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그만큼의 세계

[프리퀄prequel]

  윤성희@신디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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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대규모 신축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완공되었다.
집과 길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는 단지 모양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건 언어를 단지 모양으로 구획하는 데서 시작한다.

신축 단지는 동네 최초로 단지 출입구에 잠금장치를 설치했다.
원래는 모든 곳이 길이었기에 동네 사람들은 아파트 단지들을 가로질러 다녔는데 신규 입주민들이 [외부인] 출입에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이었다. 주변 아파트들도 각자의 출입구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이란 단어는 신축 단지를 기준으로 입주민/외부인으로 구획되었다.

동네 전체가 단지를 중심으로 구획되어갔다. 아파트 단지와 빌라촌으로, 임대동과 일반동과 로얄동으로, 건설사의 브랜드 네임으로, 단지의 입지와 구조와 높이와 전망과 시세차익으로 삶이 측정되고 구분되었다. 그건 모두가 단지를 축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이상한 중력의 싸움을 하는 일 같았다. 여기선 당기고 저기선 밀어내면서 아슬아슬하게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는 싸움. 누구도 이기는 건 아니지만 이탈할 수도 없는. 그랬다가는 밀려나 지워지고 말 테고. 그러니까 또 뭔가를 당기고 밀고 지워내는 일. 그래도 단지 안에 들어가면 평온한 일상이 있고.... 정돈된 화단과 방해물 없는 산책로와 신식 포베이 구조와 입주민 전용 카드키와 주차장과 피트니스센터와 공손한 경비원과 긍정과 선망 어린 시선... 모두가 그렇게 살고 그런 것을 바라니까 그리 나쁜 삶은 아니고... 남들과 비슷하면서도 그와는 구분되는 뭔가를 가진다면 더욱 안심이 되고.... 나도 그것을 바라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일들.

그러나 구획이란 결국 땅을 한정시키는 것이다.

집도 길도 없이 우리는 단지 같은 모양으로 걷고 있었다.
그건 단지 그만큼의 세계만을 가지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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