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대연합-의회주의에 발목잡힌 노동자정치

[필자 주] 22대 총선이 끝난 지도 꽤 되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22대 총선, 노동자정치의 비극과 길 찾기>라는 주제로 연재한다. 22대 총선으로 96-97총파업 이후 본격화된 ‘대중적’ 노동자정치세력화운동, 또는 진보정당운동의 한 시기가 매듭지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1987년 이후 해묵은 논쟁이었던 ‘독자적 노동자정치냐 민주진보대연합이냐’라는 논쟁이 헌재 진행형으로 전개되면서, 향후 노동자정치의 전망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재에서는 22대 총선이 노동자정치에 던진 질문은 무엇인지, 20여 년간 진행된 노동자정치운동은 왜 실패했는지, 민주진보대연합론에 근거한 진보당의 민주당발 비례위성정당 참여는 왜 문제인지 등을 짚어보면서, 노동자정치의 새로운 전망 찾기를 독자들과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22대 총선이 노동자정치에 던지는 질문 그리고 과제

(2) 민주대연합-의회주의에 발목잡힌 노동자정치

(3) 진보당의 비례위성정당 참여가 불러온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와 대안

(4) 노동자 정치, 현장에서부터 바로 세워야


노동자정치 1기의 실패는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22대 총선 결과를 두고, 노동자정치 내지 진보정치의 한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가 많다. 진보당의 비례위성정당 참여 및 민주당과의 전면적 선거연합, 이에 참여하지 않은 (녹색)정의당의 원외정당화, 독자노선을 견지한 노동당의 미약한 득표율 등을 생각하면 이런 평가는 틀리지 않다고 생각된다. 즉 96-97총파업 이후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노동자정치 1기는 실패로 그 막을 내렸다고 할 것이다.

22대 총선 결과는 단지 최근의 객관정세 및 주체들의 대응에 따른 단기적인 실패가 아니다. 이는 적어도 13년 전 내지 그 이전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짧게는 2011년의 이른바 ‘3자 통합’ 즉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통합진보당의 출범 때부터 내재된 문제였으며, 길게 보면 87년부터 계속 문제가 되었던 이른바 ‘민주대연합’ 노선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이후 지속적으로 강화된 의회주의 또한, 이미 한국사회의 성격이 변하고 있었음에도 낡은 민주대연합 노선을 고수했던 것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노동자정치 1기의 실패를 딛고 다시 전진하기 위해서는 단지 비례위성정당 참여 등 전술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진보당만이 아니라 정의당의 일부 세력도 공유하고 있었던, 이미 낡아버린 민주대연합 노선 및 이와 관련된 의회주의 강화라는 노선적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비판이 필요한 때이며, 이 글은 이를 위한 일종의 문제 제기로서 받아들여 주시길 바라는 바이다.


출처: 민주노총 유튜브 영상 화면 갈무리

민주대연합은 한국사회의 변화를 무시한 낡은 노선이다

민주대연합 내지 민주진보대연합 노선은 기본적으로 80년대식의 시대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이 노선은 한국사회를 독재 대 민주 내지 수구 대 개혁의 구도로 파악하며 군부독재 세력의 후예 내지 수구 기득권 세력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당면 과제라고 인식한다.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는, 미일 제국주의 세력과 그에 종속된 매판적 지배세력의 지배를 청산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주요모순이라고 파악하며, 이에 따른 일종의 진보적 민족주의 노선을 취하게 된다. 단지 이른바 ‘NL’만이 아니라 “PD’의 상당수도 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신식민지’라든지 ‘종속심화’라는 주장이 바로 그런 셈이다. 좀 더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성격이나 노자간 모순을 강조하긴 했지만, 이는 기본 모순의 층위일 뿐 실천적으로는 친제국주의적인 수구기득권 지배세력에 우선적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80년대 내지 90년대 초반까지는 나름 타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상당한 기간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한국을 과연 신식민지 내지 갈수록 종속이 심화되는 체제라고 볼 수 있는가? 또한 민주당 류의 이른바 ‘민주세력’은 과거의 민족자본가처럼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노동자와 서로 협력 가능한 세력이라고 볼 수 있는가? 여기 대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변화된 현실을 무시하는 것임에도, 80년대 및 90년대 초반에 배출된 활동가들이 주도했던 노동자정치운동 세력은 이런 사고방식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

