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성 역할을 바꿔내는 ‘가사‧돌봄 혁명’

[가사‧돌봄 사회화①]여성이라는 이유로 강요되는 노동을 거부한다


그냥 내 일인 줄만 알았던 가사·돌봄

한 살 위인 언니와 나는 꽤 이른 나이부터 맞벌이인 엄마를 대신(?)해서 가사노동을 시작했다. 집 청소나 설거지, 상차림은 그래도 좀 할 만한데 빨래는 너무 힘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우리 집엔 세탁기가 없었다. 탈수기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우리 집에 세탁기가 들어온 날 엄마는 물론이고 나와 언니가 기뻐하는 모습이 어슴푸레 떠오른다. 빨래로부터의 해방이 우리 자매에겐 노동해방인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일들을 해가면서 가사노동을 하는 게 힘들었지만 묵묵히 해냈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대학에서 만난 남자친구랑 오랜 연애를 하고 그와 결혼을 했다. 그는 가사 일을 곧잘 했다. 가부장적인 아빠와 두 오빠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나는 감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완전히 달랐다. 맞벌이를 하는 나에게 가사노동은 너무나 고단한 일이었다. 남편이 가끔 도와주는 건 생색내기일 뿐이었다. 첫 아이를 낳고 회사에 복직한 나는 부당영업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해고투쟁을 하면서 남편에게 가사분담을 요구했지만 남편에게 돌아오는 것은 ‘해고 투쟁한다고 집안일에 소홀한 아내’라는 핀잔이었다. 나는 이혼했다. 아니 나는 투쟁하는 여성 해고노동자의 길을 선택했다.

내가 경험한 두 번의 가족은 ‘가사 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게 당연했다. 나는 늘 가족을 사랑했고, 그들도 나를 사랑했다.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강요된 성 역할이 문제였다. 이제 난 과거처럼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됐다. 해고에 맞선 투쟁을 했던 나의 삶과 이혼 결정은 큰 전환점이 됐다. 그 후로 나는 내 삶을 존중하고, 구성원 모두가 가사·돌봄 노동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를 꿈꿀 수 있었다.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인정

요즘 가사·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업체 광고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TV에서는 물론이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주민정보 게시판에도 광고가 붙어 있다. 우리 엄마도 한 때 그 일을 했었다. 엄마는 ‘남의 집 일 하느라 내 자식은 보살피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받은 월급은 그야말로 쥐꼬리. 엄마의 노동력 가치는 제대로 계산되지 않았다. 집안일은 여자가 무급으로 하던 일이니 가치를 제대로 매겨달라는 게 당시로써는 상상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개별 고용주든 대리업체든 사람을 고용하고, 노동자들은 돈을 받고 가사·돌봄 노동을 하고 있으니 이제는 그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가사·돌봄 노동은 여전히 저임금이다. 이 같은 저임금은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저가치화를 더욱 공고히 할 뿐 아니라 가사·돌봄의 영역을 저임금 여성노동자의 비숙련‧비전문 영역으로 한정시키고 강화한다. 하물며 이런 인식과 현실 속에서 전업으로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들이 유급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돼 보이겠는가. 하지만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전업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이 시스템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생각해보라. 어느 사회에서나 가사·돌봄 노동은 그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필수노동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가사·돌봄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관념적인 가치인정만으로는 여성에게 봉사와 희생, 헌신이라는 무거운 짐만 짊어지게 할 뿐이다. 또한 여성은 물론이고 재생산영역에서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현저히 낮게 유지시키는 시스템을 정당화할 뿐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공고한 성별분업은 여성 억압의 장치

가사·돌봄은 단지 집 안에서 일 나누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복합적인 문제를 갖는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겪지 않는 -성역할이 강요된- 가사·돌봄 노동은 여성에게 억압의 장치로 작용하며 족쇄처럼 많은 여성들을 옭아매고 있다. 극소수의 여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족쇄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거나 앞으로 놓여 질 여지가 높다. 이 족쇄가 여성에 대한 억압과 성차별의 토대가 되고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된다.


출산은 여성만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양육도 여성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여성들에게 ‘엄마가 애를 키워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 심지어 여성들 스스로 이 논리에 갇혀 있기도 하다. 이런 잘못된 사고와 가치관이 사회적 합의와 규범으로 굳어져 성역할에 기반 한 다양한 성차별을 만드는 것이다. 성차별적 성역할은 사회구성원들이 가사·돌봄 노동을 여성의 노동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모든 차별이 그렇듯 성차별도 차별로써 끝나지 않는다. 규범화 되고 더 나아가 제도적으로 강화된다.

결혼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만 세 살까지는 엄마 손으로 키워야한다’는 모성보육 강요, 오롯이 여성의 몫으로 떠맡겨진 무급의 가사 노동 등은 여성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막아 버린다. 이 때 여성의 존엄은 사라지고 없다.

가사·돌봄 노동의 사회화

가사·돌봄이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면 가사·돌봄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 모두에게 필요한 가사·돌봄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짐으로써 고정된 성 역할이 아닌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돌보기도 하고, 돌봄을 받기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 인정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노동법 밖의 사람들이 아닌, 극히 예외적인 법 적용이 아닌, 노동자로서 예외 없는 권리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더해 전업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 인정 문제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나아가 고정된 성 역할, 성별분업을 해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재혼으로 새롭게 구성된 나의 가족은 고정된 성 역할을 해체시켜버렸다. 남편은 성 역할을 강요하지 않았다. 미식가인 남편은 주방 일을 맡았다. 음식 만드는 재주도 흥미도 없는 나는 청소를 맡았다. 육아는 남편과 함께 했다. 나의 세 번째 가족은 내게 다른 삶을 부여했다.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내게 어떤 규범도 강요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요되는 노동을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경험은 일반화하기 어렵다. 여전히 이 사회는 강고한 성별분업 속에서 유지되고, 여성들은 혼자서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이를 바꿔내려면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 변화를 나는 가사·돌봄 혁명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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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이제는 어느정도 남녀가 평등하게 분담하여 육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았는데 많은 여성이 가사와 육아 때문에 힘들어하시는군요.............늘 건강하시길.

  • ㅇㅇ

    기본 원칙만 지키면 문제가 없다. 맞벌이일 경우에는 가사노동 분담, 외벌이일 경우에는 가사노동 전담.

  • 추현욱

    기다리던 선언입니다. 너무 공감하는 글 감사합니다. 돌봄노동은 어느 한 사람이 외부 경제활동을 하기때문에 소홀해도되는 노동이 아닙니다. 협의 하에 분업화를 할 수는 있을지라도 한사람이 전담할 수는 없습니다. 돌봄은 반드시 반드시 제 1 순위가 되어야합니다. 돈 버는 남편도 자신이 투잡으로 일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돌봄이 제1의 직업이므로 다른 경제활동이 두번째 직업이라는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그게 기본입니다. 그리고 함께 가부장제 철폐를 위해 싸워야합니다. 이것은 모든 남성들의 책임입니다. 당신히 홀대하거나 중립을 지킬 문제가 아닙니다. 변화해야합니다. 돌봄노동의 사회화. 강력히 주장하고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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