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텐트촌에서 부둥켜 안은 두 형제 이야기(1)

[정리해고이제끝내자] 인터뷰_김일섭 전 대우자동차노조 위원장

[편집자 주] 지난해를 뜨겁게 달군 화두 중 하나는 희망버스였다. 한진중공업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들며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그 자신이 정리해고자이기도 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011년 1월 6일부터 85호 크레인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경제위기와 노동운동의 위기 속에 ‘정리해고 철회’ 요구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합해 희망버스로 이어졌다. 부산 영도를 뜨겁게 달군 희망버스는 그렇게 정리해고를 사회의 화두로 만들었다.

하지만 정리해고는 비단 한진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2009년 77일간 공장점거 파업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쌍용차는 노조와 약속한 합의사항을 끝내 지키지 않았다. 그리고 ‘해고는 살인’ 이라는 말이 현실로 드러났다. 정리해고의 상처는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 19명은 목숨을 앗아갔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난 12월 7일부터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서 희망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영도를 달군 희망버스는 23, 24일 평택 쌍용차 공장을 희망텐트로 이어졌다.

눈보라 속에도 연대의 발길을 한 인파 가운데 두 남자가 부둥켜안고 있었다. 김남섭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과 김일섭 전 대우자동차노조 위원장 형제였다. 가슴 아픈 정리해고의 기억과 연대의 눈물이 뒤엉켰다. 2001년과 2009년, 8년을 사이에 두고 형제는 정리해고와 맞닥뜨려 싸움을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정리해고는 민주당, 한나라당 정권과 무방하게 이어졌다.

<참세상>은 2012년에도 노동자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정리해고’를 다시 되짚어보고자 한다. 2011년 12월 29일 김남섭 사무국장을 평택 희망텐트촌에서, 30일 부평 GM공장 인근에서 김일섭 전 위원장을 만났다.


  2002년 당시 김일섭 위원장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001년 2월 1751명의 대우자동차 노동자에 대한 집단적 정리해고 통보에 대우차노조는 총파업을 진행했다. 그 해 4월 김대중 정권이 공권력으로 해고자들의 공장 출입을 막고 나섰다. 당시 김일섭 위원장은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부평공장 근처 산곡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는 2002년 2월 5일 자진출두 후 수감됐고, 그해 4월 GM과 특별단체교섭 체결했다.

30일 오후 5시경 부평 공장 부근에서 김일섭 전 위원장을 만났다. 애초 인터뷰 요청에 그는 뭐 이야기 할게 있겠냐고 답했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잊는게 아니라, 다시 기억해야 한다고 말을 건넸고 흔쾌히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는 2009년 쌍용차 공장점거 투쟁 당시 금속노조 부위원장으로 얼마간 점거 투쟁을 같이 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금속노조 부위원장이라서, 동생이 정리해고 명단에도 없었는데 투쟁한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더라. 그런데 투쟁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그건 조합원들에 대해 거짓말 하는 거니까. 나는 현장에서 너무 편하게 일하고 있는데, 동생은 추운 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게 너무 미안해서 희망텐트 포위의 날(23일)에 술을 잔뜩 마셨다. 절로 눈물이 나더라”고 말을 이었다.

그는 대우차 정리해고와 쌍용차 정리해고는 다를 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노동시간 유연화다. 비정규직 들어와 인력 필요할 때만 쓰고, 내쫒고 이런 게 핵심이다. 그걸 핵심적으로 지도 받은 것이 김대중 정권이었다. 나는 꼼수다만 하더라도 정봉주 전 의원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민주당이 이래서 미안합니다’라고 하는데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죄를 진 것인데 너무 소홀하게 얘기 되고 있다. 그걸 다 덮어두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들이 자기들과 함께 일하고 싸웠던 당사자들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진출시키고 그 역할을 맡길 건지 통로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이 유일한 통로인 것처럼 이야기 됐다. 정치는 다양성이면서 누구든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도 배타적 지지 늘 고수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잇는 세력과의 통합에 대한 의견을 묻자 단호하게 이야기 한 것이다.

아울러서 그는 “일차적으로는 좀 더 우리가 뭉칠 수 있고 힘을 모을 수 있는 단위들이 굳이 꼽아보지 않더라도 나와 있다. 이들에 대한 정책적 내용들 다 좋은데, 그렇게 친 자본주의적 형태 아니고 반자본주의적 형태라면 노동자에게 희망 줄 수 있는 진영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같이 할 수 있는 단위 힘 모으면 이걸 기점으로 민노당, 국참당 통합에 분명한 선을 긋고 몰아갈 수 있는 기회”라며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합에 비판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노동자 정치 세력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나눈 이야기에서 “단위 노조 간부이건, 금속노조 간부이건 임기를 마치면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더 편안한 곳에 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있던 곳으로, 더 궃은 곳으로 가려고 해야 한다. 조합원들과 함께 호흡해야만 한다”고 강조한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았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2009년 쌍용차 투쟁 당시 금속 부위원장이었다. 2001년 대우차 투쟁할 때랑 비교해서 이야기를 해달라.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대우차 정리해고 투쟁 당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나

판박이였다. 권력과 자본의 문제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자신들이 손해 안보고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공적자금 받아 공장 돌리고 정리해고 하는 것까지 똑같았다.

