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도, 집도 없는 ‘우울한 청춘’들에게 고함

[한국사회포럼2011] 청년의 자유로운 연대를 위한 ‘소셜네트워크’

불안하고 우울하다. 비주류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에 뭔가 시도해 보다가, 잘 안 돼서 ‘우울’하다. 내 삶은 ‘불안’ 아니면 ‘우울’로 점철돼 있다. 그에 비해 저 바깥세상은 지나치게 눈부시다.

이물감이 느껴진다. 히키코모리가 되고 싶지만, 부모님의 그 한심한 듯한 눈빛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고작 퀴퀴하고 냄새나는 반지하방에 살면서 집주인에게 다달이 30만원씩 뜯기는 친구를 보면 독립, 그것도 못할 짓이지 싶다. 젊음의 낭만? 그런 단어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20세기 전시코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 사이다 없이 삶은 계란 여섯 개쯤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는 것처럼 메마르고 버거운 삶이다. 언제부터 청년들의 삶이 이리도 ‘퍽퍽’해졌을까. 우리는 왜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할까.

18일 서강대에서 이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이 열렸다. 한국사회포럼에서 ‘불안과 방황을 넘어선 청년들의 자유로운 연대를 위한 청년의 소셜네트워크’를 주제로 한 분과토론이 진행된 것. 문화연대와 문화사회연구소가 주최한 이 토론회에서는 청년들 개개인이 겪고 있는 이 불안과 우울의 원인을 추적하고,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임을 확인했다.


뿌리박고 살 공간도, 뿌리내릴 한 사람의 마음도 없다

에세이스트 김현진 씨는 “20대의 연애가 ‘치킨게임’ 같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된 배경으로 지금의 20대가 칼라텔레비전, 인터넷 등 각종 매체의 자극적 광고에 노출되면서 자란 ‘소비세대’임에 주목했다.

“20대는 ‘살아있는 것=소비’일 정도로 소비와 생존을 동시에 의식하는 세대다. 옛날에는 돈이 세상의 전부 아니라는 중용의 미덕이라도 있었지만 지금 20대들에게는 돈 안 쓰는 게 찌질한 것이고 소비가 미덕, 진정 ‘쿨’한 거다. 이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행복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입받았다. 지금 20대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돈 쓰는 세대, 숨 쉬듯 소비한 첫 세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도 하나의 상품처럼 여기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연애는 하나의 거래가 된다.

“내 주변에도 ‘철벽녀’ 친구들이 많다. 이야기 해 보면, 하나같이 눈이 높다. 그리고 계속 스스로 값을 매긴다. 이 ‘값’에 얘랑 사귀어도 되는지, 이 가격에 ‘거래’를 성사시켜도 되는지. 본인이 갖고 있고, 초기자본으로 자기한테 투자한 게 있으니까 손해 보기 싫은 거다. 그게 무서워서 결국 연애를 안 한다. 그래서 연애가 옛날처럼 잘 안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나영 지구지역행동 활동가는 청년들이 처한 현실적 문제들이 연애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많은 20대들은 현실적 문제들에 굉장히 많이 지쳐있다. 현실적 상황에서 연애보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의 문제에 더 많이 부딪치고 있는 거다. 교육시장에서의 경쟁 이데올로기, 자기 관심보다 시장에서 더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 그러면서 꿈을 실현하는 것보다는 좋은 학벌을 얻고 먹고 살 수 있는 일자리를 선택하기 위해 애쓴다. 현실적으로 자기가 겪고 있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과제로 닥쳐있는 현재, 꿈의 실현 무상해진 현실에서 연애도 밀접한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청년들이 처해있는 현실의 문제에서 주거의 문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나영 활동가는 “2006년에 독립해 지금까지 신림동, 합정동, 망원동, 성산동 일대를 전전하고 불과 4년 만에 지불해야 하는 월세는 20만원에서 40만원으로 두 배가 됐다”며 청년들이 겪고 있는 주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청년들은 일자리도, 사회적 관계도 불안정하다. 기댈 수 있는 지역공동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1인 가구 생활자들은 이사를 많이 다녀서 지역에 정체성이 없고 지역공동체로부터 고립돼 있다. 최근 고인이 된 최도은 작가의 이야기 듣고 많은 청년들이 같은 위기감, 동질감 느끼면서 슬펐을 거다. 나 역시 파트너가 없고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지역에도, 연인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쓸쓸한 밤, 페이스북은 청년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을까.

