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영수 노동자의힘 편집위원장은 "최근 저항세력 지도부와의 인터뷰를 보면 무장 저항은 이라크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외형상 게릴라전의 양상을 띄고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이라크 정규군의 게릴라전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내다봤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이라크 민중의 저항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대부분 '이라크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또 주권이 이양되기 때문에 이라크 상황이 진정될 것이라거나, 이라크 저항세력을 온건파와 강경파로 임의로 구분하는 등 초점을 흐르기 일수다.
알릭스 그랑주는 "본질적으로 바트당원(수니파와 시아파)으로 구성된 저항세력은 현재 '종파, 민족, 정치적 차이와 관계없이 점령에 반대하는 전민족적 투쟁의 모든 운동'을 재조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직 진실은 이라크 민중들이 미 제국주의의 포화 속에서 목숨을 걸고 이라크 민중의 생명과 생존과 주권을 지켜왔고, 또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라크 민중의 완강한 저항이 주된 동력이지만 동시에 세계 민중의 반제,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힘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평소 국제사업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 원영수 씨에게 글 인터뷰를 부탁했다. 원영수 씨는 이라크 전쟁과 관련, 반제국주의 운동과 반세계화 운동, 반세계화 운동과 반전 운동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짚었다. 아울러 국제좌파의 상황 진단과 향후 투쟁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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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식적인 직함은 노동자의힘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노동자의힘이 격주간지로 발행되는 전 과정에서 정치적, 기술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리인데, 개인적으로 상근할 수 없는 처지여서 100% 집중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다행히 함께 하는 동지들이 열심히 해서 노동자의힘이 제대로 나오고 있다.
국제사업을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한국에 몇 안 되는 국제건달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주 활동 영역이 국제연대사업이긴 하다. 97년부터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원래부터 국제적 사안에 관심이 많았고,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국제관련 사업을 전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기가 인터넷이 보급되는 시기여서, 출판물에 대한 의존성을 넘어 새로운 자료와 국제적 접촉의 가능성이 열렸다. 개인적으로는 이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서 활동하고 있는 셈이다.
1999년 씨애틀 각료회의 참석이 주된 계기였던 걸로 들었다.
2000년 이후 노동자의힘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국제관련 동향을 알리는 일을 주로 해왔다. 특히 반세계화 운동 흐름은 우연히 1999년 시애틀전투에 결합하면서 거의 처음부터 추적해온 셈이다. 시애틀 시위에 참여하고 그 이후 국제적 동원타격투쟁 동력을 보며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세계화와 WTO에 대한 문제의식 정도 밖에 없었는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가공할만한 지배력과 이에 대한 폭발적 저항에 주목하게 되면서 일종의 전공분야 비슷한 것이 되었다.
반제,반전,반세계화 운동 이야기를 먼저 짚어보자.
반세계화 운동의 초기 주력은 이슈 중심의 NGO들이었지만, 이후 전 세계 주요한 대중운동과 민중운동을 포괄하는 형태로 확장되었다. 이는 20세기에 좌파정당과 노동조합이 주도하면서 상실한 계급투쟁의 동력을 되살리는 계기로서 작동하고 있다. 물론, 운동 자체의 진폭이 너무 컸고 그 전망의 측면에서도 아직은 초동 단계여서, 어떤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사회주의 진영의 해체로 자본의 힘에 대한 대항력이 사라졌던 정세에서 새로운 대항력으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Another world is possible!이라는 세계사회포럼의 구호는 대단히 단순하고 낮은 수준이지만, 신자유주의 공세의 본령을 표현했던 철혈여제 마가렛 대처의 There is no alternative!라는 슬로건에 대한 안티 테제이자 21세기 새로운 사회변혁운동의 출발점이 되기에 충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영국의 트로츠키주의자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 운동을 반자본주의 운동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는 오버이다. 반세계화 운동 내에 반자본주의적 지향과 세력이 일정한 정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고, 또 반세계화 운동 자체가 반자본주의적 방향으로 나아갈 때에만 진정한 대안과 희망이 보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단계 반세계화 운동은 아직 반자본주의 운동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이 현재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이 국제적 투쟁이 일국적 계급투쟁과 긴밀히 결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비해 많은 운동주체들이 일국적 계급투쟁이 곧 현단계 반세계화 운동의 한 구성 부문임을 인식하고 있지만, 현재의 반세계화 운동은 일국적 투쟁의 성과와 잘 결합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반제국주의와 반세계화 운동을 더 이야기하자면.