(2000년) 10월 15일부터 위원장에 당선돼 집행 시작했다. 위원장 집행하면서부터 정부는 대우그룹 계열사를 정리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쌍용차에 대한 검찰조사가 진행중인데도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 때문에 수사를 발표하지 않았다. 인도 자본에 넘기기 전까지 구조조정, 정리해고 단행했다. 결국 이명박 정권이 철저하게 보호막을 치면서 힘을 보탰던 과정이었다.

대우차도 GM에 매각하기 전에 포드가 인수하려고 했었다. 그러다 포드사가 철회하고 GM으로 인수 대상이 결정됐다. 16대 집행부가 포드사와 고용보장을 약속했었는데 인수 포기하고 돌아갔다. 1차 인수대상으로 포드 선정됐음에도 GM이 사무실 철수하지 않고 서울에 있었다. 정확한 것은 확인되지 않으나 포드와의 합작이 있지 않았겠나. 기업 운영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파헤쳐서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보다 당시 정부는 노동시장을 유연화 시키겠다는 것이 핵심 목표였다.

이미 구조조정이 우리에게 올 것이고 정리해고가 예견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주파들이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우리 예측이 맞았다. 문제는 조합원들 제대로 조직하지 못한 전 집행부 오류였다. 우리 집행부 아무리 얘기하더라도 그걸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과정이 있었다.

정리해고 하기 전부터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얘들이 공장 멈춰있어서 부평공장은 올 스톱이었다. 지침은 창원공장까지 내렸다. 군산, 부평, 창원 할 것 없이 지침은 내렸는데 회사측은 부평에서만 정리해고 인원을 뽑아냈다. 지부장들이 반발하지 않고 동의해 준 것도 다행이었다.


노동운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대우조선에 입사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형님하고 충주직업훈련소에 갔다. 당시 중동 파견이 많아서 거기 가려고 했었다. 용접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용접을 배웠는데 중동은 이미 다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거제의 대우조선에 들어갔다. 고참들이 생소한 용어를 써 가면서 심부름을 시켰다. 쐐기, 철사 반생 가져오라 하는데 못 알아들으니 바로 뭐라도 날아오는 분위기였다. 내가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월차도 잘 못 냈다. 당시 중이염이 지독해서 귀에서 고름이 많이 났다. 잘 안 들려서 병원 간다고 했는데 총기장이 바쁜데 어디 가냐고 귀싸대기를 때리더라. 야, 이게 사람 삶이 아니구나하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플랜트에서 조선 사업부로 쫓겨났다.

당시 공정을 빨리 단축하기 위해 도정하고 용접을 같이했다. 작업 거부하고 감독자들하고 싸우고 그랬다. 그 때, 현장 본관 쪽에 무슨 일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밥 먹고 쉬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더라. 대우조선 87년 노동자대투쟁 시작이었다. 나는 당시 경비들 내 쫓고 규찰했다. 규찰대들이 현장 통제 다 하고, 노래 선동도 했다. 그러다가 그 쪽 경기가 안 좋아 500명 대우차로 뽑는다고 해서 올라왔다.

쌍차 77일 투쟁 후 합의사항 지켜지지 않았는데

한상균 지부장이 나중에 나오면 얘기 더 할 수 있겠지만... 경험자로서 한 지부장한테 얘기했다.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누구보다도 지부장이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을 것이라고. 이렇게 할 수도, 저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에 대한 경험이 있으니까 내 생각을 하고 반드시 전화하라고... 왜 그러냐면 너무 쉽게 생각하고, 판단 오류가 있을 수 있어서 후회한들 그 순간 지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공권력이 도장공장 내려오고 아우성치고 컨테이너박스 내리면서 뛰어내리는 걸 밖에서 목도 했다.

합의라고 하는 것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는지, 공장 쥐고 있을 때야 가능한 것이다. 합의서는 종잇장에 불과했다. 우리가 힘이 있을 때 지켜지는 것이다. 합의서 만들기 전에 월등히 좋은 조건으로 합의서 할 수 있을 텐데 왜 쫒기듯 한지...혼자라도 도장공장에서 최후 맞이하겠다는 조합원과의 약속 지키라고... 식량도 물도 그 정도 있었으면 한 달 이상 더 버틸 수 있는 부분 있었는데 왜 나왔는지 답답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판단 할 수밖에 없던 그 상황도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이 고립되고 공권력이 무자비하게 달려들 때 외로운 결단 할 수밖에 없다. 대우차 마지막 공권력으로 물러날 때도 많은 후회가 있었다. 그 책임을 나에게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대우차 투쟁 당시) 전술단들이 전술을 짰다. 도장부를 뚫고 사무직들을 안에 배치하고 도시락 제공하면서 점거할까 싶어서 사람을 안에서 인해전술 형식으로 막았었다.

