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피해자 인권침해 더 교묘해지고 체계화됐다”

피해자 목소리 담은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발표

이태원 참사 발생 200일을 하루 앞둔 15일 국가의 책임을 축소하기 위해 정부가 피해자들의 권리를 외면하고 고립시키면서 체계적으로 인권침해를 했다는 내용의 인권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15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조사 보고회’를 열었다. 발표한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는 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 권리위원회가 인권실태조사단을 꾸려 지난해 12월부터 참사피해자인 유가족·지인, 생존자, 상인 등 지역주민, 구조자 등 26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

인권실태조사단은 참사 발생과 대응 과정에서 생명과 안전·존엄·진실·필요한 지원·애도와 연대의 권리가 체계적으로 박탈당했다고 분석했다.

조사단은 참사가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참사 당일 정부가 취해야 할 최소한의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서 부터 참사 이후 ‘관제 애도’로 추모와 애도를 막고, 혐오와 폭력을 방관했으며, 효과적인 피해자 의료·심리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참사의 전 과정에서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 이번 실태조사의 결과다.

  15일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으로 다시쓰고 존엄으로 기억하다'는 제목으로 인권실태조사 보고회가 열렸다.

참사 피해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 정부

조사에 참여한 랄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무책임과 안전대책 미흡, 더딘 진상규명이 이태원 참사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됐다. 피해자에 대한 처우도 마찬가지”라며,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는 “오히려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더욱 교묘해지고 체계화되었다”고 지적했다.

랄라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특히 외국에서 들어온 핼러윈 축제라는 특성 때문에 피해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쉽게 조장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랄라 활동가는 “참사 이후에 정부의 책임 회피와 사회적인 차별 때문에 피해자들이 스스로 피해를 말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조사단은 이태원 참사와 대응 전 과정에서 정부가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하기보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을 범죄의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보고 통제와 단속에만 집중하면서 인권침해가 이루어졌다고 분석했다.

피해자 조사에 나선 고운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는 “희생자를 포함한 많은 피해자는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되어 조서를 쓰거나 마약 관련 부검을 요구”받았고, “피해자들은 안정과 치유 받을 권리는 고려되지 않은 채 범죄자 취급당했다”고 밝혔다.

"(장례식장에서) 검사 한 분 하고 또 형사 몇 분하고 또 아마 또 구청 관계 직원분인가는 모르겠어요. 정확히. 제가 경황이 없으니까 누구누구라고 정확히는 기억을 못 하겠는데 검사 포함해서 여섯 분 정도 오셔서 검사분이 지금 SNS상에 지금 마약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정황은 없지만 그래도 한 번 부검을 해보겠느냐고 해서 저희들은 완강히 거부를 했죠. 그리고 2차 가해다. 우리 애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뭐 애가 범죄를 저질렀냐, 아니면 뭐 사기를 쳤냐 뭐 마약을 했냐, 우리는 안 한다고 완강히 거부를 했죠. 그래서 알겠다고 존중한다고 하면서 일단 그냥 그렇게 돌아갔고."
- 유가족 O

"용산경찰서로 찾아갔죠. 가서 어떻게 된 거냐, 신원확인이 됐냐, 했더니 안 됐대요. 자기네들도 알 수가 없대요. 그러면 핸드폰이라도 줘라. 우리 핸드폰이라도 줘라, 했더니 조사할 게 있기 때문에…. 이게 그때는 너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변사자고 뭐…사건에 무슨 연루가 됐기 때문에, 아니 바깥에서 돌아가시면 뭐라고 그러죠? 그거를? 아무튼 무슨 사건에 연루가 됐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걸 조사를 해야겠다는 거야."
- 유가족 L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중)

"진상규명이 되어야 참사 이후의 삶을 살 수 있다“

조사 결과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은 진실에 대한 권리 침해를 가장 크게 호소했다. 조사단은 “참사의 원인이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구조적 책임에 있다는 것이 공적으로 확인되었을 때, 나아가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한 과제가 규명되고 이행될 것이 약속되었을 때 비로소 피해자들은 참사 이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며 그 중요성을 설명했다.

유가족들은 진상조사 기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며 10일간 진실버스를 운영하고, 국민청원 5만 명 동의를 끌어냈다. 4월 20일에는 183명 국회의원이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공동 발의했다.