대표적으로, 작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세계사회포럼이 열렸을 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예정에 없이 나타났다. 포럼 주최측은 '헌장'의 정당배제 원칙에 따라 차베스의 포럼 참가를 거부했다. 반면 룰라는 포럼기간에 10만 명이 모이는 대중집회에 참석했고, 이에 대한 제지나 비판은 없었다. 오히려, 포럼 직후 스위스 다보스로 날아가서 세계경제포럼에서 두 포럼의 가교가 되겠다는 헛소리를 했음에도, 일부에서 이를 말리는 소수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룰라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현재 베네수엘라는 8월 15일의 이른바 소환투표를 앞두고 있다. 이는 일국적 계급투쟁의 결과이자, 제국주의적 개입의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베네수엘라를 포함하여 남미의 좌파들 사이에서 차베스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차베스 개인의 스타일이나 정치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와 반정부세력의 반혁명적 공세를 둘러싼 계급투쟁의 지형과 정세이다. 이런 의미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핵심 축을 이루는 사회포럼은 이 계급투쟁의 지형에서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현 단계 반세계화 운동은 본질적으로 반제국주의 운동이라는 점이 흔히 간과되고 있다. 한편에서 초국적 독점자본과 국제금융기구(WTO, IMF, 세계은행)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공세와, 다른 한편으로 이를 군사적으로 보호하는 군사적 개입과 전쟁 공세는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공격은 결국 세계 자본주의체제의 핵심에 대한 공격이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 반세계화 운동의 핵심적 의미라고 생각한다.
반세계화 운동이 반전 운동과는 어떠한 연관을 갖는지...
이 반세계화 운동 동력이 거대한 국제적 반전운동의 동력으로 전화되었다는 점 역시 중요한 역사적 의미이다. 물론, 반세계화 운동의 대중적 동력과 반전 운동의 대중적 동력은 동일하지 않지만, 반세계화 운동의 폭발적 동원이 없었다면, 2.15 국제반전투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욱이 9.11테러로 조성된 국제적 공안정국을 고려하면 그렇다.
그러나 이 거대한 역사적 운동의 결정적 약점은 정치적 지도력이다. 일부 아우토노미아 류의 해석은 정치적 지도력 없는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정치적 지도력의 우회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지도력 부재 현상은 사실 지도력의 분산과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의 부재일 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제국주의 전쟁의 양대 공세라는 객관적 조건이 현재의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반세계화 운동이 반드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
반세계화 운동의 좌파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지도력은 당연히 우파에게 넘어가고, 우파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운동 자체가 사멸하거나 주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상 사멸한 사민주의 세력의 개입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최근 국제 좌파 운동의 상황을 정리해보자.
국제 좌파운동이라! 요즘은 누가 좌파인지도 잘 모르겠고. 좌파라는 말이 욕처럼 들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지금의 현실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의미는 좌파는 자본주의 체제에 포섭되지 않은 좌파, 그렇지만 이성을 가진 좌파인데, 이들의 상황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대단히 어렵다. 이는 20세기 자본주의변혁 프로젝트의 실패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15년도 되지 않았는데, 좌파가 생생하게 다시 살아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20세기 좌파운동에 대한 비판적 반성에 입각한 새로운 좌파운동의 필요성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문제는 현재의 자칭 좌파가 모두 그 대열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대중투쟁을 통해 검증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물론 적지 않은 좌파가 여전히 과거의 레파토리를 되풀이하고 있는데,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좌파통합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
최근 10여년 간 국제 좌파운동에서 중요한 움직임은 과거의 교조주의와 종파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좌파통합의 움직임이다. 문제의식은 개량주의에 반대하는 좌파들이 개별적 분파로서의 존재를 넘어, 조직내 민주주의를 전제로 단일한 조직으로 결합하자는 것이다. 대표적 성공사례가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당인데, 이 경우 스코틀랜드의 모든 좌파 단위들이 하나의 조직, 스코틀랜드 사회주의동맹으로 결합한 다음,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형태로 전화한 사례이다.
