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에 직면한 거만한 세계화“

미디어와 반세계화에 대한 이냐시오 라모네와 주경복의 대담

르몽드 디쁠로마띠끄의 사장이자 편집 주간인 이냐시오 라모네가 ‘한미투자협정저지와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회의’ 초청으로 지난 21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냐시오 라모네는 프랑스의 진보적 월간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주간으로, 파리7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학자로서, <커뮤니케이션의 횡포> <소리없는 프로파간다>등의 저자로서 그리고 아딱의 중심적 운동가로서 다양하고 폭넓은 반세계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라모네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커뮤니케이션 연구자이며 파리5대학에서 언어과학을 전공한 주경복 참세상 편집위원장과의 대담에 성실히 임했다. 연이은 언론 인터뷰와 빡빡한 일정에 피곤할 법도 했지만 이냐시오 라모네는 주경복 편집위원장과 농담을 섞어가며 대화를 진행했다.

한국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에 대해 분명한 지지와 찬사를 거듭해서 표현한 라모네는 르몽드와 관련된 예민한 질문에 대해서는 일반론적 답변으로 에둘러 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원하는 유럽은 사회주의적 유럽”이라고 잘라 말하며 신자유주의화 되가는, 또 다른 미국의 모습을 띄는 유럽의 현실을 비판했다. 자본의 직간접적 미디어 지배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 라모네는 “저들이 숨기고자 하는 것을 민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대안적 민중 매체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늘 전지구적 저항에 직면해 세계화 추세는 분명히 주춤거리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고 낙관한 라모네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인류전체의 분명한 염원”이라 강조했다. `미국 문화패권주의와 문화다양성 -소리없는 프로파간다`라는 주제로 기자간담회와 강연회를 갖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 라모네는 참세상과 참세상 독자들에게 연대의 인사를 전했다.

한편 라모네를 통해 르몽드 디쁠로마띠끄와 참세상은 기고, 상호 컨텐츠 교류 등을 포함한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가져나가기로 했다. 다음은 24일 오후 스쿼린쿼터 문화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된 주경복 참세상 편집위원장과 이냐시오 라모네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편집주간의 대담 전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좌파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교차로 역할을 하고 있다“

진보적 매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는 동시에 세계화의 횡포에 저항하는 문화다양성의 옹호자이자 예리한 비판의식을 이론화하는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당신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나 역시 한국의 민중언론 참세상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게 돼서 기쁘다.



프랑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온 <르몽드 디플로마티끄>는 일반적으로 중도 좌파 정도로 분류된다. 주로 지식인 대중으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르몽드 디쁠로마띠끄의 독자 분포는 어떠한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는 15개 언어로 25개국에서 발간된다. 프랑스안에서는 30만부 내지 35만부 정도 찍고 있다. 독자는 대략 100만 정도 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다. 아무래도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캐나다의 퀘벡에 걸친 불어권에 주로 독자들이 분포되어 있다. 남녀비율로 따지면 남성이 60%, 여성이 40% 정도로 여성 독자를 더 늘려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연령으로 따지면 35세 이하의 젊은 독자가 65%를 차지할 정도다.

독자 대부분은 좌파 성향인데 독자의 85% 정도가 좌파를 자임하고 있다. 사민당 성향의 중도좌파, 공산당 성향에 가까운 급진적 좌파, 녹색당 성향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르몽드 디쁠로마띠끄가 프랑스 민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나? 또한 실제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나

우리는 여러 경향을 가진 다양한 좌파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교차로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좌파들이 상호간에 시너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도록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수행한 역할을 꼽아본다면...소비에트가 붕괴한 90년대 초반 국가주의 좌파든 아니면 비국가주의 좌파든 여러 좌파들이 당황해 했던 것이 사실인데 그 당시 여러 가지 구체적 분석들과 행동강령을 제시했다고 자부한다.

그 이후에는 아딱을 결성했고 세계화의 모순 지점을 폭로했으며 세계사회포럼을 결성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우리는 독자들이 원하는 것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한 성과를 거뒀다.


