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 임금으로 가치평가 가능한가
얼마 전 주부의 일당을 65,734원으로 책정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서울 남부지방법원 이정렬 판사의 판결이 내려졌다. 이는 주부의 노동가치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 주목을 받았다. 이정렬 판사는 "주부들의 가사노동은 단순 육체 노동이 아니라 특수한 작업조건에서 일하는 특수 노동자로 봐야 한다"며 "조리와 육아 뿐 아니라 가정의 미래를 설계하고 가정 경제를 경영하는 특수한 작업조건에서 일하기 때문이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하였다.
또한 5월 18일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 등 12명의 의원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배우자의 종합소득공제에 반영'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이 법률안은 종합소득세 납세자의 배우자로서 연간 소득금액의 합계액이 100만원 이하인 자의 경우 연 1200만원을 기본공제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계경 한나라당 의원실에서는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법 체계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가치평가를 만드는 것이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물론 가사노동에 대한 새로운 가치평가 기준을 제안하고 있다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는 가사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서 시작한다. 이에 대해 양윤경 한국여성민우회 가족대안팀 활동가는 "가사노동 가치평가의 근본적인 문제는 돈으로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넘어 사회구성원들이 어떻게 가사노동을 인식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고 설명하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없이섣부른 경제적 가치로의 환산은 오히려 가사노동 가치를 평가절하하거나 왜곡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성의 노동가치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여성의 노동
또한 한국사회의 노동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남성의 노동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남성부양자모델을 기본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의 가사노동은 무임으로 여성에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여성의 가사노동은 국가의 부를 계산하는 어떤 통계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이정렬 판사의 판결의 경우 대한건설협회에서 매년 두 차례 발표하는 '건설업 임금실태 조사 보고서'의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하는 '인부노임단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이경재 의원의 개정안은 '종합소득세 납세자'를 기준으로 한다. 이는 모두 한국의 남성부양자모델의 가족형태와 노동형태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들은 "여성의 노동을 남편인 배우자에게 종속된 것으로 인식하게 함과 동시에 가사노동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현재의 편협한 인식을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성별역할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또한 핵가족 모델을 중심으로 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현실에 존재하는 가족형태에서의 가사노동은 다시 한번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가사노동은 가족의 재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가족적'인 것이 아니다. 또, 가족에 의해 수행되지도 않는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 여성이 수행하는 것이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분리하면서, 사적인 영역인 가정에 여성들을 가두고 여성의 노동은 보조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자본과 국가는 필요에 따라 여성들을 동원하거나 배제시켰다. 여성의 희생과 사랑으로 가족을 지키는 것이 숭고한 미덕인양 치켜세우면서도 정작 여성의 노동은 생산 활동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노동'에 미달한 것으로 여겼다. 이에 대해 호성희 사회진보연대 여성국장은 "노동을 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인 재생산 노동은 자본주의에서 가족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여성에게 부과되면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가사노동=여성노동, 필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
이러한 가사노동 가치의 평가절하는 여성 노동의 저임금으로 직결된다. 경제위기 이후 여성에게는 소득저하로 인해 '벌이 있는 여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이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던 여성들에게 가사노동은 물론이며 일자리를 찾아 거리로 나와야 하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주며, 여성 노동자의 비공식 부문으로의 진출을 확대 시켰다. 특히 이런 여성노동자들에게 부여되는 노동의 성격은 사회화 된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올해 4월에 여성부에서 발표한 '사회적 일자리 취업지원 교육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일자리의 종류를 "주 5일 근무, 문화·여가 생활 정착, 맞벌이 부부 보편화로 고용창출이 증가되는 교육, 보건·복지, 보육, 환경 등 사회적 서비스 분야"로 밝히고 있다. 흔히 돌봄 노동이라 일컬어지는 보육, 간병, 교육 등의 노동이다. 여성부의 이러한 방식은 돌봄 노동을 여성의 일로 성별유형화 하고 있으며, 9∼10개월 단기간의 근무기간에, 58∼68만원이라는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노동으로 제안하며 여성의 노동을 규정한다. 경제위기를 통해 나타나는 남성부양자 모델의 약화,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거대한 경제 사회적 여건의 변화는 끊임없이 여성의 노동은 시장-국가-가족의 사각지대에 놓고 끊임없이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다.
가사노동의 가치평가는 여성노동에 대한 온당한 평가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현재 남성노동자 중심의 노동가치 평가의 변화, 가족이데올로기의 강화 속에서 평가절하 되고 있는 여성노동에 대한 새로운 평가 등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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