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백윤 사회주의 대선 후보 [출처: 윤지연 기자] |
사회주의 좌파 공투본 경선을 거쳐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본인이 선출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이백윤이라는 사람의 발자취가 사회주의 대선 후보로 적합하다고 인정해주신 듯하다. 대학 시절엔 소위 비인기 학문을 전공하면서 대학의 신자유주의 교육 구조조정에 맞서 싸웠다. 인기, 비인기 학문을 구분하고 비인기 학문을 도태시키는 대학의 시도를 무력화시켰다. 졸업 후에는 동희오토라는 완성차 2차 하청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았다. 이후에는 지역에서 산업폐기물 매립장, 화학단지 등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과 함께 운동했다.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면 낭떠러지인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수많은 을의 삶과 내 삶에 동질감을 느낀 것이 아닐까? 사회주의 운동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나를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2월 한 달간 선거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여론을 실감했을 것 같다.
지난 선거운동에서는 주로 활동가들을 만났다. 노동조합의 평조합원이나 시민도 간혹 만났지만 많지 않다. 획일화할 수는 없지만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한다면 일단 거부감이 의외로 적었다.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걸 낯간지러워하거나 몸서리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분들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외국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미국에서 샌더스 같은 민주사회주의자들의 활약도 있었으니까. 이제 더는 사회주의를 북한이나 구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느끼지 못했다. 반면 조직된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경우 생각 보다 냉랭했다. 구조조정이나 노조파괴, 산업 전환 등 주요 현안은 하나씩 갖고 있는 사업장이지만, 그것을 사회주의라는 급진적 아젠다와 연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는 현실 문제에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던 우리의 한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문제에는 동의하지만, 여전히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분들이 계셨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은 싫어할 거야’라는. 여전히 주변을 설득하는 것에 두려움과 주저함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경선을 치르면서 어떤 것에 가장 어려움을 느꼈나.
부족함을 확인하는 것. 정말 많은 부분을 갈고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의 준비 부족을 예상하고 시작한 선거였다. 동시에 이번 대선에서 우리의 부족한 점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생각했다. 사회주의적 의제와 정책으로 사회 변화를 설득하는 것은 어쩌면 첫 시도니까. 부족함을 느낀 것은 두 가지 정도다. 일단은 구체성의 문제다. 각 영역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했지만, 공약과 정책으로 이를 구체화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다. 그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었다. 변화를 꾀하려면 감동과 설렘으로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지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부족한 것 같다. 사회주의가 내 삶의 진짜 대안이라고 체감하도록 하고 싶은데, 여기까지 가는 데 시간이 걸리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도 발전해가고 있고, 그렇게 만들 거다. 처음에는 사회주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몰랐는데, 이제 나름의 전략이 생겼다. 우선 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세력과 권력 의지만 있다면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아울러 이념적인 언어보다, 삶의 언어로 접근하고 있다. 생애주기에 맞게, 만나는 분들의 상황에 맞게 사회주의가 가져올 삶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최근의 칠레 사례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이야기하고 있다.
체제 전환을 위한 5대 과제3를 제시했다. 어떤 과정과 고민을 거친 정책인가.
지난해 사회주의 좌파세력 원탁회의에서 네 차례에 걸쳐 정책토론회를 진행했다. 당원·비당원 관계없이 각계각층의 고민을 모으는 자리였다. 기본 골간은 이 토론을 거쳐서 나왔다. 이와 함께 직접 비정규직, 청년, 장애인, 여성 등 다양한 삶의 주체를 만나 이들의 목소리를 공약에 담으려 했다. 아울러 사회주의 사회를 통한 가치관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부동산 공약을 예로 들면, 현재 대선 후보들은 부동산 해법으로 신규 건설을 통한 주택 공급을 이야기한다. 심상정 후보도 신규 주택 건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과연 환경적인가, 그리고 그렇게 새로 짓는다고 서민의 주거 안정에 도움이 되는가. 문재인 정부가 4년간 공공주택 25만 호를 공급했지만, 자가보유율은 오히려 줄었다. 문제는 소수가 다수의 주택을 점유하는 구조다. 이를 깨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주택을 지어도 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어렵다. 우리는 ‘1가구 1주택’ 등의 방식을 언급하지 않았다. 주택을 소유물로 인정하는 순간, 단순히 수치의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택은 공공재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고 했다. 주택 공급의 핵심은 국가가 주택임대 사업자들에게서 주택을 환수해 이를 공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주택 공급률이 94%여서 신규 주택 건설이 아예 없을 순 없다. 이럴 경우 용산정비창 등 유휴 토지를 공공주택단지로 조성하면 된다.
