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한국 최초의 노동절(2)

경계 엄중한 노동절...동아일보 1923년 5월 2일자



경계 엄중한 노동절

시내 각 경찰서 연락하여
경계를 엄중히 하던 어제

어제는 본보에 이미 보도한 만국 노동자의 축제일이라 경성에서도 노동연맹회 주최로 대략 1만명의 공장직공이 시내 장충단에 모여 시위 행렬을 하고저하다가 경찰당국의 금지를 당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은 장춘단에 모여 시위운동을 한다는 정보가 있어서 신경이 과민한 경찰당국에서는 무슨 큰 사변이나 일어나지 아니할가하야 시내 각 경찰서에서는 서로 연락을 하야 가지고 시내를 엄중히 경계하였는데 특별히 본청 경찰서에서는 아침부터 정복순사와 사복경관을 다수 장춘단에 파견하야 공원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일일히 조사하는 등 그 경계가 매우 엄중하였으며 종로서에서는 노동연맹회 주최의 '메이데이' 기념강연 선전지 수백장과 또는 동경 척후사 발행의 척후호외 사백오십장을 압수하는 동시에 노동연맹회 간부를 동서로 불러서 주의를 시켰으며 동대문서에서도 척후호회 륙백장을 압수하엿는대 이로 인하야 작일 경성의 공기는 돌연히 무삼중대사변이나 돌발한듯이 매우 긴장하였더라.

직공 다수 휴업

어제 시내 여러가지 직공
대부분이 휴업하고 기념해

어제가 노동제일임은 본보에도 누차 소개하야 일반이 다아는 바이며 따라서 경찰당국에서는 어떠한 형식으로 시내 각처를 어떻게 경계하얏다 함도 별항에 소개한 바와 같거니와 특히 어제 일과 관계가 깊은 노동자들은 처음 계획대로 시위행렬을 못 할지라도 그 날을 정성껏 기념하기 위하야 각각 하던 일을 하루동안 쉬려하얏다.

그래서 시내 각처에 있는 여러 직공 중에서도 양화직공들이 가장 많이 쉬었는데 양화직공으로만 조직된 시내 안동 네거리 실비제화소와 인사동 양화직공조합 직업부에서는 전부 휴업하얏고 기타 세창양화점과 여러 양화점에서도 혹은 오륙명씩 혹은 삼사명씩 휴업하얏으며 인쇄직공으로는 신생활사 인쇄부에서 전부 휴업하고 반도고무제조소의 직공들도 전부 휴업하얏다하며 양복징공들도 휴업한 사람이 많은데 그 중 '서울' 양복점에서는 대부분이 휴업하얐다하며 이밖에도 시내 각 공장 제조소 등에서 혹은 여럿이 단체로 혹은 개인으로 한 사람이 다수 하얐다더라.



[제호] 동아일보
[발행년월일] 1923년 05월 02일
[기사제목] 경계엄중한 노동절
[기획] nescrum(blog.jinbo.net/neoscrum)

태그

노동절 ,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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