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9일) 오전 10시30분부터 동숭동 통일문제연구소에서 가진 기자와의 만남에서 백기완 선생은 ‘부심이의 엄마생각’을 팔아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쌀 백 가마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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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은 북에 쌀을 보내면서 “집안에 쌀이 떨어진다는 것은 결코 가난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어릴 적에 쌀이 떨어지는 아픔을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백기완 선생은 쌀 백 가마가 통일문제연구소의 1년 예산과 맞먹는 큰 돈이지만 “요깐 푼돈으로 저 북쪽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안맴(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고 강조하고 “이웃의 일맘(인정)”으로 나서게 되었다고 밝혔다.
백기완 선생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 겨레 안에서 인정이 일기를 바라는 뜻에서 우리는 이 쌀 백 가마를 손수 메고, 지고, 이고 개성터거리까지만 갖다 주고자 한다"며 이삼일 안에 길을 열어줄 것을 당부했다.
정부가 북이 요청하기 전까지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백기완 선생은 "그런 사실이 있다면 정부, 몹쓸 사람들이야. 이웃에서 쌀이 떨어졌다면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우리 어머니는 저녁꺼리가 없는데도 나누어 주었다"며 "쌀이 있으면 이웃과 나눠 먹는 거지 뭔 정치적, 책략적으로 사고하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백기완 선생은 "제발 못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꼭 보내고 싶다"고 거듭 마음을 열었다.
북쪽에 쌀 백가마를 보내면서
우리는 오늘 저 북쪽에 쌀을 좀 보내기로 했습니다.
많이는 못 보내고 한 백가마를 보내고자 합니다.
돈은 저희들이 지난 삼년동안 노동자들에게 특강을 할 적마다 <부심이의 엄마생각>이란 책을 거의 어거지로 팔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두었던 것이 있었거든요.
그것을 탈탈 털었습니다. 어머니에 관한 책값이니 어머니한테 되돌려 드리는 셈입니다.
저는 쌀이 떨어지는 아픔을 눈물 나게 겪어본 사람입니다.
또 집안에 쌀이 떨어진다는 것은 결코 가난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댓살 적 저녁밥은 아니 지으시고 맹물만 끓이시기에 밥 좀하라고 앙앙 울었더니 어머니 말씀이었습니다.
“부심아(백기완의 어릴 적 덧이름), 이참은 우리만 밥을 못하는 것이 아니구나. 밥 못하는 집이 많아. 이러한 때 제 배지만 부르고 제등만 따스고자 하면 너 키가 안 커. 너 어서 어른이 되고 싶질 않어. 그러니 배고픈 것쯤은 참아야 돼.”
‘뭐, 제 배지만 부르고자 하면 키가 안 큰다고.’
겁이 더럭 나 윗목에서 쿨쩍이는데 어머니께서도 나를 안고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안타깝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우리 쌀독에 남은 좁쌀 한 옴큼을 박박 마저 긁어 갖고는 이웃으로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날 우리 집에선 밥은 없고 다만 콩국 한 사발과 상추쌈으로 끼니를 때웠더랬지요. 어찌나 속이 쓰리던지….
그때가 떠오르자마자 그저 울컥. 그래서 이렇게 나선 것입니다.
쌀 백 가마, 우리 팍내(부부)로 보면 백년을 먹을 낟알이요, 우리 연구소로 보면 한해 예산에 맞먹습니다만 요깐 푼돈으로 저 북쪽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안맴(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이러질 않고선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웃의 일맘(인정)은 그 어떤 깨우침보다도 더 맑고 그 어떤 목숨보다 더 세다는 말이 있질 않습니까.
그런데 이웃이 아닌 것들의 쌀이 어찌 인정이겠습니까. 아니라고 여겨지고 무엇보다 먼저 우리겨레 안에서 인정이 일기를 바라는 뜻에서 우리는 이 쌀 백가마를 손수 메고, 지고, 이고 개성터거리까지만 갖다 주고자 합니다.
길만 열리면 이삼일 안에 가져가고 싶으니 이 눈물겨운 발길을 막지 말기를 바랍니다.
2008년 5월 19일
통일문제연구소 대표 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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