정책에서 가장 공들인 분야는 무엇인가.
지금도 사회주의 대선 후보는 어떤 콘셉트여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격성과 선명성을 내세울 것인지, 아니면 사회주의의 지향과 정신을 최대한 담아내며 설득력 있게 다가설 것인지 같은 것이다.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경선 과정에서는 후자에 무게 중심을 뒀다. 그래서 ‘대표 공약 1호를 꼽아달라’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사·돌봄 사회화와 통합 가사·돌봄센터를 이야기했다. 이는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자는 취지의 공약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주에 돈이 되는 노동과 그렇지 않은 노동을 구분했다면, 이제는 사회의 필요에 따라 노동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가사·돌봄 노동은 가족의 문제로 개인화되거나 확고한 성별 분업 체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이제는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이를 책임져야 한다. 가사·돌봄 노동의 수혜자와 공급자가 통합된 체계를 통해 함께 의논하고 상의해나가는 것이다. 이와 함께 주변화되거나 이권화돼 있는 일자리를 국가와 공공이 공공적 일자리로 재편해야 한다. ‘국가책임 일자리’ 공약의 핵심은 110만 가사·돌봄 노동자를 국가가 직접 고용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공약들이 사회주의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정의당, 진보당 역시 돌봄 영역을 포함한 공공부문에서 사회적 가치 일자리를 창출하는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주4일제 시행 등 비슷한 정책도 다수 있다. 다른 진보정당과 정책 및 공약에서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가 말하는 ‘국가책임 일자리’는 경제구조의 변혁을 전제한다. 현재의 자본주의 안에서 일자리 확대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재벌과 기간산업 국유화, 의료 및 가사·돌봄 등 공공부문의 획기적 확대, 주4일 30시간 노동제를 함께 주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경제 목적 자체를 ‘이윤 창출’이 아닌 ‘필요 충족’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대중의 필요 충족을 위한 경제를 만든다는 것은, 산업 전반을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통제하자는 주장이다. 반면 정의당의 ‘전 국민 일자리 보장제’는 경제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민간·공공부문 실업자에 임시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부문의 획기적 확대도, 민간기업의 국유화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구조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국가보조금을 늘리거나 임시 공공근로를 확대하자는 주장일 뿐이다. 진보당의 ‘일자리 국가책임제’의 경우 돌봄 등 공공부문의 확대를 주장한다. 하지만 일자리는 기간산업과 재벌 국유화 등 경제 근간 자체를 바꿔야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경제와 산업구조의 변혁을 이야기하지 않는 점이 아쉽다.
진보정당 후보 단일화 논의가 무산됐다. 진보 정당이 힘을 모으지 못하면 거대 양당 체제를 종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여러 번 말했듯, 진보진영의 위기가 분열 때문이고 무조건 단결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다만 거대 양당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진보진영이 단일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수 있기 때문에 민중경선 논의를 해왔다. 현재 진보 정당의 분화는 기계적으로 합친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분화된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기 완결적 논리를 갖고 대중적으로 승부해나가는 것이다. 사회주의 정치는 진보정치의 영역을 확장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만 그 과정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스펙트럼이 발산돼야 하는데, 기존 보수정당과 동일시돼 간다면 진보정치의 변화 발전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 보수 양당 구조의 해외 국가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미국은 민주당 내부에 의견 그룹을 구성하기도 하고, 그리스나 칠레는 소수 정당이 선거연합 정당을 구성한다. 그러한 다양한 시도들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고, 우리 또한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현재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의 정치적 차이보다, 진보정치 내의 스펙트럼이 더 넓다. 더 많이 분화 발전하는 한편, 선거연합 등을 통해 힘을 뭉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선진적인 방식이라고 본다.
