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건설노조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7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건설노조는 “조선일보와 검찰, 경찰은 유가족과 목격자에게 명백한 혐오범죄와 2차 가해를 자행했다”라며 “정치권력에 의해 양회동 열사를 잃고 단 한마디 사과조차 받지 못한 현 상황에서, 언론권력은 또다시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라고 밝혔다.
앞서 조선일보는 16일과 17일 양일에 걸쳐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 끄지도 않았다>, <분신 노조원 불붙일 때 민노총 간부 안 막았다> 두 개의 기사를 발행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자살 보도 권고 기준에 입각, 해당 사건 보도를 최소화해왔”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대처’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보도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라며 열사의 분신을 목격한 건설노조 간부 A씨가 분신을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일부 사실만 선별하고 부각하면서 악의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한 허위보도”
김준태 건설노조 교선국장은 조선일보 기사가 담지 않은 당시 사건의 정황을 설명하며 “양회동 열사와 관련한 모든 상황을 비틀려는 악의적 의도가 있는 보도”라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열사는 목격자(건설노조 간부 A씨)와 조우하기 전 이미 휘발성 물질을 자기 몸에 뿌린 상황이었다. 열사는 한 손엔 라이터를 한 손엔 휘발성 물질을 들고 목격자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했고, 이에 따라 목격자가 섣불리 접근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불의의 사고를 대비해 대화로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일보는 목격자가 ‘휴대전화를 만졌다’라고 했는데 다른 동료에게 이를 알리고, 열사에게 이 동료와 통화해 보라고 요청하기도 한 상황이었다. 열사의 결정을 막으려는 노력이 있었는데, 휴대전화만 만지고 있었다고 악의적으로 보도했다”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조선일보의 기사는 CCTV 영상으로 보이는 목격자의 움직임에 대해 기자 본인의 자의적 해설을 몇몇 목격자의 진술로 뒷받침하고 있다. 심지어 핵심 목격자들의 진술은 사실상 패싱하기도 했다. 건설노조 간부 A씨가 대화를 통해 열사의 분신을 막으려 했다는 진술이 현장에 있던 또 다른 목격자들이었던 YTN 기자들에게 나왔으나, 조선일보는 이를 다루면서도 이와 반대되는 진술을 한 목격자들의 진술을 더 비중 있게 다뤄 이들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마찬가지로 해당 보도에서 건설노조 간부 A씨의 경찰 진술도 실렸지만, 역시 다른 목격자의 말을 통해 이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보도됐다.
건설노조 100인 변호인단의 신선아 변호사는 “전체 사실 중에서 일부 사실만 선별하고 부각하면서 악의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한 허위보도라고 판단된다”라며 “해당 기사와 관련해선 허위보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명예훼손 고소 및 기사 삭제, 정정보도 청구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왜곡보도로 유족과 목격자 간부의 정신적 충격을 한층 가중한 부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등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건설노조 상대로 강압수사 벌이던 검경, 이번엔 허위·왜곡보도의 조력자 됐나
김준태 교선국장은 조선일보 보도 사태에서 기사의 토대가 된 CCTV의 유출 경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검찰과 경찰의 조력 없이 해당 자료를 입수하지 못했을 것이란 주장이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독자 제공’이라고 밝힌 CCTV 영상 자료는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종합민원실의 CCTV일 가능성이 높다. 건설노조가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종합민원실에 있는 CCTV와 비슷한 각도에서 촬영해 본 결과 조선일보 기사에 나온 CCTV 영상 캡처 사진과 유사한 공간이 찍혔다.
[출처: 건설노조] |
신선아 변호사는 “보도에 쓰인 영상, 사진은 검찰청 CCTV 영상으로 추측되는데 누구로부터 어떻게 넘겨받았는지 확인되지는 않지만 만약 그것을 검찰 소속 개인 직원이 넘겼다고 하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소지가 있고, 검찰 등 수사기관이 넘긴 것이라 하면 공무상 비밀누설죄가 성립될 소지가 있다”라며 “CCTV 유출과 관련해서도 관련 진상을 밝히고 당사자들의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고소고발의 법적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건설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족과 목격자에 대한 2차 가해 및 건설노조에 대한 혐오범죄가 이 사건의 본질임을 강조했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은 “정치권력이 열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들과 한편이 된 언론권력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는 혐오범죄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저지르고 있다”라며 “조선일보와 검경은 열사의 죽음을 사죄하라는 유가족과 건설노조에 대한 혐오범죄와 2차 가해를 자행하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설노조 조합원에 대한 강압수사와 표적수사를 이어가던 검찰과 경찰이 이번엔 개인정보가 담긴 CCTV를 유족과 당사자의 동의도 받지 않고 조선일보라는 언론사에 제공한 것이 새로운 피해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노조는 조선일보가 만든 분신 방조라는 프레임이 목격자 개인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건설노조에 대한 혐오는 강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도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최소한의 합리성을 상실한 의도가 명백한 허위 조작 선동행위”라고 규정했다. 윤 위원장은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을 언급하며 “확인된 사실을 기사로 써야 하고, 사실 여부는 공식적인 경로나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확인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현장에 가장 근접해 있던 ytn 취재원에 대한 취재가 이뤄졌나?”라며 “어제의 보도는 스스로 정한 윤리 규범 가이드라인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3권을 보호하라고 명시돼 있는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조차 정면으로 무시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취재의) 기본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노조 혐오 정서를 확산시키고 그것을 기반으로 사용자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기 위한 치졸한 공작”이라고도 지적했다.
권영길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국민들에게 “윤석열 정권과 조선일보가 합작해 만든 폭력을 막아달라” 호소했다. 권 지도위원은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를 보면 사람의 목숨이 등급으로 매겨지는 것 같다. 노동자들은 살아서도 천대받고 죽어서도 값어치 없는 죽음 취급을 받는다. 이는 인간에 대한 모독이고 반인륜 범죄다”라며 “이같은 폭력과 범죄를 막아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