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들에게 가난 권하는 사회

[인권오름] 비정부기구 활동가 처우개선과 민주주의는 함께 간다

부국과 빈국을 막론하고 비정부기구에서 활동하는 상근자들이 경제적 곤궁에 허덕일 것이라는 시각은 도처에 팽배하다. 하지만 비정부기구 활동가들 사이 연봉 차이가 남반구와 북반구의 격차만큼 현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로라하는 인권단체 국제엠네스티에서 2011년 2월 이후 잡음이 심심치 않게 울려 퍼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10년 가까이 국제엠네스티에서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방글라데시계 영국인 아이린 칸(Irene Khan)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퇴직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진 데서 촉발되었다. 칸은 2009년에 2억 3천만 원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봉마저도 적당한 보수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와중에, 퇴사 시 지급받은 퇴직금 총액이 50만 파운드(약 8억6,500만 원)에 달한 점이 공개되었다. 칸과 동시에 퇴사했던 부대표 케이트 길모어(Kate Gilmore) 역시 퇴직금으로 30만 파운드(약 5억1,900만 원)를 받은 것으로 밝혀져서 회원들 사이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고액의 퇴직금을 받아서 물의를 빚고 있는 아이린 칸

후원금이 극소수 집행부의 고액 퇴직금으로

정부나 기업의 후원금을 받지 않은 채 주로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지탱된 국제엠네스티에서 거액의 연봉과 퇴직금이 지급되었다는 점이 드러나자, 십시일반 후원금을 내왔던 회원들은 실망과 분노를 숨기지 않고 있다. 생활비를 아껴서 후원금을 납부했던 회원들은 빈곤 감퇴나 인권유린국가의 인권 신장을 위해 자신들의 돈이 올곧게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극소수의 집행부가 대기업 수준의 고액 연봉과 퇴직금을 받는 데 자신들의 돈이 쓰였으리라고는 언감생심 생각하지 못했다고 일축하고 나섰다. 몇몇 회원들은 <가디언>(The Guardian)지(紙)에 공개적으로 국제엠네스티 후원 철회를 선언하기도 했고, 탈퇴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일이 향후 재발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창하고 나섰다.

아이린 칸은 재직 당시 여성폭력이나 관타나모 수용소의 인권유린, 빈곤이나 사회권 문제를 세계적으로 이슈화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진보진영으로부터는 칸이 영국이나 미국 출신 군인들이 이라크에서 자행했던 수감자 고문에 대해서 국제엠네스티가 충분히 의제화하지 못했다는 쓴소리를 냈다. 다른 쪽에서는 칸이 지나치게 경제권을 강조하다보니 정치권에 대한 비중이 자연스레 감소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밖에 보수진영으로부터는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에 대한 지적은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지만, 수감자들 중 테러리스트나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의 범죄행각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는 평도 들었다.

현재 국제개발법기구(International Development Law Organization)의 사무총장으로 재직 중인 칸은 일련의 퇴직금 논란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인권유린 감시를 하다 살해당한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

문 닫을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비정부기구

영국의 자선지원재단(the Charities Aid Foundation)에 따르면, 경제위기 속 기부액 감소로 인해 1/6의 비정비기구가 2013년 영국에서 문을 닫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왔다. 다양한 견제기능을 수행 중인 비정부기구가 사라지면, 그만큼 정부나 자본, 정당처럼 힘을 지닌 세력을 감시하는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도 비정부기구 상근자들이 악전고투 속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지 않은 활동가들이 적은 수입과 고된 노동량에 만성적으로 처해 있다. 이밖에 몇몇 단체들(예컨대,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며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경찰 감시 단체나 급진적인 환경운동단체 및 동물해방단체, 난민들을 위한 시민단체 차원의 쉼터 상근자들)의 경우 경찰의 집요한 탄압까지 가세해서 사면초가 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활동가들의 가난을 강권하는 사회

한국에서는 실질적으로 일을 도맡아서 하는 상근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수입이 거의 개선되지 않은 채 답습되고 있다. 인천의 노동단체에서 상근자로 활약하는 한 활동가는 110만 원 가량의 월급을 받아서 월세에서부터 통신요금, 밥값과 교통비, 부모님 용돈 같은 고정비용을 내고 나면, 보험료 납부나 저축은 거의 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노후대비가 없다시피 해서 걱정스럽지만 또렷한 해결방안은 찾지 못하는 중이다.