최근 정용진을 시작으로 정치권에서 ‘멸공’ 논란이 일었다. 사회주의 대선 후보로서 ‘멸공’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이마트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 나갈 때 사과조차 하지 않던 재벌 3세가 ‘멸공’을 외치면서 마치 억압에 맞서 싸우는 자유 투사 흉내를 낸다. 요즘 말로 소위 ‘관종’ 짓이다. 재벌 3세의 멸공 놀이에 극우 정치권도 장단을 맞췄다. 아마 멸공을 이야기하는 정용진도 진심이고 절박할 것이다. 결국 사면됐지만, 사촌 이재용이 감옥에 갔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정부도 초기에 재벌개혁을 이야기했다. 촛불 이후의 모든 상황이 자유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자신들의 목줄을 죈다고 느낄 것이다. 또한 ‘멸공’을 외쳐야 할 만큼 한국의 자본주의와 재벌체제의 정당성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용진의 ‘멸공’ 타령은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낸다. 누군가를 멸한다는 무시무시한 주장을 하지 않고는 유지되기 어려운 체제라는 것이다. 일본 자본가들이 남긴 생산 수단을 헐값에 불하받아 오늘의 재벌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병영적 노동 탄압과 민주노조 파괴로 연명해 왔다. 대대손손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권력과 노골적으로 유착했다. ‘여기에 의문을 품는 모두가 공산주의자’라는 선동으로 연명하는 것이 재벌체제다. 심지어 자유주의자들조차 ‘오너 리스크’라고 한다. 정용진의 SNS 놀이가 가능한 상황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마트 비정규직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든 부와 권력을 정용진이라는 개인이 휘두르는 상황 자체가 문제다. 그만큼 해 먹었으면 됐다. 총수 일가의 모든 주식지분을 소각하고,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을 환수하고, 재벌을 공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소수정당에 대선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유력 후보들에게만 언론이 집중돼 대중에 노출되기 어렵고, 존재를 알리기 쉽지 않다. 향후 어떤 선거운동을 계획하고 있나.
우리는 작은 세력이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사회주의’라고 하면 무시무시한 세상을 생각하는데, 사회주의야말로 필요하면서도 가능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 나가고자 한다. 대선 전부터 사회주의 의제 운동을 해왔다. 재벌과 기간산업 국유화, 국가책임 일자리 보장, 일체의 비정규직 제도 철폐, 기후총파업으로 자본이 만든 기후위기 종식, 통합 가사·돌봄센터 구축, 재벌 투기 부동산과 임대사업자 주택 환수 등의 주거사회화 등을 요구했다. 우리의 선거운동은 바로 이런 운동의 확대다. 스스로의 운동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거리와 일터에서 호소할 것이다. 우리의 주장을 SNS를 통해 쉽게 풀어내기도 할 것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각주>
1. 노동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으로 이뤄진 ‘사회주의 좌파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공동투쟁본부’는 지난해 12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경선 투표를 진행했다. 4,218명의 선거인단이 참여한 이번 선거에서, 기호 1번 이백윤 후보가 69.6%(1,698명), 기호 2번 이갑용 후보가 18.9%(462명), 기호 3번 박성철 후보가 11.5%(281명)를 각각 득표했다.
2. 〈민중언론 참세상〉이 지난 1월 4일 진행한 인터뷰와, 이후 추가 서면 인터뷰를 통해 구성된 내용이다.
3. ▲민중을 위한 경제혁명 ▲기후정의를 위한 생태혁명 ▲일하는 모두를 위한 노동혁명 ▲삶을 지키는 돌봄·의료·주거 혁명 ▲유예할 수 없는 평등을 위한 민주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