최근, 르몽드 그룹이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한 것으로 안다. 군수재벌 라갸데르 산하 아세뜨 미디어 그룹으로부터 2,500만 유로를 출자 받았고, 라갸데르가 르몽드의 지분 15%를 소유하게 됐다. 역시 좌파 신문인 리베라시옹은 로뜨쉴드(프랑스의 대표적 금융자본)로부터 출자를 받았고 로뜨쉴드의 지분은 40%를 넘긴 것으로 안다. 당신이 어제 인터뷰를 한 한국의 개혁적 일간지인 한겨레신문의 경우도 경영난으로 인해 최근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다.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이러한 유수의 언론들이 평소에 비판 대상으로 삼던 자본들의 지원을 받는 현상과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자본들이 직접적으로 편집권을 통제하고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도 있지만 그 위험성은 상존하는 것이 아닌가? 금융자본이나 군수자본이 직접적 이익을 얻기 위해 언론사 지분을 늘리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우리는 그들이 ‘비판언론’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혹은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미디어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우 정확한 지적이다. 프랑스에는 양대 군수재벌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미라쥬 전투기를 만드는 다소이고 나머지 하나는 마트라 미사일을 만드는 라갸데르다. 최근 다소는 유서깊은 보수 신문 피가로를 인수했고 라갸데르는 르몽드의 지분을 인수했다. 이런 거대 기업들이 미디어에 투자하는 것은 직접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여러 미디어들이 직면한 어려움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로 다가가고 있다. 그들은 미디어에 대한 투자를 통해 국가와 사회에 정치적, 이념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나는 사회주의적 유럽을 원한다“


당신은 지난 2004년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창간 50돌 기념호에 '저항'(Resistance)이라는 사설을 써서 실었다. 그 글에서 당신은 “시장에 덜 지배되는 유럽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U출범을 프랑스가 주도해 왔고, 냉전이후 EU가 미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은행 총재로 폴 울포위츠가 선임되는 과정을 보면, EU 주요 국가들은 처음에는 부시의 전횡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는 WTO 사무총장 자리에 프랑스 사람을 앉히기 위해, 그리고 독일 총리 슈뢰더는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입을 위해 슬그머니 반대 의사를 접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EU가 실제로 미국중심의 세계패권을 제어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실리를 거두기 위해 반세계화, 반미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미국반대라는 의제만으로 제 3세계의 경우는 현혹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요약하자면 유럽이 국제정세를 실리적으로만 이용한다는 혐의가 짛다는 것이다. 유럽인으로써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재 우리 앞에 있는 EU는 정확히 말해 미국의 견제세력이라 보기 힘들다. 물론 그런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프랑스나 독일이 반대했던 경우도 있고...그러나 많은 유럽국가 특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 동구권 국가들은 미국편에 서왔고 지금도 그렇다. 전체적으로 볼 때 EU가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경쟁이 큰 갈등을 일으킬만한 그런 것은 아니다.

현재 EU는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걷고 있고, 이는 미국과 같은 행보다. 이것이 문제고 현재의 EU 모습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모이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제출된 EU 수정헌법에 반대하고 있다. 나 역시 이번 일요일 프랑스에서 실시될 예정인 EU 수정헌법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반대파가 승리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어떤 유럽을 원한다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지...나는 사회주의적 유럽을 원한다. 지금 EU는 냉전시기 미국에 의해 주도된 나토의 시스템을 자신의 안보시스템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의 EU는 미국과 너무 닮아있고 우리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미국을 견제하는 것, 그것은 우리 유럽 뿐 아니라 세계 전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다원적 세계를 위해서도 미국에 대한 견제가 필수적이다.


"한국의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은 전적으로 정당한 운동“


GATT(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4조는 이미 스크린쿼터를 인정했고 GATT 시스템을 이어받은 WTO역시 스크린쿼터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수년 동안 한미 BIT(투자협정)가 체결되기 위해서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하며 한국정부를 압박해왔다. 이에 맞서 한국의 영화인들은 지난 8년여간 투쟁을 통해 스크린쿼터를 지켜냈다. 당신은 이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나는 한국의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이는 전적으로 정당한 투쟁이다. 문화는 상품이 아니다. 다른 상품처럼 교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예외적이어야만 한다.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EU헌법도 문화는 예외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화 뿐 아니라 교육과 보건도 상품처럼 취급되어선 안 된다. 프랑스도 자국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비관세적 제도들을 유지하고 있다.


