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주노동 30년…이주노동자에서 이주활동가로 나아가다

[새책] 차별에 맞서 삶을 일궈내는 이주활동가들의 이야기 『곁을 만드는 사람』 출간 앞둬

1991년 정부가 만든 산업연수생 제도를 기점으로 시작된 한국 이주노동의 역사가 3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오랜 투쟁 끝에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합법화하고,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들이 정비되고 있지만 열악한 노동조건, 임금 체불, 차별과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주노동자를 향한 한국 사회의 시선은 좀처럼 ‘연민’과 ‘불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처: 도서출판 오월의봄]
오는 4월 3일 출간되는 『곁을 만드는 사람』(오월의봄)은 고용허가제와 명동성당 투쟁이 20년을 넘어서는 지금, 이주노동자의 노동 현장과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기획됐다. 10년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투쟁해온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베트남, 방글라데시, 네팔, 미얀마, 스리랑카,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들을 만나 본국에서 어떤 삶을 살았으며, 한국에 어떻게 들어와 어떤 시간을 보냈고, 현재 어떻게 일상을 꾸려가고 있는지 오랜 시간을 두고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김나현, 섹 알 마문, 샤말 타파, 또뚜야, 차민다, 놀리(가명) 여섯 명의 인터뷰이는 투쟁, 활동, 연대, 공존, 정의, 곁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의 저자들(이은주, 박희정, 홍세미)은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로 살며 저마다 품었던 꿈과 고민을 확장하며 예술가, 활동가 등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 이들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주노동자’가 아닌 ‘이주활동가’라는 명칭을 제안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들을 ‘이주활동가’로 소개할 때 이주노동을 둘러싼 논의와 과제가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젊은 이주노동자를 위하여: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는 공동체

올해엔 11만 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다. 조선업, 제조업, 농축산업 등 산업현장 인력난 문제가 커지자 정부가 E-9 비자 도입 규모를 크게 늘렸다.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연도별 E-9 비자 외국인 근로자 도입 규모는 △2016년 5만 8000명 △2017~2020년 5만 6000명 △2021년 5만 2000명 △2022년 6만 9000명으로 집계됐다. 한국을 찾는 이주노동자들은 점차 늘어날 예정이지만, 인력난이 해소되지 않는 위험 현장에 투입될 이들을 한국 정부가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현재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는 나라는 16개국”으로, 이들 국가에서 오는 노동자는 E-9(비전문취업), E7-4(특정 활동) 등과 같은 비자 종류에 따라 분류된다. 어떤 비자를 갖고 어떤 신분으로 한국에 머무는지가 이주노동에 있어 핵심인데, 기본적으로 이들을 향한 법과 정책이 ‘고무줄’ 같고 불합리함 투성이라 이주노동 활동이 무색하고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성과가 빈약하다. 그러는 중에도 한국을 찾는 이주노동자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실정이어서 다음 세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을 멈출 수도 없다.

“추방당했을 당시 한국 생활 10년째였어요. 사람 인생에서 가장 아까운 나이라고 하는 시간을 모두 한국에서 보냈어요. 그래도 좋았어요. 한국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요. 한국에 가서 노동운동을 해온 선배들만 만난 게 아니라 학생이나 사회운동가도 만났어요. 그들이 줬던 기억으로, 그러니까 나쁜 기억이 아닌 좋은 기억으로 운동했던 거예요.”(151p)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 2기 지부장 샤말 타파는 새로운 세대의 이주노동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이주활동가다. 명동성당 농성투쟁의 뜨거운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그는 2003년 11월 15일부터 380일간 이어진 명동성당 농성투쟁에서 그는 투쟁단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납치’에 가까운 출입국 단속반의 연행으로 여수 외국인보호소에 갇혔다가 본국인 네팔로 강제출국당하기 전까진 말이다. 농성 투쟁이 갓 3개월을 지난 때였다.

그는 한국에서 했던 활동을 바탕으로 네팔노총에 들어가 활동했다. 샤말 타파는 네팔 정부에 타국으로 떠나는 이주노동자 보호를 요구하며 “10년 가까이 (네팔) 노동부를 압박하고 인력송출 회사와 싸”워 왔다. 네팔인들이 이주노동을 떠나는 국가와의 협력도 중요했다. 2010년 9월 민주노총과 네팔노총이 네팔 이주노동자 교육과 조직화를 위해 체결한 교류협정서는 이런 생각을 가진 샤말 타파 활동의 결실 중 하나다.

필리핀에서 온 놀리는 한국 내에서 필리핀 노동자들 조직에 한창이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공동체 ‘뉴에라’를 만들었고, 동료들과 함께 한국에 있는 크고 작은 필리핀 공동체들을 모아 카사마코(필리핀이주노동자단체연합)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카사마코는 현재 한국을 넘어 전 세계 필리핀 이주노동자 단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필리핀 정부의 인권 탄압을 폭로하는 일이나 다른 나라의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세우는 일까지 관심을 기울인다. 이주노동자를 넘어 결혼 이주민과 이주민 자녀 등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까지 눈을 돌리면서 지금을 직시하고 앞날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주활동가들의 고민, 근본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질까

“이주노동자들은 무력한 피해자로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회가 자행한 인권침해와 노동착취에 저항했고 오랜 투쟁 끝에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합법화시켰습니다. 또한 공동체를 꾸려 힘든 이주 생활에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차별 없이 평등한 세상을 향한 이주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연대를 실현해오고 있습니다.”(8p)

저자 이은주의 말처럼 이주노동자들은 다양한 곳에서 활발한 투쟁과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변화는 더디다. 이주활동가들은 “이주민에 대한 여전한 차별, 이주민의 단결과 연대, 통합적인 이주 정책, 반복적인 상담과 권리 구제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제도 변화를 고민하고 있다”(293p). 이 책에 드러난 이주활동가들의 고민은 새로운 이주 정책 및 제도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나현은 이주정책에 대한 통합적인 활동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노동자가 아무리 말해도 월급을 안 주던 사업주가 상담소를 통해 노동부에 진정하니 월급을 주더라는 소식을 들으면 뿌듯하죠. 그런 게 분명히 있어요. 한 케이스가 해결될 때마다 기쁨이 있죠. 근데 잠시뿐이에요. 그 제도는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한 케이스 한 케이스씩 해결해야 하는 게 짜증나거든요.”(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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