소셜네트워크, 새로운 연대의 장이 될 수 있을까

베를린로그 운영자인 강정수 씨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가진 새로운 소통 가능성에 주목했다.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기존의 포털은 언론처럼 아젠더 세팅 능력을 그들이 갖고 있다. 첫 화면에 나오지 않으면 널리 알려질 기회가 없다. 반면 페이스북은 포털이지만 첫 페이지가 없다. 자신의 팬을 만들어내고 소통하는 대상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원점에서부터 주고 있다.”


소셜네트워크, 그중에서도 페이스북은 가까운 친구가 추천하면 믿고 보게 되는 링크의 신뢰도를 바탕으로 한 빠른 확산력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데이터 중에 무엇이 확산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강정수 씨는 ‘네트워크의 비선형적 구조’ 때문에 이를 어떤 이론으로도 분석할 수는 없지만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할 수는 있다고 말한다.

“지난 총선 때 투표 인증샷이 인기를 끌었다. 조직적이지 않았다. 누군가 문득 제안한 것이 공감하면서 전파됐다. 다음 선거 때도 아마 수백만의 제안이 나올 거고 그중 하나가 물결처럼 퍼져나갈 거다. 참여자들은 언제나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 전제조건은 공감이다. 공명과 공감을 얻는 순간 네트워크는 요동치는 물결과 같다.”

그리고 그 공감의 순간은, 가까운 한 사람과 대화하듯 할 때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공감의 순간은 여친과 대화할 때, 친구 한 명과 대화할 때 쉽게 만날 수 있다. 운동권들은 항상 한마디를 할 때도 ‘-천만 국민’ ‘-백만 학생’ ‘-십만 조합원’들을 생각하며 이야기한다. 그러면 공감을 얻기 힘들다. 2천만 명과 대화하더라도 가장 가까운 친구 한명과 대화하듯 해야 한다. 그렇게 대화하는 한 명이 수백, 수천, 수만이 될 수 있다.”

이날 토론자들은 소셜네트워크가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 있는 매체라는 데에는 대부분 공감했다. 하지만 개인의 일상적 정보가 쉽게 드러나는 데 대한 우려, 기존의 지역공동체, 가족공동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은 것처럼 보였다. 토론자로 참여한 맹기돈 도시연대 활동가는 “참여자들이 행동할 준비 돼 있다고 나왔는데 과연 그러한가 의문이 든다. 그리고 매체가 진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해서 담기는 내용도 진보적일 거라 믿는 것은 너무 낙관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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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아니고소외라닌까

    참 보기드문 토론입니다. 그런데 주제 선정에 있어서 못마땅함. 그이유 우울증(임상병리학자외 쓰면 안되는 용어)표현보다는 소외(맑스는 자본주의내 대다수 노동자가 소외 때문에 자살하고 죽음)의 표현이 적절하다. 그런데 여전히 각언론 ~가 자살한 이유 우울증이라고 거짓말한다. 뭔귀신씨나락까먹는 우울증인가 소외지 소외 때문에 자살한다.

  • z

    그래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혁명을 일으킬거라고?ㅋ 맨밑에 맹기돈 씨 이야기가 핵심이군요. 그 위는 들을게 없어 ㅋ 쁘띠부르주아들의 한가한 이야기들뿐.. 마치 교수들처럼..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