마자 제품 유통기한을 수정(확인·정리)하고 재고 확인을 해야 해요. 손님들이 줄을 서면 제품 정리나 이날 하려고 마음먹었던 다른 업무는 할 수가 없거든요. 주문이 시작되면 한 명은 계속 커피를 내리고 한 명은 빵을 만들면서 모든 서브를 해야 해요.”

여산휴게소에서 일한 지 20년이 돼가는 정서희 씨(가명)는 말 그대로 빛의 속도로 일한다며 여기는 만능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곳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3~4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두 명이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커피 매장 한 개가 폐쇄돼, 절반의 인력으로 두 개 매장 손님의 주문을 받는 셈이다. 노동강도는 코로나 이전보다 정확하게 4배가 증가했다. 주말에는 2명을 더 충원해주지만, 숫자만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자 수가 코로나 이전보다 30% 줄었지만, 한남상사는 인력충원도 하지 않고 심지어 기존 노동자의 연장근무도 없이 매장 운영 시간을 늘리고 싶어 했다. 노동자 두 명만으로 오전 8시부터 밤 9시까지 매장 운영을 하고 싶어진 거다. 이런 마술이 가능할까? 가능했다.

“두 명 중의 한 명은 8시에, 다른 한 명은 11시에 출근해요. 그러면 8시 출근자는 11시까지 혼자 근무를 해야 하고, 이 근무자가 8시간 근무를 하고 5시에 퇴근하면 11시 출근자는 9시까지 4시간 동안 혼자 근무하는 거죠.”

식사 시간 한 시간을 고려하면 1인 근무 시간이 각각 4시간이다. 시작과 마감 때마다 바쁘게 해야 하는 일들을 혼자서 다 해야 한다. 종일 서서 일하는 서희 씨는 다리와 허리, 팔 등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했다. 여산휴게소 모든 매장에는 의자가 없다. 한남상사가 오면서 기존에 있던 의자를 다 치워버렸다. 회사는 노동자들끼리 아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일하다가 딱 한 번 동료와 업무 이야기를 하면 마치 어디선가 계속 지켜본 것처럼 관리자가 와서 큰 소리로 윽박지르며 지적을 한다. 그렇게 20년간 일해서 서희 씨가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인 기본급에 근속수당 10여만 원을 더한 금액으로, 4대 보험을 공제하면 실수령액은 190여만 원에 불과하다.

관리자의 권력, 근무표에서 나온다

“손님들은 지불한 돈 만큼의 가치를 받기를 원해요. 말투부터 표정까지. 우리는 죄송하다는 말을 거의 달고 사는 것 같아요. 민원이 들어오면 그 코너에 있지를 못하거든요. 10년 동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코너에 가서 일해야 하니까요.” (정서희, 커피 매장 근무)

이전 업체에서도 매장 이동은 있었지만, 일정한 기간마다 이동하는 순환 근무 방식이었다. 그런데 한남상사가 온 후로는 특정한 노동자들을 M(Middle)이라는 팀에 넣어 고정 매장 없이 오늘은 주방, 내일은 핫바 코너, 그다음 날은 편의점 하는 식으로 매일 돌렸다. 회사는 표면상으로 이들이 모든 일을 다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거나 ‘바른말’을 하는 등 회사에 밉보인 노동자가 주로 그 대상이 됐다. 내일은 어느 매장으로 가게 될지 모르는 노동자들은 늘 불안하다. 때로는 일하러 가는 매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경험을 한다.

  휴게소에서 근무 중인 노동자 [출처: 연정]

“많은 노동자가 오늘내일 일하는 곳이 다 달라요. 한남상사 오고 나서 재작년부터 그렇게 하더니 코로나로 인원이 줄어드니까 더 많이 돌리는 거죠. 상행 편의점 출근을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행 세척실로 가라고 하거나 당일 날 근무 시간이 바뀌는 일이 흔해요. 관리자는 이 근무표를 굉장한 권력이라고 생각해요. 이걸로 우리를 괴롭힐 수 있으니까. 17일 동안 유급 휴일을 하루도 넣지 않고 일을 시킨 경우도 있었어요.” (최은아 분회장)

회사가 퇴사한 노동자의 자리를 충원하지 않아 인력이 30%까지 줄면서 한 노동자가 3~4가지 업무를 하는 게 일상이 됐다. 노동자들은 식사 시간에 구내식당에 가서 밥을 먹지 않는다. 고구마나 감자를 싸 와서 간단하게 먹는다. 잠깐이라도 다리를 뻗고 쉬고 싶어서다.

“밥은 집에 가서 먹어요. 따로 쉬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편의점이라고 해서 계산만 하는 게 아니라 유통기한도 봐야 하고 물건 체크도 해야 하고 진열 상태도 봐야 하거든요. 전에 회사에서는 안내소 직원이 따로 있었는데, 지금은 편의점 직원이 안내소 일을 같이해요. 보통 3명이 근무하는데, 고객님이 안내소에 하이패스 카드 충전을 하러 오거나 단말기를 사러 오면 가서 처리해 드려요. 혼자 있을 때는 못 가니까 다른 직원을 부르기도 하는데, 안내소에 상주하는 직원이 없다 보니 고객들이 불편할 수 있을 거예요.” (김주희, 편의점 근무)

키오스크(자동주문 기계) 관리와 마감, 반품요청 처리도 주희 씨가 해야 하는 일이다. 주희 씨 역시 편의점 노동자들이 만능이라고 했다. 이곳 역시 두 시간씩 혼자 근무해야 하는데, 이 시간에는 화장실 가는 걸 참아야 한다. 그나마 오래 일 해 온 노동자의 업무 노하우와 고객 응대 능력, 내 일 네 일 가리지 않고 함께 해온 유대감이 여산휴게소를 돌아가게 하고 있다.

“여산휴게소에서는 시대가 거꾸로 가는 것 같아요. 노동자도 사람이잖아요. 우리도 인간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갈수록 기계 취급을 하는 것 같아요.” (박주영, 편의점 근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송석준 의원(국민의힘)이 한국도로공사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속도로 휴게소의 2020년 평균 매출이 2019년에 비해 3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휴게소 매출 감소가 최근 회복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산휴게소 노동자가 30% 감소했고, 그 인원으로 기존보다 3~4배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사실, 그만큼 줄어든 인건비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한남상사가 들어올 당시 한국도로공사 입찰 규정에 고용 승계와 노동조건 저하 금지가 명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도로공사는 상여금 폐지와 임금 하락 등 노동조건 저하에 대한 그 어떤 사후 관리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2019년에는 입찰 규정에서 노동조건 저하 금지 내용을 삭제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여산휴게소 문제에 대해 “임금협상과 근로조건의 경우 노사 간의 자율협상에 의해 결정될 부분으로 도로공사가 직접 관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저는 정말 나쁜 게 한국도로공사라고 생각해요. 그 많은 사업자 중에 우리를 왜 이런 회사에 넘겼을까? 임대료 몇 푼 때문에? 꼼꼼하게 잘 확인하고 임금하락 없이 계약해야 되잖아요. 회사도 도로공사도 우리를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에요. 쓰다가 병들고 지치면 갖다 버리고 다른 사람을 채용해요. 아픈데 병가도 못 쓰게 해서 나가게 하고. 기가 막히죠. 직원을 사람으로 생각해 주는 회사였으면 좋겠어요.” (정서희, 커피 매장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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