당신은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라는 저서에서 미디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구조, 그리고 미국의 영향하에 국적이 사라진 미디어의 상황에 대해 진단했다. 그런데 한국사회를 보면 이미 미국과 대자본의 프로파간다가 내면화 됐고 그들이 스스로 시장에 직접 접근하지 않아도 더 미국화되고 더 자본 친화적인 컨텐츠들이 기존 미디어에 의해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안이 있을까

어떻게 보면 상당히 보편적 상황이다. 두달 전 볼로냐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촘스키는 “이탈리아의 모든 미디어가 미국의 미디어와 똑같은 기사를 똑같은 구조로 반영하고 있다”고 개탄한 적이 있다. 당시 이탈리아의 모든 신문 1면과 라디오 티비 뉴스는 테리 시아보 안락사 논쟁으로 넘쳐났다. 테리 시아보에 대한 안락사 허용여부를 두고 부시와 미국 법원이 충돌한 것은 뉴스가치가 있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국내 뉴스가 아닌가? 전 세계의 미디어가 미국 미디어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예다.

지금 영미계, 루퍼트 머독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지, 미디어 그룹이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CNN, FOX, MSNBC 등이 그 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국가의 미디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비판적 미디어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정치경제 현상을 비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옳지 않은 미디어를 비판하고 감시해야 한다. 지금 거대 미디어들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너무나도 큰 또 하나의 권력이 되어 있다.

물론 미디어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고 때로는 다른 미디어를 비판하기 쉽지 않을 때도 있다. 나는 이미 프랑스 미디어 감시기구를 제안한 바 있다. 이 기구를 통해 프랑스, 벨기에 등지의 시민, 독자,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미디어를 분석하고 비판하고 있다. 이 기구는 개별 언론에 속한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물론 이 내용은 비판적 미디어를 통해 유통시킬 수 있다.


베네쥬엘라 경우 민중들 스스로가 대안적 매체 만들어 내 볼리바르 혁명 와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인터넷등 기술적 진보와 민중들의 참여에 의해 참세상 같은 대안적 언론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안팎의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진보적 언론, 민중적 언론이 어떻게 진지를 구축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민중언론, 비판언론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

비판적 미디어는 특정한 정파나 정당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비판적 미디어는 무엇보다도 다른 미디어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 힘들지만 ‘저들’이 숨기고자 하는 것을 민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비판적 미디어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유럽의 젊은이들은 정당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얼마전 한국 민주노동당과의 간담회에서 '유럽 젊은이들은 정당보다는 사안 별로 활동하는 아딱 같은 운동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신은 노조와 정당 같은 조직화된 운동의 수명이 다했다고 보는가

물론 여전히 정치가 가능하려면 정당이, 노동자 운동을 위해서는 노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유럽 사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정당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정당은 신뢰성을 많이 잃었고 정당에서 일하는 것은 때로는 개인적 야심을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정당에서 활동하는 것이 예전처럼 존경받지도 진지하게 취급받지도 못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이제 정당과 노조의 시대는 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이 시민단체나 사회운동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또 이 움직임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참세상은 지난 해 11월 아딱 활동가 로베르 끄레미유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끄레미유는 아딱에 대해 ‘좌파 앙상블’이라 표현하기도 했는데 끄레미유는 '새로운 의제'가 필요할 뿐 더러 르팽 같은 극우파도 반세계화를 들먹인다며 '반세계화가 아닌 대안세계화'에 대한 과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안세계화에 대한 지속적인 접근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 우리는 반세계화를 넘어 대안세계화로 나가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에서도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세계’가 바로 대안세계화의 상이다. 처음 세계화에 저항할 때는 부정적인 면을 폭로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중요했다.

세계은행, IMF등 각종 회의가 있을때 마다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시위만 벌이고 반대만 하며 저항 할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지게 됐다. 대안세계화의 의미는 반대를 넘어 이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세계화를 거부하는 것 뿐 아니라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램이 들어 있는 것이다.


"세계화 추세는 분명히 비판에 직면해 주춤거리고 있다“


당신은 지난 2000년 외교 전문 계간지 포린 팔러시(Foreign Policy)를 통해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올리브나무와 렉서스의 저자)과 세계화에 관한 논쟁(Dueling Globalization) 을 펼친 바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세계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고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대안적 흐름이 더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세계화를 어느 정도 제어하고 있다고 판단하나

그 논쟁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지금 나의 결론은 세계화 추세는 비판에 직면해 주춤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를 주창했던 사람조차도 세계화에 대한 완전한 자신감은 잃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거만한 자신감에 처한 그 세계화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남미를 중심으로 세계화에 대한 반대운동이 물밀듯이 쏟아졌고 세계화와 연관된 국제회의가 열릴 때마다 반대시위가 벌어지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토마스 프리드먼은 세계화의 필요성에 대해 환상을 가졌던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당시 프리드먼은 “대지의 저주 받은 자들은 디즈니 월드를 가보고 싶어하지 장벽을 보길 바라지 않는다”며 세계화의 필요성을 강변했고 그 발언에 대해 나는 “1789년 파리 시민들이 빵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하고 헛소리한 마리 앙뜨와네뜨의 말에 버금가는 발언”이라 응수했다.



