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청소용역 입찰 과정에서 용역 업체들은 휴일근무, 3교대제, 시간제 근무제 등을 제시했다. 또한 60세 이상자는 정리해고 하되 사측과 노동자가 협의 하에 예외로 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었다.
최 할머니는 용역업체의 재계약 조건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저들은 토요일도 놀면서 우리는 야근까지 시키고 사람을 더 늘리지도 않고 일요일도 일하고 3교대까지 하는 게 뭐요? 책상머리에 앉아서 토요일도 놀면서 늙은이들 부려먹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일요일은 놀아야 그나마 친척들도 만나고 예식장도 가고 그러지. 토요일까지 일하고 그거 하나 보람으로 기다리는 건데..."라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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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진하는 고대 청소용역노조 조합원들 |
최 할머니에 따르면 현재 청소용역 노동자의 대부분이 60세 이상 여성이다. 60세는 그나마 젊은축인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60세를 정년 기준으로 삼으면 사실상 대부분이 해고 될 수밖에 없고 예외 규정으로 둔 사측과의 합의라는 부분은 결국 사측 제시안에 대해 얼마나 협조적이냐의 구분일 수밖에 없다.
"나이가 많거나 말거나 일하기 힘들고 몸이 안 되면 알아서 나가. 뭘 떨군다는 거야. 오십이면 금세 육십이고 육십이면 칠십이여. 누가 마흔에 와서 이런 일 해. 나는 안 하네." 최 할머니는 백 번 양보해서 새로 오는 사람한테야 60밑으로만 뽑는다해도 기왕 먼저 일하던 사람들은 일하게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답답해했다.
계약서 상에 명시되는 것과 무관하게 청소용역노동자들은 나이를 이유로 여차하면 짤릴 거라는 노골적 말들을 일상적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던져지는 일상적 말들은 밥줄로 청소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매일 매일의 불안일 수밖에 없다.
"나이 들었다고 시킬 거 안 시키나? 다 시켜. 담배꽁초 주으라면 줍고 산에 가서 풀 뽑으라면 뽑고 한겨울에 눈 치우라면 나가서 눈 치워. 우리를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건강해서 일하겠다는데 짜르네 마네 하믄서 겁을 주나. 오늘 살다 내일 죽어도 맘 편히 살아야지 매일 불안하게 짜르네 마네 왜 그렇게 살아야 돼? 좋은 말도 한두 번이야" 최 할머니는 마음 편히 일하는 거 그게 가장 큰 바램이라고 했다.
최 할머니는 새벽 4시에 집에서 나와 걸어서 고대까지 간다. 4시 반에 학교에 도착하고 담당 건물로 올라가서 쌀 씻고 밥하고 옷 갈아입으면 오분 전 5시. 새벽 5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마친다. 8층 건물에 배정된 인원은 8명이다. 용역업체에서 3교대를 제시하는 이유로 드는 것이 피크 타임의 청소시간 외에 두 시 이후로는 노동자들이 쉬기 때문에 교대제를 해서 인력배치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쉬는 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청소 한 번 안 해봤으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야. 3시간 꼬박 일하고 좀 쉬고 나면 어질러진 거 치우고 걸레 빨고 흘린 거 닦고 그러지. 쓰레기가 어디 언제 치우고 나면 그대로 시간 지켜 생기나? 계속 계단이다 화장실이다 강의실이다 왔다갔다 돌아보며 치우는 거지. 그리고 소장이 와서 수시로 들여다보는데 쉬긴 뭘 쉬어" 최 할머니는 용역업체의 말이 순 거짓말이라고 역정을 냈다.
"3교대 해봐. 사람 맘이 다 고만고만한데 뒷사람이 하겠지 미루게 되지. 그러면 학교만 지저분해지는 거야. 저들이 암만 머리 써야 청소하는 우리만 못해."
최 할머니는 98년도에 42만원서부터 고대에서 청소용역 일을 시작했다. 어쩌다 2,3만원씩 올라서 재작년에 48만원 되었다. 작년에는 두 명이 야간 10시까지 일하고 한 사람 임금 분을 둘이서 나눠 받았는데, 그나마 용역업체에서 8만원을 떼고 각자 20만원씩을 받았다.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서 68만원 받은 것이다.
"용역회사가 여자들 노인네들 피 빨아먹는 거 아니고 뭐야? 이 썩을 놈의 용역이 다 떼어 먹고 우리들만 곯는 거지. 근데 그걸 또 깎아먹으려고 3교대니 뭐니 하고 있어? 저들은 에미 에비도 없는 게지."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에도 최 할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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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한 학생 |
투쟁이라는 말이 낯설고 무섭지는 않냐는 질문에 최 할머니는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본인 몸들이고 이력들여 먹고사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냐고 덤덤히 답했다. 넌지시 다른 투쟁하는 노동자들 이제는 남같지 않겠다고 물었다.
"테레비서 병원 사람들 보고 환자가 불편하니 어쩌고 했잖어. 내가 아들보고 그랬어. 참 먹는게 크다고. 있는 사람들은 칼도 안 들고 도둑질하는데 우리는 투쟁을 해서라도 우리 뱃심들인 공 찾겠다는 건데 뭐가 죄라고 그러는 건지 원." 최 할머니는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 게 뭐냐고, 얼마 전 병원노조 파업이 남일 같지 않더라고 말했다.
최 할머니는 해보다가 안 되면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같이 숫자 채우고 응원하며 갈 결심이란다.
"내가 살면 또 얼마나 살겠어. 막말로 짤리면 짤려야지 일 안 시킨다는 데야 어쩌겠어. 그래도 내 뒤에 들어올 사람들일랑은 나처럼 불안하게 말고 편하게 일 해야야지, 벌어먹어야지."
22일 총회 자리에 비하면 더 늘어난 인원이 집회에 참석했지만, 전체 고대 청소용역 200여명 중 절반 정도는 불참했다. 업체와의 재계약 시기인데다 2002년 노조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용역 업체의 탄압으로 결국 퇴사하고 노조 결성이 무산된 경험이 있기에 선뜻 동참하지 못하는 부분도 크다.
"죽으나 사나 칼을 뽑았으면 같이 해야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나. 요번에도 하자하자 해서 하는 건데 모가지 짤릴까봐 같이 안 하는 사람들 그러면 안 돼. 뒤에 올 다른 젊은 사람들 생각해서라도 이번에 제대로 해야지. 아 산에 가서 혼자 사는 것도 아닌데 이런 때 지 목 생각만 하면 그거는 의리도 없고 눈물도 없는 거야" 결국은 함께 해야한다는 최 할머니의 강한 바램이 녹아나는 말이다.
"일이야 할만해. 남의 주머니서 돈 받아내려면 내 몸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게 세상사지. 여적지 그렇게 살아왔어."
평생을 그런 마음으로 손에서 일 놓지 않고 자식들을 거두었고 이제는 그 손자들의 학원비라도 보태련다는 최 할머니의 바램이 한편 짠했지만, 일하며 살고 싶다는 최 할머니의 바램이 더 이상 "이제는 집에서 편히 쉬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연민의 형태로 답해져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라도 최 할머니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치러져야 하고 최 할머니의 노동이 안정되게 보장되어야 한다. 지금 최 할머니의 바램이 이전의 살인적 조건에서라도 불안 없이 일할 수 있고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 것이라 해도 그 바램의 첫 발이 할머니의 말처럼 뒷사람들이 제대로 인간 대접받으며 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갈 것이다. 그 힘든 길에 몸소 나선 고대 청소용역노동자 131명의 최 할머니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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