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성추행 가해자, 솜방망이 처벌 논란

“재판부도, 검찰관도 모두 가해자 편이었다”

해병대에서 부하를 네 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던 오 모 대령이 법정 최저형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아 논란이 예상된다.

해병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심판관 정진립 준장, 군판사 신동욱 중령, 군판사 양시효 대위)은 30일 운전병을 상대로 4회에 걸쳐 성추행을 한 오 모 대령에 대해, 네 차례 성추행 중 단 한 건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하고 법정 최저형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총 네 차례에 걸친 추행사실 중 1차, 2차 추행과 관련해 “사건 범행 시간과 범행에 소요된 시간, 피해 장소 중 하나에 대한 피해자 진술이 사실과 다르다”며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피해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유일하게 유죄를 인정한 3차 추행과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가해자가 2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공탁한 점과 가해 당시 음주 상태였다는 점을 들어 양형을 감경했다.

“민간재판이었다면 최소한 3~4년형은 나왔을 사건”

이에 피해자 가족들과 변호인은 기자회견을 30일 열고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피해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의 장애로 4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있고 정신과 전문의가 외상 후 스트레스의 원인인 성폭력 사건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였음에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들어 피해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소속 김인숙 변호사도 “성폭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일관성과 세부적 진술묘사인데 피해자 진술 내용은 읽어보면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상당히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며 “그럼에도 재판부는 통화기록이나 시간 등 사건 자체와 관계없는 그 후의 진술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부당하며, 이는 재판부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인권위가 이 사건과 관련해 지난 7월 발표한 자체조사 결정문에서도 “피진정인이 강제추행 행위를 부인하고 있으나 피진정인의 진술에 비하여 피해자의 진술은 경험칙 상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사실이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최초 피해자로부터 피해사실을 전해들은 상사 등의 증언과 이후 피해자 위원회가 제출한 사건경위서 및 위원회 조사관의 대면조사보고서 등에 나타나는 일관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의 진술이 상당 부분 진실에 부합된다고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 진술서와 문답서는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군사법원은 12월 7일 7차 공판에서 “인권위 조사 시 피진정인이 피고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점과 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의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증명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 측은 재판부가 양형을 감경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법원이 음주 사실을 이유로 만연히 심신미약 감경을 적용해 최근 음주와 같이 ‘본인 책임 있는 심신미약’의 경우 아예 감경 양형인자에서 삭제한 바 있고, 군대 내에서 엄격한 위계 및 명령복종 관계에서 발생한 이 사건의 경우에는 더욱더 심신미약 감경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며, 3차 추행의 경우 피해자를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 추행하는 등 아주 죄질이 나쁨에도 법정 최저형을 선고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인숙 변호사는 “같은 사건을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재판에서 다뤘다면 재판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피해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고 담당 주치의에 따르면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한 상태라 단순 강제추행이 아닌 강제추행치상으로 볼 수 있다”며 “치상의 경우 최소한 3~4년형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피해자 가족들은 “즉각 항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관이 항소를 할지는 의문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검찰관이 항소 의지가 없으며 실제로 재판이 끝나고 검찰관에게 항소를 해달라고 사정했으나 아무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누가 피해자 가족을 군대 혐오자로 만들었나

이날 기자회견 내내 피해자 가족들은 한목소리로 재판 전 과정을 비판할 정도로 군내 사법체계 전반에 대해 깊은 불신과 회의감을 드러냈다.

피해자의 이모인 황 모 씨는 “피해자를 보호하는 대신 피해자의 말을 묵살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집단 가족사기단처럼 몰아가는 재판부를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며 “이런 현실이 비통하다. 모든 가족을 데리고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이모부 안 모 씨도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군대에 아이들을 왜 보내야 하느냐. 우리나라 군대를 없애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재판부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 피해자 가족들이 이런 한결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상식적인 군대 사법체계 때문이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심판관이 법조인이 아닌 일반 군인으로 전문성이 없을뿐더러 심지어 피고의 상관이라 재판을 하게 되면 중립성을 전혀 담보하지 못하고 온정주의적 진행과 판결을 할 수밖에 없다”며 “실제로 피고 측과 히히덕대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재판부뿐 아니라 검찰관조차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검찰관의 역할인데 검찰관이 먼저 피해자를 찾는 통상적인 일도 이뤄지지 않고 오히려 가족들이 만나자 해도 피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네 차례의 성추행 중 네 번째 건에 대해서는 검찰관이 기소조차 하지 않았고, 재판 과정에서는 피고의 부인을 직접 증인으로 불러내 피고가 무죄라는 발언을 유도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일들이 계속 있었다”며 “검찰관이 윗선에서 압력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덕분에 피해자 측이 검찰관에 항소를 ‘구걸’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김인숙 변호사는 “오늘도 재판 끝나고 피해자 측 변호사가 검찰관을 만나 ‘사실인정과 양형부당점을 들어서 항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항소를 부탁하고 왔다”며 “경험에 비춰보면 의당 항소해야 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검찰관이 항소 안 할까봐 피해자가 전전긍긍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당한 판결이 절실하다는 것이 피해자 측 입장이다.

임태훈 소장은 “군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항상 이 사건의 경과를 물어볼 정도로 이 사건이 군내 성폭력 문제의 리트머스로 작동하고 있다”며 “그런데 이런 식으로 공소 두 개가 무죄로 판결나고 하나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 피해자들이 불이익 받을까봐 자기검열하게 되고 결국 제기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군인권센터 측은 검찰관이 이후 항소하지 않을 경우 검찰관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임 소장은 “검찰관이 만약 항소하지 않으면 담당 검찰관을 직무유기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인권센터는 이 사건과 관련한 민사소송도 준비 중이다.

앞서 지난 7월 피해자 이 모 상병은 오 모 대령은 네 차례에 걸쳐 피해자를 차량 뒷좌석으로 끌고가 입을 맞추고 바지를 벗겨 유사 성행위를 강요했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이에 인권위는 “피진정인의 행위가 ‘헌법’ 제10조 및 제12조에서 보장하는 피해자의 인격권, 성적 자기결정권 및 신체의 안전을 각 침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진정을 받아들여 “해군참모총장에게 피진정인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하여 수사할 것을 의뢰”함과 동시에 “해병대사령관에게 피해자에 대한 치료 및 보직조정 등 적절한 신변보호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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