이 사례의 성공으로 영국과 호주에서 사회주의동맹이 결성되었는데, 영국의 경우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호주의 경우는 부분적 성과를 내는 데 그치고 있다. 역시 20세기의 유산인 종파주의가 문제였다. 특히, 영국의 경우 사회주의동맹을 주도했던 트로츠키주의 그룹이 반전운동의 성과를 모아, RESPECT를 출범시키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동맹을 고사시키는 바람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RESPECT의 최근 선거참여 역시 아직은 노동당에 대한 좌파적 대안으로 자리매김 하기에는 취약성을 드러냈다. 문제는 보다 본질적이고 복잡한 것 같다.
그리고 유럽적 차원에서는 프랑스의 트로츠키주의 좌파(제4인터내셔널계)가 주도하는 유럽 반자본주의 좌파연대의회(EACL)가 유럽연합 정상회담 주기에 맞춰 모이고 있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이들의 성과 역시 기대 이하였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이탈리아 재건공산당(PRC)인데, 지난 제노바 투쟁에서 중심적 좌파세력으로 떠오른 바 있다. 베르티노티 위원장 체제의 출범이후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결합이라는 기치 아래 유럽의 반세계화 운동에서 중심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반자본주의 좌파연대회의와도 긴밀하게 협력해서 범유럽적 차원에서 좌파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올해 5월, 재건공산당은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공산당계를 중심으로 유럽좌파당을 출심시키면서, 비제도적 좌파를 배제하였다. 그리고 선거 결과 역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반자본주의 좌파연대회의 측이 배신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흐름은 좌파가 21세기의 새로운 주연으로 등장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아시아 지역의 상황은 어떤가.
아시아 지역에서는 아시아-태평양 연대회의라는 형태의 느슨한 좌파네트워크가 있는데, 이는 호주의 민주사회주의당의 주도로 좌파정당과 정치조직 참여하고 있다. 호주 외에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파키스탄, 인도 등의 좌파단위가 결합하고 있지만, 유럽에 비해 지역이 넓고 문화적 동질성이 상대적으로 적어 효과적인 연대를 조직하는 데 구조적 어려움이 있다. 더불어, 상대적인 운동의 후진성과 불균등성도 장애요소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국제 좌파운동은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있고, 20세기의 실패가 악몽처럼 좌파를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반세계화-반전운동 및 계급투쟁의 고양과 더불어, 새로운 좌파정치의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으며, 주체적으로도 과거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좌파통합과 연대의 질서가 등장하면서 보다 조직적인 대응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대단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단계라고나 할까?
최근 정세는 아무래도 반전운동에 집중되는 듯 한데, 반전운동의 흐름에 대해 정리해달라.
먼저, 올해 3.20 국제반전투쟁은 2.15투쟁에 비해 왜소한 규모로 끝났다. 2.15투쟁이 워낙 거대한 투쟁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투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투쟁의 규모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현 단계 반전운동의 가장 큰 문제는 반전투쟁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 없다는 점이다. 2.15투쟁의 규모에 놀라기만 할 뿐, 사실 그 조직화 과정에 대한 치밀한 분석은 비어 있었다. 올해 3.20에도 잘 되겠지 정도의 안일한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베테랑 활동가들은 대부분 예상하고 있었다.
정세와 운동에 대한 정교한 분석이 없다 보니, 반전투쟁의 전략 역시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라크 침공 이후 반전운동의 대응은 대부분 즉자적인 것이었고, 일국적 수준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다. 특히, 이 시기에 이라크 저항운동과의 정치적 연대가 결정적이었는데, 이 부분은 이라크 측과 국제 반전운동 양측 모두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사실상 유실된 상태이다. 서구의 반전운동은 이라크의 무장 저항을 제대로 엄호하지 못하고, 이라크의 무장투쟁 네트워크는 대부분 이라크 국내의 무장투쟁에 몰입되어 있다.
반전운동의 성과를 너무 폄하하는 건 아닌가.
