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서 시작하는 기후정의

[기획연재] 당사자의 목소리, 나는 4월 14일 세종으로 간다

[편집자 주]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당사자들이 일상을 멈추고 오는 4월 14일 세종정부청사로 모입니다. 414기후정의파업조직위원회는 기획연재로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의 414기후정의파업 참여 이유를 생생한 삶의 이야기로 전합니다. 이들이 외치는 ‘함께 살기 위해 멈춰’에 공감한다면 414기후정의파업, 세종정부청사 앞으로 달려와 주십시오. 414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 https://april4climate.tistory.com/

  414기후정의파업 대정부순회 연설회에서

봄꽃이 일찍 피고 지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연결된 문제

3월 21일 페이스북을 여니 강릉에 사는 한 친구가 강릉역 앞 벚꽃이 활짝 피었다는 글을 올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매화를 착각한 것 아니유?”라고 생각했지만 2023년 3월 21일 강릉에는 벚꽃이 피었고 같은 시기 순창에서는 매화가 피었다. 본디 우리나라는 남쪽과 북쪽이 기온 차가 있어 남쪽에서부터 서서히 꽃이 피어 북쪽으로 오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지역마다 꽃 시기는 뒤죽박죽이 되었다. 지역만 뒤섞인 것이 아니라 꽃마다 피는 시기도 뒤죽박죽이 되었다. 1980년대 이전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피는 시기가 한 달 정도 차이가 났다. 그러나 요즘은 목련,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이 한 시기에 같은 지역에서 피고 지고 있다.

꽃이 한꺼번에 피고 지는 것을 보고 단순히 봄이 왔다, 아름답다, 좋아할 수 없다. 두려움이 더 큰 감정으로 밀려온다. 식물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곤충들은 오랜 시간 세대를 거쳐 지구의 생태계 속도에 맞춰 일생을 살아간다. 벌은 꽃이 있는 시기에 꿀을 따 모아 저장하고 그것으로 겨울을 나고 세대를 이어 지구별에 존재한다. 꽃은 벌과 여러 매개 곤충들의 먹이 활동으로 수분을 하고 열매를 맺어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그렇게 지구별 생명체는 서로 긴밀하게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다. 자연 순환의 시간에 맞추어 서로 진화하면서. 지구의 평균기온이 올라가면서 꽃은 일찍 피어버리지만 아직은 겨울인 땅속에 알을 낳거나 키우던, 벌과 곤충들은 꽃이 피는 것만큼 빠르게 다음 일꾼들을 키워내지 못했다. 꽃이 일찍 피는 것은 결국 종의 다양성, 생태계 다양성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겨울에 눈이 적게 내리거나 봄철이 건조하면 땅속과 대기의 온도 격차는 더 커진다. 일찍 핀 꽃은 수분을 해줄 벌이 없고, 뒤늦게 땅 밖에 나온 야생벌은 먹이(꽃)가 부족해지는 상황. 이것은 결국 지구별 모든 생명체들의 식량의 질과 양에서 위협이 된다. 봄꽃이 일찍 피고 지는 것은 이렇게 우리의 생존과 연결이 되어있다.

지구별의 생태계는 무수한 생명들의 그물코로 연결이 되어있다. 한 종이 무너지고 멸종하게 되면 다른 종도 영향을 받는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오른 2019년 채택된 IPBES(생물다양성과학기구)의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인간 활동의 영향으로 자연 생태계는 47%나 사라졌고 동식물 중 25%가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현재 지구의 야생동물 개체 수는 40년 전인 1970년에 비해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이 겪고 있는 재난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으로 다른 종들은 이미 멸종하고 있는 지구별, 인간은 안전할까?

  비건 교육 및 비건 부엌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탄잡채(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

다 죽이고 자본만 살자는 것인가?

자본주의 체제 이전의 인류는 자연이 스스로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연에 깃들어 기대어 살았다. 산업화 이후 과도한 화석연료 채굴은 기후위기를 불렀다. 1960년대부터 과학자들은 화석연료 사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 결과를 내보내었고 1990년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 공조체제가 구축되었으나 1990년대 이후 배출된 온실가스는 그동안 배출된 온실가스의 두 배가 넘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공조체계가 만들어진 이후 더 온실가스가 배출되다니. 1990년대는 냉전시대가 해체되면서 신자유주의가 본격으로 확산된 시기, 자본의 이윤축적이 브레이크를 없앤 시기이다.

2015년 파리협약으로 전 세계가 획기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고 약속했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IPCC 6차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더 이상의 온난화를 막으려면 이산화탄소(CO₂)를 포함한 전체 온실가스의 배출이 ‘넷제로’ 상태를 이뤄야 한다. 넷제로는 온실가스 순 배출량이 ‘0’이 된 상태로 나무 심기나 배출권구매 등을 통해 탄소 배출량과 감축량의 균형을 맞추는 ‘탄소중립’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배출량을 줄이는 것을 말하며 1년에 온실가스 30Gt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있어서 산업계의 배출 완화에 손을 드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안을 발표했다. 다 죽이고 자본만 살자는 것인가? 다 죽이고도 자본가는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것인가? 지금 기후붕괴에 따른 재난이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 더 취약한 생명들을 먼저 덮치고 있기에 정부 관료들은 감이 오지 않나 보다.