"책임자가 누군지가 너무 궁금하긴 해요. 그러니까 이게 원인이 뭐였다. 그러니까 잘못이 교통 통제를 안 해서 그렇다, 아니면은 사전에 예측을 못 했다. 누군가의 잘못은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거에 대한 책임과 그래도 적절한 사과 같은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없으니까. 저는 어떻게 죽었는지 사실 알고 싶어요. 그런 압사를 당했다 아니면 아비규환이었을 거 아니에요. 이렇게 밟혔을 수도 있고. 근데 그런 것조차 모르고 그냥 뭐 특수본에서 하고 나서 결국 했던 거는 이렇게 사람이 쏠리는 현상에 의해서 그런 거다 하고 그냥 끝나더라고요. 한 100일 가까이 조사를 해놓고 그거는 뭐 나도 얘기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거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우리가 몰랐던 일들. 제일 궁금한 그런 게 진상규명이지 않을까 싶어요. 책임이 없다고 해도 이런 큰 사건에는 책임자가 많이 나와야 되는 거라고 생각이 들고."
- 유가족S

"경찰이 사망사고가 나면 조사를 심하게 하죠. 근데 이번 사고는 나한테 아무것도 안 주고 시신검안서 하나 주고, 그냥 변사로 끝난 거예요. 우리 애가 어디서 압사를 당했고 왜 누구 옆에 있는지 이런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최소한 몇 시 몇 분에 애가 어디를 갔고 이 행적 조사라도 다 했을 거예요. 그래서 유족들한테 가서 고개 숙이고 눈물 흘리며 “죄송합니다. 제가 지방자치단체장으로 경찰서장으로서 죄송합니다” 해야죠. 최소한 이런 거죠. 애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잖아요. 제가 분노했던 건 아무도 연락이 안 와. 아무도 연락이 안 와. (중략) 그냥 애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장례 끝내고 조용히 살아."
- 유가족 Q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중)

유가족 발언자로 나선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김의진 엄마 임현주 씨는 “여야 합의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될 것이라는 희망을 변함 없이 품고, 이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덧붙여 “국민의 힘도 특별법 제정에 반드시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첫 주말인 지난해 11월 5일, 청년들은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국가에 묻기 위해 서울 용산 이태원 및 대통령실 인근에서 추모 행진을 벌였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외면당하고 고립당한 생존자들, 159번 째 희생자 낳아

인권실태조사단은 언론과 미디어의 취재 경쟁과 무분별한 보도가 유가족 등 피해자의 온전한 애도를 막았고, 생존자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또 “정부 역시 이런 낙인과 참사에 대한 혐오를 그대로 받아들여 오히려 생존자를 수사하는 등 피해자가 피해를 말하기 어렵게끔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159번째 희생이 생기는 비극을 맞이해야 했다”는 것이 조사단의 판단이다.

유가족 발언자로 나선 159번 째 희생자 고 이재현의 엄마 송해진 씨는 “제 아이 재현이는 힘들게 참사를 오가던 중 가까스로 구조되어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16살의 어린 아이는 43일간 홀로 고통을 겪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말했다. 송해진 씨는 “경찰은 경위 파악을 한다며 갑작스럽게 부상으로 입원 중인 제 아이를 찾아와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부모의 동석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송해진 씨는 피해자 치료 회복과 관련해서도 심리상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이마저도 지원을 못 받는 피해자가 많다고 증언했다. 송해진 씨는 "10대 고등학생 부상자였던 제 아이는 제대로 된 심리상담을 한번 받아보지 못했고, 형제를 잃은 재현이 동생의 심리상담도 제한이 많아 민간 심리상담센터에서 지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책임과 질타를 회피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피해의 숫자를 줄이는 데 급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생존자 이주현 씨는 “뚜렷한 피해를 겪고 있음에도 피해자로 분류되고 인정받은 이들은 극히 일부다. 지인들 또한 압사 위기에 있었는데 도중에 구조되어 몸에 상처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피해자로 분류되지 못했다”며 “피해 규모를 조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참사의 모든 것을 급히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참사 직후 서울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추모 공간. 국화꽃, 편지 등이 쌓여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변정필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