그거 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걸 뚫고 공장만 점거했으면 그렇게 쉽게 침탈 안 당했을 텐데... 정문 들어오는 공권력 경찰들 거리 있는데 그 벽을 뚫고 들어가기 직전에 연행 할 것이라고 판단해서 벽 안 뚫었다는데... 이렇게 저렇게 쫒겨 나는게 뭐가 다르겠나. 시도는 해볼 수 있었던 것 아니냐하는 후회 있어서 한 지부장한테 마지막 결단 얘기해달라고 했었다.

평택 쌍용차 공장 앞에 희망텐트도 치고, 다시 투쟁이 시작됐다. 지난 23일 희망텐트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애초부터 쌍차 투쟁이 정리해고, 무급휴직 된 사람 똘똘 뭉칠 거라는 생각 안했다. 늘 싸움이 시작은 장대하나 결과나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다. 대우차 투쟁 때도 외부로부터 이런저런 지원 많이 받았다. 쌀 지원도 무상으로 1인당 20kg씩 받았다. 1750명 중에 800명이 (산곡동성당에) 와서 받아갔다. 성당에 정리해고 투쟁 대오가 400명이었다. 사실은 열심히 할 때가 400명이고, 안 좋은 때는 150명도 안됐다. 그나마도 열심히 싸웠던 동지들 있어 복직했던 거다.

쌍차 투쟁도 인원수의 문제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의 문제다. 그들만이 아닌 한진중공업이라는 좋은 선례 있고, 다시 희망버스라고 해서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나. 계속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그 틈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그 만큼 쌍차 동지들이 소수지만 열심히 싸웠던 동지, 연대투쟁을 만들어가는 단위도 관심 갖고 참여할 것이다.

결국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이 정권 내에서 싸움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라는 측면도 있지만,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여러분이 국가유공자, 독립투사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정권 내라도 돌파구는 분명하게 열어놓아야 한다. 투쟁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불씨가 꺼지지 않았으면 하고 조합원들은 생각할 것이다. 회사 앞잡이 어용들은 민주노총 탈퇴하며 독자적으로 가고 있는데, 그들의 설 자리 없어 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시 공장에 들어가는 거다.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자고 하는데 일만하면 되는거냐. 자본주의 안에서 그 탄압을 온 몸으로 받았으면 공장에서 돌아가서 뭘 할꺼냐하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 GM도 그렇다. GM 자본 떠나면 과연 이 공장을 누가 책임 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쌍용차의 경우 점거 파업 이후 이런저런 이유로 가족들까지 정신적 상처를 많이 받았다. 대우차 정리해고 투쟁 당시에는 어땠나

큰 애가 초등하교 4학년 됐나 그 때 자기 동생을 밥해서 밥 먹이면서 주방 일을 맡고 그랬다. 애들이 당시 초등학생이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게, 노동가를 나름 기억하고 있더라. 철의 노동자 부르는데 ‘너와나 너와나 철의노동자’인데, 자기는 ‘누나야 누나야 철의노동자’라고 노래하더라. 텔레비전에 노동자 투쟁하는 장면이 나오면 팔뚝질하면 같이 따라하고... 그런 모습 보면 좋게 바라보지 못하고 가슴이 씁쓸했다.

동생 보기에, 미안한 마음 드신다고 했는데, 그거 말고 바라시는 점이 있나

어차피 자기가 선택하고 결단 내린 것이다. 조합원들 앞에서 늘 의연한 모습 속에 지도부 역할 다 하기를 바란다. 그 전 집행부, 집행부 일원은 아니었지만 좌파 진영이라고 하는 동지들 많이 있었는데 실망한 얘기 많이 들었다. 형한테도 실망했기 때문에. 거울로 비춰 자신이 더 열심히 하면 될 것이라고 본다. 형제들이 동생을 바라볼 때 애도 셋인데 마누라까지 나서서 저럴 정신이 있냐없냐 말한다. 그럴 때 저는 동생을 변론하고 나선다. 한편으로는 막내동생이니까...

어릴 때 아장아장 걸었던 애인데 사회 나와서 자본주의 시대에 고생하며 싸우는 게 안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당당히 나서서 형처럼 싸우는 것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아버지 피를 받아서 그런가보다. 아버지도 빨치산 활동을 했다고 한다. 대견하면서도 꼭 이 싸움이 좋은 승리로 결론 나면 동생도 떳떳하고 형으로서 형제들한테 떳떳하고 이런 꿈을 꾸어 본다.