인류역사에 전쟁으로 사망한 인간 6억 1,900만 명…
동물은 사흘마다 그만큼 학살당한다


지구 기후재난은 정말 탄소배출만의 문제일까? 어떤 방식이든 탄소배출만 줄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그래서 대안은 탄소포집기술 개발에 투자하는 것이고 핵발전으로 전환하는 것인가?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축산업이 지목되고 있다. 세계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축산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의 14.5%로,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을 합친 것보다 많다. 축산업에서 왜 이렇게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것일까? 사람들이 많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먹어야 해서? 이렇게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분야이니 소의 먹이를 해초로 바꾸고 소의 입에 마스크를 씌워 메탄 배출량을 줄이면 되는 것인가?

공장식 축산은 폭력, 감금, 종 개종(改種), 학대, 살해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산업이다. 이곳에 생명은 없다. 존중, 관계도 없다. 공장식 축산은 1차 세계대전 후 남아도는 암모늄화합물로 질소비료를 만들어 생산량이 급증한 옥수수와 밀이 미국 농가에 쌓이면서 시작되었다. 미국이라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전 세계가 식량생산을 거대 곡물업체에 기대게 되고 땅을 망가뜨렸다. 한쪽에서 화학비료회사와 거대 식품회사는 돈을 끌어 모으고 가축이라 불리던 인간과 공감 소통이 잘 되는 동물들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제초제와 함께 나온 유전자변형 옥수수는 감금당하고 죽임당하는 동물들의 숫자는 급격하게 늘렸다. 뿐만이 아니다. 이들을 억지로 먹이기 위해 불태워지는 숲이 늘었다. 이 숲은 선주민을 비롯한 숱한 생명들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온실가스를 흡수해 지구의 기후를 안정시키는 지구의 허파이기도 했다. 불태워지는 숲에 살던 생명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상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은 약 6억 1,900만 명. 자본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사흘마다 그만큼의 동물을 학살한다. 물살이와 같은 다른 해양 동물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들은 셀 수 없이 많아서 무게로만 표기된다.

마을에서 가까이 함께 살던 동물들은 점점 더 멀리, 더 안 보이는 곳에 감춰지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생명이 아닌 제품으로 소비한다. 비인간 동물을 구분 짓고, 인간 종이 아닌 다른 동물의 권익을 철저히 배제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 그 안에서 이뤄지는 육류 생산과 소비는 막대한 온실가스 방출과 생물다양성 손실, 식량 위기와 해양생태계 파괴로 기후생태 위기를 더욱 가속화한다. 상업 어업, 동물원 및 수족관, 실험실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의 많은 동물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고통은 착취당하고 죽임당하는 동물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자본의 이윤 속도를 맞추기 위해 동물을 죽이고 피를 뽑고 절단하는 노동자들은 신체의 위험과 정신적 괴로움 두 가지 고통에 그대로 놓여있다.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개인의 실천만을 요구하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
이윤을 위해 생명의 착취가 정당화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지금의 기후위기는 단순히 탄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진정 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중심, 자본 중심 사고와 관점에 멈춤을 선언해야 한다. 비인간 동물, 자연 생태와 평등한 평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생태로의 ‘공생’, ‘연결’, ‘균형의 회복’에 힘을 쏟아야 전 지구적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배출된 탄소를 흡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탄소 흡수원으로는 산과 바다, 습지, 건강한 땅이 있다. 건강한 땅은 건강한 먹거리에서 시작된다. 밥상에서 시작하는 기후정의, 생명을 존중하는 먹거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내가 먹는 것이 농장 노동자의, 도살장 노동자의 손을 빌어 그들의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유지되는 학살의 결과물임을 보아야 한다. 먹는 것을 개인의 영역이라 말하기엔 우린 너무나 많은 관계로 엮여 있고 그 관계는 기후재난이라는 사건으로 사회에 영향을 주고 있다.

나는 비건지향 기후정의 활동가이다. 텀블러를 쓰고, 대중교통을 타고 먼 길을 이동하고, 가방에 손수건과 젓가락, 빈 도시락을 챙겨 다닌다. 식당이라도 들어갈라치면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를 길게 설명해야 하고, 부탁하고 때론 그런 끝에 유난스러운 사람 취급을 받으며 쫓겨나는 때도 있다. 개인이 미친 듯이 애를 써야 하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이다. 기후위기를 말하며 기후불평등을 말하며 기본이 합의되어 개인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의를 만들고 싶다.

기후위기는 생명의 위기, 생존의 위기다. 지금 지구생태계는 절멸의 길로 향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 비인간 동물, 자연에 대한 착취, 폭력, 차별을 에너지로 성장한다. 생명을 소비하는 체제는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순환하는 생태계 회복, 야생의 서식지 회복, 보호구역 확대로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살림 문명’으로 전환할 때이다.

생존과 존엄한 삶을 위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보편권리가 경쟁체제에 내몰리는 사회, 노동력 착취, 다른 생명 착취로 이윤을 쌓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기 위해 나는 4월 14일 정부세종청사로 간다. 나는 모든 차별과 폭력에 반대한다. 이윤을 위해 생명의 착취가 정당화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나는 기후정의를 이야기한다. 414 이후 기후정의 운동의 파도, 그 바탕에는 생명을 존중하는 감수성, 잘못된 자연과 비인간 동물과 인간 동물의 관계 회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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