“오랜 시간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어느 땐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방한한 이후 한국의 여러 진보 개혁 언론과 계속 인터뷰를 했고 진보적 인사들과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느낌을 받았나

나에게는 아주 흥미진진한 경험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당대의 문제를 논의 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다. 세계화의 문제, 획일화의 위협에 처한 풍부한 문화다양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 마치 유일당 처럼 행세하는 미디어의 문제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참세상을 비롯한 여러 한국 언론들과 대화를 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얼마나 넓고 깊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자끄 데리다는 죽기 얼마전인 2004년 5월의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창간 50년 기념식에서 당신의 사설'저항'을 인용하며 “오랜 시간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어느 땐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오랜 시간과 고통은 분명해 보이지만 과연 새 세상이 열릴 것인가를 낙관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데리다가 보여준 이러한 낙관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데리다는 절친한 친구였기도 하고 존경하는 학자인데 그가 세상을 떠나기전 르몽드 디쁠로마띠끄의 50주년 행사를 함께 치를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당시 와병 중이던 데리다가 직접 와서 우리의 미디어활동과 반세계화 운동에 대해 철학적으로 지지해 줘서 고무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데리다의 그 연설은 ‘저항’에 대한 답글 같은 것이었다.

비판적 미디어 활동을 언급하며 바로 이러한 활동들이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인류의 염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희망을 가지고 내 활동을 계속 전개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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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쿼터 , 라모네 ,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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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은영 윤태곤 기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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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인

    유럽이 미국에 대한 대안이기보다 반미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점은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매우 예리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유럽이 미국보다 현재 세계화나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해 이견을 보이는 점은 높이 사나, 제국주의/식민주의의 본류는 유럽이었고, 미국은 이것을 한단계 높여 완성시켰다고 본다(이라크전에 대한 프랑스와 독일의 초기반대도 제국주의간 투쟁으로 분석하는 중동 지식인의 시각이 있다). 하지만 유럽의 좌파적 전통이 그나마 미국보다 견고한 점을 볼 때 유럽 양심세력들과의 연대는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 당대

    이냐시오 라모네 편집 주간 발언 중 한국의 스크린쿼터 사수운동 부분에 대해..

    그가 한국의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한 것은 프랑스와 한국을 동일선상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으로 오류다. 이는 당위적으로는 정당한 사고지만 문제는 한국이 프랑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영화는 굳이 허리우드 영화가 아니더라도 매우 선정적이며 충분히 폭력적이다. 이런 국산영화가 한국 고유의 문화란 미명하에 보호받아야만 할 가치가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쿼터제의 온실에서 저급한 대중 예술인들이 신흥귀족이 되는 것과 그들을 바라봐야 하는 민중들의 시선은 어떤 상관관계로 볼 것인가.

    프랑스의 자국 영화 보호정책을 예로 들려면 한국영화와 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라모네씨에게 그런 요구는 무리지만, 그의 당위적 발언은 영화에 관한 한 갑자기 '애국자 게임'을 연상시켰다.

    양질의 국내외 영화를 보장하지 않는 쿼터제는 무의미하다.

  • zz

    좀 이상한 논리군요. 제가 본 프랑스영화는 한국영화보다 더 한 것들도 있던데...한국 영화가 좀 지나친 부분이 있음은 인정합니다(주류영화들까지 좀 선정성과 폭력성이 지나침은 인정...)...하지만 스크린 쿼터제덕에 한국영화의 다양성이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근무하시는 분이 하시는 소리와 비슷하게 들려서 지나가다 한마디 쓰고 감다...

  • 당대

    한국 재벌의 자본이 민족이란 이름으로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나요. 영화를 만드는 대자본과 재벌의 자본은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죠?
    다양성에는 물론 동의합니다. 기반을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막걸리

    쿼터제보단 스크린 점유율제한이 필요할듯....

  • 당대

    스크린 점유율 제한을 업계 친구들이 받을 수 있을른지...
    그게 문제일 듯...

  • 돌멩이

    인터뷰 내용이 참 좋네요. 많이 배웠어요. 예리하면서도 폭넓은 안목으로 세계화랑 미디어 문제를 다뤄서 학습자료로 쓸만해요. 글구 주경복 편집위원장님 비디오도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