정리해고법 통과가 김대중 정권 시절 진행됐다. 이후 정리해고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 말씀 하셨지만 정리해고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다 이명박 때문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통합진보당, 민주통합당이 진보를 자처하고 나서고 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의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시간 유연화다. 비정규직 들어와 인력 필요할 때만 쓰고, 내쫒고 이런 게 핵심이다. 그걸 핵심적으로 지도 받은 것이 김대중 정권이었다. 장관급들 모아놓고 헤지펀드의 대가인 소로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더라. 그게 김대중이었다.

한국이 IMF 위기 극복 하려면 노동시간 유연화 시켜야 하고, 제도적 완화하고, 노동자들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유연화 정책 도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업이 어려워서라기보다 재고용형식으로 비정규직 도입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들이 그런 행위를 했음에도 그들은 자기 정권 유지하기 위해 가진 자들과 대결을 피했다. 가진 자의 목소리를 제도화했다. 민중의 편에 서서 낮은 자세에서 정치활동 하던 자들이 용인하고 이와 함께 하는 것은 더 괘씸하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꼼수다만 하더라도 정봉주 전 의원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민주당이 이래서 미안합니다‘라고 하는데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죄를 진 것인데 너무 소홀하게 얘기 되고 있다. 그걸 다 덮어두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내년 총선, 대선이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 어떻게 해야 하나. 정리해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 얘기를 하면 뜻이 있냐고 우리의 생각과 달리 각색된다. 그럼에도 피할래야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장 근본적 문제는 노동자들이 자기들과 함께 일하고 싸웠던 당사자들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진출시키고 그 역할을 맡길 건지 통로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이 유일한 통로인 것처럼 이야기 됐다. 정치는 다양성이면서 누구든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도 배타적 지지 늘 고수하는 것도 문제다.

일차적으로는 좀 더 우리가 뭉칠 수 있고 힘을 모을 수 있는 단위들이 굳이 꼽아보지 않더라도 나와 있다. 이들에 대한 정책적 내용들 다 좋은데, 그렇게 친 자본주의적 형태 아니고 반자본주의적 형태라면 노동자에게 희망 줄 수 있는 진영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노동자들 바라볼 때 내가 아는 사람들 쭉 나열해보면, 저 사람도 현장활동 잘하고, 이 사람도 잘하는데 정치적으로 진영들이 너무 다르다. 각자 만나면 자기들이 최고가 되고, 은근히 자기들하고 같이 했으면 한다. 같이 할 수 있는 단위 힘 모으면 이걸 기점으로 민노당, 국참당 통합에 분명한 선을 긋고 몰아갈 수 있는 기회다. 기회 놓치고 있고, 저기보다는 낫다, 왜 이걸 주장 안 하냐 이렇게만 얘기하고 있다.

2012년에 꼭 이뤄졌으면 하는 것, 꼭 이렇게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이야기 해달라

당장, 한진중공업 합의서는 내부적 힘이 있어야 지켜진다고 본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갖은 고생 다 해서 모자란 대로 합의서라고 만들었는데 그 마저 지켜내는 것도 걱정스럽다. 그래도 노동자들이 투쟁 하는 조직이라는 것 일정정도 확인돼 다행스럽다.

이어서 쌍차 투쟁이 내년에는 승리의 기점으로 전화돼 반드시 승리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부적으로는 굴절 돼 있는 정리해고 반대투쟁, 해외매각 반대 투쟁 바로 잡고 그 안에서 대안 찾을 수 있는 모태를 빨리 만들 필요가 있다. (현장에서는) 조합원 교육 통해 GM외국자본이 삼켰지만, 국내든 외국자본이든 같다. 내부 질서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내년 총선이 예고 돼 있는데 거기에 (지엠) 노동조합의 입장이 국참당과 통합한 민주노동당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지부장 입장이다. 그게 현장조직, 노동자 입장이어야 하는데 그걸 만들어내고 그걸 기틀로 진보적 정치집단의 힘을 길러낼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일조할 수 있다면 해야 하는 건데 워낙 우리의 힘이 보여지지 못하고, 내부조차도 각각 떨어져 있다. 정치투쟁 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진지한 토론과 내용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천용길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휴ㅡㅡ

    더러운놈들이 세상살이 참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살기 참힘들죠...두형제 모두 힘내시고요... 조국은 전쟁이 목전에 있습니다 부디 몸간수 잘하시기를 . . .

  • 봉희

    건강 챙기시고 몸은 좀 나은겨 얼굴은 좋아보이는데
    술 좀 줄이고

  • 형제는 용감하다.

    형제분의 결기가 돋보입니다.
    간강하시고 늘 행복한 나날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