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에 ‘위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질문들] 범죄자가 된 사람들,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인력회사를 운영하던 친구가 일용직 노동자들이 그날 번 돈으로 술만 사 마신다며 한심해했다. 그의 기준에선 더 나은 삶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였나 보다. 친구의 말에 마음이 복잡해졌고, 말은 입속에서 맴돌기만 했다. 그들의 현재가 온전히 그들의 책임이나 결과가 아니라는, 그들의 삶의 과정을 모른 채 쉽게 판단하는 건 섣부르다는 그 말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타인의 삶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아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내 기준으로 그의 사정을 상상하거나 평가한다. 그래서 타인의 삶을 알아채려면 관심을 두고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각자도생이 익숙한 세상에서 왜 내가 남의 삶까지 살펴야 하느냐고 물으면 명쾌한 한마디로 설득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국가는, 법과 제도는 마땅히 사람의 삶을 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정치와 언론 등 공적 책임이 있는 영역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나의 삶이 버겁고 숨찬 사람들도 타인의 삶을 헤아려 볼 기회가 생긴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을 흔들었다.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 나와 타인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람들은 버텼다. 이들이 이뤄낸 K-방역의 성과를 자랑스러워할 때 방역수칙을 준수하지 않은(못한) 사람은 비난의 대상이 됐다. 거리두기와 자가격리 등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것은 당연한 국민의 책무로 여겨졌고, 정부는 방역수칙을 위반한 사람을 엄중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드러냈다. 언론은 비난의 대상을 분노의 땔감으로 공급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코로나와 함께 우리는 최전선에서 희생하는 국민과 방역수칙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모범적인 국민, 그리고 방역을 저해하는 위험하고 나쁜 국민으로 나뉘었다. 우리 이래도 되는 걸까? 광장에 사람을 끌어내 돌을 던지는 듯한 이런 상황이 괜찮은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비난받은 사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1


‘코로나 범죄자’2가 된 사람들

2020년 2월부터 2021년 7월 6일까지 약 1년 5개월간 코로나19 방역 관련 법령 위반으로 사법처리를 받은 사람은 6976명이다. 이 중 4147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이와 관련해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처벌된 형사 확정판결 566건(591명)의 판결문을 모두 살펴봤다. 누군가의 삶과 처지를 단순 사실의 나열만으로는 알 수 없다. 몇 번 격리장소를 이탈하고 어디를 갔다는 사실에 손가락질 하기는 쉽지만, 그의 상황을 추측하고 헤아릴 수 있는 판결문을 본다면 아마 손가락의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566건 중에서 벌금형이 439건(78%), 징역형은 126건(22%)이었는데, 그중 집행유예와 선고유예 등은 135건이었다. 무죄는 단 1건 밖에 없을 정도로 이들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많은 판결문에는 공통으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미증유의 사태’, ‘전 세계적 유행’, ‘국가, 지방자치단체, 국민적 노력 투입’ 등을 언급하며 방역 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동시에 방역 조치 위반을 ‘전 국가적 노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행위’로 판단했다. 법원은 무거운 처벌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감염병 의심자였고 추가 감염이 일어난 경우는 3건으로 극히 드물었다. 무거운 처벌을 피할 수 없었던 그들의 행위는 이런 것이었다.

외국에서 일하던 A씨는 부친이 낙상사고로 뇌수술을 받고 혼수상태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른 형제들이 국외에서 생활하는 등 부친을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귀국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부친을 만나기 위해 휴대폰을 개통하고 병원에 가는 도중 1시간가량 격리조치를 위반하게 됐다. A씨는 이 과정에서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스스로 귀국자임을 밝히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했다. 법원은 A씨에게 특별히 고려할만한 사유가 존재한다면서도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

B씨는 코로나 감염검사를 위해 보건소에 갔다가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정신과에 들러 진료를 받고 바로 복귀했다. 진료를 위해 자가격리를 위반한 시간은 20분에 불과했고, 법원도 위반 정도가 가볍다고 평가하면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C씨는 분리 불안, 정신병적 증상 있는 조증이 있었고 자신이 집을 나갔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C씨가 자가격리를 준수하도록 노력했고, 사건 직후 자진해서 C씨의 이탈을 신고한 뒤 그를 찾아 집으로 데려왔다. 방역수칙 준수를 위한 가족의 노력은 C씨를 범죄자로 만드는 결과로 돌아왔다. 법원은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한다면서도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이 세 사람만이 아니었다. 이탈 시간, 거리 등 위반 정도가 극히 경미한 사례, 가족의 임종, 본인의 건강 이상, 범죄 피해 등 부득이한 사유, 경제적 곤궁함과 직장 등 생계와 직결된 사유 등으로 격리조치를 위반했던 사건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판결문을 읽으면 수사받고 재판받은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경찰서와 법원이라는 긴장된 공간에서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변호사도 없이 홀로 그 자리에서 겁나지는 않았을까,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사람은 만났을까, 방역수칙 위반자를 엄중 처벌하라는 정부와 여론이 두렵고 야속하진 않았을까. 무엇보다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범죄자가 된 사람들, 그들도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정부는 ‘위드 코로나’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와 공존하며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누가 어떤 일상을 회복하게 될까?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는 지난 10월 5일 발표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는 인권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성명에서 ‘위드 코로나’ 전환의 원칙을 밝혔다. 그 내용 중 일부에 이런 원칙이 있다.

위드 코로나로 회복돼야 하는 일상은 방역 과정에서 억울하게 인권을 침해당한 이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의료공백으로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 방역 조치로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 무관용 원칙 등 개인에 대한 책임 전가식의 정책 운용으로 억울하게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받은 사람 등 코로나19 피해자들이 가지는 상실감과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 보상 정책이 구체적으로 수립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공적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과 그 과오를 인정하는 것은 코로나19 피해자들의 훼손된 존엄성 회복의 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의 회복을 고민했다면 지난 방역 조치로 발생한 문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사람들의 삶에서 벌어지는 위기와 어려움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아니 이런 검토는 방역 조치를 진행하는 과정 내내 이뤄졌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 차별받은 사람들, 방역수칙이 버거운 사람들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발표는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각주>

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코로나19와 인권 연구모임은 2020년 12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약 8개월의 연구를 통해 <코로나19와 범죄화: 코로나19 관련 사법처리 현황과 문제점> 연구보고서를 집필했다. 연구보고서와 관련 토론회 자료 링크 http://minbyun.or.kr/?p=49761

2. 10월 15일 자 연합뉴스 기자 제목은 “집합금지·격리 위반 등 '코로나 범죄'...1년 반 동안 6천821명”이었다. '코로나 범죄'라는 명명이 만들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의미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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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자

    작년, 귀국 후 주거지와 떨어진 밭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격리하던 중에 밭을 살피다 감염병 예방법 위반으로 시청에 고발당하여 수백만 원의 벌금형이 내려졌습니다. 음성판정, 비접촉자이면서 평생 범죄기록 없던 저는 한 순간 중범죄자가 되었으며, 남은 격리 기간 동안 전자팔찌를 착용하여야 했습니다. 기사 내용이 삶을 포기한 저를 위로하네요. 치매노인 격리 위반자, 임종 맞으러 간 격리 위반자 등 불가피한 사유로 인하여 이탈한 분들은 행정처분을 조금이나마 감면하여 인도적 차원으로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