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1969년 6월 28일 던져진 하이힐로 자긍심을 외친다

자긍심의 달(Pride Month)

트랜스젠더가 굽이 높은 신발을 경찰에게 던지며 맞선다. 1969년 6월 28성소수자들이 오가고 머물던 뉴욕의 한 술집 스톤월 인(Stonewall Inn)’에서 있었던 일이다동성애자이고홈리스이자청소년이자트랜스젠더이고드랙퀸인 성소수자들이 신발과 동전과 술병을 경찰에게 던지며 저항한다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국가로부터 거부당하던 시기존재가 '죄'이고 '질병'이었던 시기공권력의 급작스러운 단속과 경고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성소수자들은 저항하기 시작한다억압에 맞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영위하고자 한 성소수자들의 투쟁은 그렇게 알려지기 시작했다이 투쟁의 역사는 그 장소의 이름을 따 스톤월 항쟁으로 불린다. 20세기 중후반성소수자를 탄압하던 시대를 넘어서게 한 이 항쟁은 6월이 전 지구적으로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이 되도록 한 유래다.

2000한국에서는 방송인 홍석천이 커밍아웃 후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방송계에서 퇴출당할 정도로 성소수자 인권이 탄압받았다한국의 성소수자들은 이에 맞서기 위해 집단적인 커밍아웃을 감행한다그들은 드랙을 하고 트럭에 올라 대학로 거리를 누비고연세대 강당에 모여 공연을 하고 토론하며 연대를 도모했다대중적인 커밍아웃은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성소수자로서 살아가겠다는 자긍심의 표출이었다이것이 한국 퀴어문화축제의 시초가 된다.

이후 퀴어문화축제는 매년 개최되며 성소수자 인권을 말하는 현장이 되었다청소년 성소수자의 생존권 보장에이즈예방법 전면 개정군형법 제92조의폐지차별금지법 제정동성혼 법제화성소수자 노동권 보장트랜스젠더 인권 보장 등 성소수자 인권 의제는 물론이라크 파병 반대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 등 당대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드높였다자긍심 행진은 부당한 국가 폭력과 권력에 맞서며 기존 사회 질서 및 구조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집단적 행동으로 이어져 왔다.

() 2006년 퀴어퍼레이드에서 “STOP THE WAR” 가 적힌 대형천을 들고 퍼레이드에 참여한 참가자들 (출처참세상() 2014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을 알리는 전시물 (출처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그런데 2024자긍심과 연대의 장인 퀴어문화축제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집단학살 전쟁범죄의 공범인 미국영국독일 등의 대사관과 탐욕적인 이윤추구로 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저해하는 길리어드를 비롯한 초국적 제약회사가 파트너십으로 참여한다.

핑크워싱(Pinkwashing)

70여년이 넘도록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배하고 있는 이스라엘은팔레스타인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동원하고 사용하는 군사 무기 탱크에 무지개 깃발을 올렸다살해에 가담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무지개 깃발을 들고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팔레스타인의 민중과 퀴어들이 학살로 목숨을 잃는 동안퀴어 인권의 상징인 무지개는 이스라엘이 핑크워싱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영토를 배경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라는 문장이 적힌 무지개 깃발을 들고 인증샷을 찍고 있는 이스라엘 병사 (출처인스타그램)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다양성과 퀴어의 이미지로 가리고 세탁하기에 혈안이고미국과 영국독일 등은 이스라엘에 막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무기를 공급하며 이에 가담한다한국 정부도 전쟁범죄에 사용되는 무기를 팔아 돈을 벌어들인다.

이에 BDS운동(보이콧Boycott, 투자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에 연대해온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한국 퀴어 선언을 준비하며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결의와 요구를 밝힌다.

이스라엘 학살을 지원하고 동조하는 미국영국독일을 비롯한 소위 서구 선진국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이들이 팔레스타인 퀴어 학살에 동참하는 한 이들이 내세우는 성소수자 인권 보장은 사실상 서구 사회의 일부 퀴어만을 특권화하는 허울 좋은 보편 규범에 불과함을 지적한다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투쟁과 연대하고 우리의 운동으로 만들어 나간다.”

한국 정부는 대이스라엘 무기 수출을 중단하라우리는 한국 정부가 무기를 팔아 번 돈으로 잘 살고 싶지 않다어차피 한국 정부가 특별히 퀴어를 위해서 투자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차별과 억압으로 인해 항상 죽음 가까이 살고 있는 우리들은 한국 무기가 지구 저편에서 망가뜨리는 퀴어의 몸에도 같이 아픔을 느낀다.”

미국에서도 청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전운동이 확산세를 가지고 있지만미국 정부는 반전운동을 하는 이들을 심각하게 탄압하고 있다미국 정부는 반전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총을 든 경찰을 투입했고경찰은 총알을 발사하기까지 했다이 과정에서 반전운동에 힘을 모으던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한편길리어드를 비롯한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공적 영역의 지원으로 개발된 의약품을 독점적으로 사유화하고 특허권을 행사하며 탐욕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도 치료제 독점과 높은 약값으로 비판을 받은 길리어드는 시장독점 연장을 위해 부작용이 개선된 약 판매를 일부러 미뤄 2만 4천여 명의 미국 HIV감염인 및 게이들에게 집단으로 고소 당한 상황이기도 하다특허 독점과 높은 약값은 성소수자와 HIV감염인에이즈 환자를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위험에 노출된 취약한 사람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저해하여 이들의 건강권을 위협한다그들이 그렇게 비윤리적으로 획득한 폭리의 극히 일부를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으로 건네며 “HIV감염인의 삶을 응원한다고 핑크워싱의 가면을 쓰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가초국적 제약회사가 위선적으로 건네는 돈에 우리의 자긍심이 있을 수 없는 이유다.

2023년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길리어드를 규탄하는 현수막 행진길리어드는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의 지속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2022년부터 서울퀴어문화축제에 꾸준히 참여해오고 있다. (출처: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자긍심(Pride)

지금도 이스라엘은 라파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피난민이 몰려있는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지역 난민촌을 공습하여 피난민들이 산채로 불타 목숨을 잃는다지금도 돈 없고 가난한 이들은 초국적 제약회사의 횡포 때문에 생명에 필수적인 의약품에 접근하지 못한다.

이런 전 지구적 정세 속에서 단지 무지개 깃발만을 든다고 자긍심이 빛나지 않는다우리는 오히려 자신들의 만행을 가리기 위해 무지개를 이용하는 자들의 권력에 저항하고 경계하며 비판해야 한다전쟁범죄의 공범 미국영국독일 대사관과 함께 우리의 자긍심을 외칠 수 없다. HIV감염인과 성소수자의 건강권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초국적 제약회사와 함께 우리의 자긍심을 외칠 수 없다.

우리의 자긍심은 저항과 투쟁에 있다. 6월 1자긍심 행진이 펼쳐질 서울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미국영국독일 등 대사관과 길리어드를 비롯한 초국적 제약회사들의 핑크워싱에 맞선 대항 액션들이 펼쳐진다저항의 하이힐을 들어 올리자우리의 자긍심을 힘껏 드러내자우리의 자긍심은, 1969년 경찰을 향해 하이힐을 던지며 저항한 트랜스젠더처럼부당한 폭력과 권력에 맞설 때 비로소 찬란한 무지갯빛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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