경기도의 환경운동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전셋집을 마련하지 못한 채, 자그마한 자취방에서 홀로 30대 후반을 보내고 있다. 질병이나 사고를 당해서 일을 더이상 하지 못할 경우 금세 극빈층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명박 정권 이후 진보적 비정부기구 중 재정난이 심화된 데가 적잖다. 정부의 입김에 안 맞는 비판적 주장을 줄기차게 하거나,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조직에 대한 전 방위 탄압이 가세된 원인도 한몫을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를 비판하는 비정부기구의 속성을 존중하지 않는 시각이 매우 문제적이다. 이밖에 갈수록 각박해지는 서민들이 빈한한 살림 속에서 ‘개인적 복지’에 집중하는 세태로 인해 후원금을 내지 않는 것도 시민단체 활동의 위축을 야기할 수 있다. 활동가들의 빈곤과 희생을 당연시하는 세간의 관성적인 시각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아는 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줄곧 관심을 가져온 시민단체에 상근자로 나섰다. 그는 신명나게 일하며 농성장에서 차디찬 잠을 청하거나, 보도자료 및 유인물을 작성하기 위해서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거나, 엥겔지수가 예외적으로 높은 생활비 지출에 대해서 군말 없이 5년 넘게 정력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아이가 생긴 데다 부모님이 편찮아지자, 더이상 시민단체에서 상근자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지금 사교육기관에서 일한다.

활동가들의 퇴직, 시민운동의 손실

  한 활동가가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활동가들의 빈곤으로 인한 활동중지는 어렵게 쌓아온 전문성과 노하우가 소실되는 아쉬움을 남긴다. 매년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와 주택 관련 비용, 엄청난 양육비용의 부담 속에서 활동가들은 끝내 ‘천직’에 가까운 꿈을 접거나, 결혼이나 출산, 부모 부양 등을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봉착하기도 한다.

한국은 연말소득공제를 통해 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를 함으로써 후원을 촉진한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이다. 이마저도 시민단체를 물심양면 후원하는 사람들이 선진국에 비해서 부족한 실정이어서 한계를 내포한다. 예나 지금이나 활동가들은 어느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보다도 더욱 빈곤한 살림을 꾸리며,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애써 버티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필자와 알고 지내는 한 활동가는 말한다. “적잖은 비정부기구 활동가들은 아예 4대 보험조차 가입이 안 되어 있어요. 필수 비용을 제하고 나면, 저금을 하거나 보험을 들기 여의치 않아서 일면 우유부단하고 배짱 좋게 미래를 방관해요. 평생 건강하게 운동가로서의 삶을 이어나가는 게 어렵듯이 현실의 벽에 부닥치면, 지금이라도 이직을 해야 하나 가끔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일정 수입 이하의 비정부기구 활동가들에게 4대 보험 가입혜택이나 생활보호자금이 뒤따르면 좋겠습니다. 시민들도 한 달에 10,000원이라도 각자 지지하는 시민단체에 후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엠네스티 고액퇴직금 사건이 그저 멀게만 들리는 현실

겨울은 나눔의 계절이자 결실의 끝자락이다. 냉대 받은 존재들의 억압받는 목소리를 경청해서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망가져가는 지구의 절규를 우리에게 전해주며, 위정자들의 부정부패에 찌든 관성을 통렬하게 보여주는 것, 이러한 비정부기구의 활동과 인권, 민주주의, 투명한 정치와 경제는 상생하기 마련이다.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활동가들의 처우개선도 더 이상 경시해서는 곤란하다.

엠네스티를 떠나면서 9억에 가까운 퇴직금을 받은 아이린 칸의 수완이, 활동가들에게는 그저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토픽으로 들리는 현실이다. 불가능한 현실을 가능하게 했던 활동가들의 희생에 대해서, 이제 현실적으로 응답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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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 국제엠네스티 , 아이린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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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시민자

    자본주의체제 추종하는 자본가와 추종정부기관들 음모가 깔린 듯 싶소.

  • NPO

    NGO라는 생김새 자체가 그렇습니다. 돈이 원래 없죠. 어쩔 수 없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프로젝트나 사업 받아서 입에 풀칠하고. 구조적으로 보자면, 정부나 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였거나 그러할 운명에 놓인 것은 아닐까요? 김대중, 노무현때처럼 NGO의 전성시대가 앞으로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NGO가 없어질 것이라고도 생각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게 전세계적으로 정부, 기업, 학자, NGO의 협력으로 굴러가는 것이니까...위의 글과 같이 "비정부기구의 활동과 인권, 민주주의, 투명한 정치와 경제는 상생하기 마련"이니까...

  • 익명

    엔지오는 두가지 상황이 있는듯

    정말 돈이 없는 경우와

    있는데도 저임금 체제를 유지하는 경우

    활동가 규모가 수십명인 단체들의 경우

    활동가 규모를 줄이거나 유지하면서 임금을 높이기보다는

    생계비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할 사람을 추가로 모집하는 현실


    활동가=저임금


    이런 구조에는 민주 시민운동 기반이 아직 탄탄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마치 학생회나 노조 집행부처럼 임기제 임원들의 외향적인 성과지향적 운영방식과

    이른바 시민운동을 통해 정치권 등으로 진출하길 희망하는 임원들이 상근직원, 빛좋은 개살구인 활동가를 사업에 필요한 자원처럼 여기는 게 원인이 아닐까?

    시민이 주인이 되는 시민단체가 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도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해본다.

    제목을 다시 정해본다면

    활동가에게 가난 권하는 사회?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