그런 건 아니다. 이런 평가가 반전운동 활동가들의 헌신성을 폄하하거나, 2.15-3.20 투쟁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 이런 성과들이 특정 주체들의 역량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반전운동을 주도하는 ANSWER나 영국의 Stop the War Coalition의 경우, 주도그룹의 문제로 운동 자체가 제약되는 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반전운동의 흐름은 반전운동 자체의 역량보다는 이라크 내의 무장저항에 의존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 투쟁과의 효과적 연대를 조직하는 것은 여의치 않음으로써 반전운동이 일정한 교착국면에서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미국 대선이다. 미국의 좌파운동이나 반전운동 진영이 대선을 둘러싸고 효과적 대응에 실패하고 있는 것도 반전운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시만 아니면 된다는 민주당 지지파에서 독자후보 진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선거는 선거로 끝나지, 반전운동이나 민중운동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그 만큼 제국주의 체제의 중심부는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이야기로 넘어가자. 미국은 이라크 주권 이양 날짜를 이틀 당겼다. 저항세력과 반전운동 세력에 대해 힘빼기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지금 현지 상황은 좀 어떤가.
내가 현지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고, 최근 상황도 미세하게 추적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단정적으로 의견을 밝히긴 힘든 상황이지만, 주권이양을 앞당긴 것은 저항세력에 대한 일종의 기습작전이다. 그러나 주권이양이 사기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이틀 먼저 이양식을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어쨌든, 새로운 허수아비정권은 무장저항의 직접적 타격대상이 될 것이다.
한편 여기에서 주목해야 될 것은 미국대사관이 1,400여명의 인원으로 구성될 것이고, 또 1980-90년대 남미에서 쿠데타의 배후조종자로 악명높은 존 네그리폰테가 이라크 대사로 지명되었다는 점이다.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이 식민지 총독부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며, 알라위 정부는 이라크 내 친미세력만을, 즉 인구의 10% 내외만을 대표하는 무능한 정부가 될 것이다.
최근 저항세력 지도부의 인터뷰를 보면, 무장저항은 이라크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외형상 게릴라 전의 양상을 띄고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이라크 정규군의 게릴라전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는 근본적으로 이라크 저항세력이 미군의 예상보다 너무 크고, 현재의 주둔병력으로 도저히 통제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전쟁 이후 이라크 민중의 삶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다수의 이라크 민중을 괴뢰정부가 포섭할 가능성 역시 거의 없다. 따라서 미영 연합군의 철수는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특히 영국의 이번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를 보면, 토니 블레어의 퇴진 역시 시간문제이며, 부시 역시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으로 당선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라크에서 제국주의의 패배는 시간문제라고 본다. 이럴 때 추가파병을 강행한다는 것은 정신 이상 아니고는 어렵다.
이라크 저항세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 배타적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를 넘나드는 한국인의 성향을 고려하면, 입장이 바뀌면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김선일 씨 죽음의 원인이랄까, 본질적인 측면에 대해 말하자면.
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가 이라크에 갔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노무현정권과 언론의 책임이다. 이라크 민족해방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이라크에 가는 것 외에 다른 목적으로 이라크에 가는 것은 곧 자살행위이다. 일부 언론에서 이라크인을 등장시켜, 다수의 이라크인이 테러 행위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선정성 기사를 내보내고 있지만, 그런 기사를 싣는 인간들에게 이라크에 가라고 해 보라.
이라크인의 눈으로 보면 김선일 씨는 군대를 보낸 제국주의 동조국가의 시민이고, 이라크에서 그의 직업은 미군에게 봉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라크에 돈을 벌러 온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죽어야 되는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김선일 씨가 완전히 무고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이라크 상황은 전쟁 상황이며, 여기에서는 적이냐 동지냐 밖에 없다. 이라크인의 편이든지, 미국 제국주의의 편이든지. 중간은 없다.
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이나 주한미군기지이전반대 투쟁 등 파병 반대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데요, 현 시기 투쟁의 기조나 방향을 어떻게 잡아나가야 하겠는가
열심히 잘 하면 되지 뭐. 그러나 핵심은 문제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반제투쟁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또는 민족모순의 관점에서 수행되었다. 또는 시민운동의 휴머니즘, 평화주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두 가지 투쟁 모두 본질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이다. 또 동시에 제국주의의 앞잡이인 노무현정권을 향한 비타협적 투쟁이어야 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제국주의를 이 지구상에서 절멸시키지 않는 한, 인류의 불행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병반대투쟁과 주한미군반대투쟁은 이라크의 무장저항과 동일한 전선의 투쟁이다. 2.15 국제반전투쟁은 21세기의 계급투쟁에 새로운 상상력을 부여했다. 물론, 그 동학과 동력 형성의 조건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노동자-민중 진영은 새로운 투쟁의 영역에 들어서고 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