그간 변화된 현실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87년 이후 형식적 민주화가 계속 진전되면서 그 이전의 군사독재처럼 정통성의 취약 등으로 제국주의의 요구에 본질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변화되었다. 당장 이른바 ‘북방정책’은 노태우 정권 당시에 시작되었으며, 이후로도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정치적-경제적 교류는 계속 확대되었다. 이는 이른바 수구정치세력이든 이른바 민주정치세력이든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물론 이는 미중간 교류확대 및 국제분업체계 형성 등 국제정세의 변화와 긴밀하게 연관된 것이었기에 미국이나 일본 등도 굳이 반대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일방적으로 이른바 ‘서방’ 내지 제국주의 진영의 요구만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

둘째, 이런 정세변화에 기반하여 한국경제의 성격도 크게 변화되었다. 그 이전에는 거의 ‘서방’ 내지 미일제국주의 진영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어 있었지만, 대중국 경제교류 확대 및 이와 연관되어 새롭게 구축된 동북아 제조업 벨트의 일원으로서 국제분업체계에 성공적으로 편입됨에 따라 한국의 재벌대기업은 일방적인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과연 지금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를 미국과 일본에 종속된 매판자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오히려 글로벌 대기업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는가? 당장 2008년의 미국금융위기조차 한국은 대중무역의 확대 등을 통해 그리 어렵지 않게 돌파했다. 즉 한국경제는 이미 종속적인 성격을 벗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 그리고 이런 경제적 성격 변화의 가장 큰 수혜집단이 사실은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상위중산층 집단이다. 미국의 금융위기조차 큰 영향을 안 받을 정도로 한국경제는 나름 독자적인 성장을 지속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과거의 수구지배세력만이 아니라 민주당 세력 또한 아니 사실상은 더 큰 경제적 혜택을 입었다. 즉 그들은 이미 한국의 주요 자본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친자본 세력이다.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나 불안정 노동체제의 도입 등 자본의 이해에 충실한 정책이 집중적으로 추진된 것도 민주당 집권 시절이다. 물론 IMF 위기 등의 계기가 있었고 현 국민의힘 세력이 보다 노골적이었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당 세력은 이미 친자본 분파의 하나일 뿐이지 노동자민중에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간의 숱한 경험으로 이미 증명되지 않았던가?

결론적으로 이미 한국 자본주의는 미국과 일본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어 있지 않으며 국제분업체계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선진자본주의의 일원이라고 보아야 한다. 최근 약간 하락하긴 했지만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를 선진자본주의가 아니라 뭔가 종속적이고 비정상적인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사회집단에 비해 과도한 국가권력이나 한국 특유의 재벌체제 등 비정상적인 요소가 상당히 있긴 하지만, 원래 ‘순수한’ 자본주의란 없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서라면 전근대 내지 비정상적인 요소도 얼마든지 활용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따라서 독재 대 민주, 수구 대 개혁, 매판 대 민족이라는 식으로 민주당류 세력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노선도 타당하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약간 있을지언정 민주당은 이미 지배계급 내지 자본 분파의 일원이다. 단지 과거의 인맥에 근거한 상대적 친화성을 근거로 민주당과 협력하겠다는 것은 사실은 자본의 지배를 이대로 인정하자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이것이 과연 노동자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인가? 자본에 맞서 싸우는 것이 핵심적인 임무인 노동자정치운동은 이미 유효성을 상실한 민주대연합 노선과 철저히 절연해야 한다.

민주대연합과 관련된 의회주의 노선

민주대연합 중심의 사고방식은 단지 노선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 이후로 계속 강화되었고, 2013년의 통합진보당 출범으로 본격화된 의회주의 노선의 전면화 또한 이런 사고방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한국의 오랜 보수양당체제나 진보정치의 성장을 가로막는 각종 정치제도 등 노동자정치에 매우 불리환 정치환경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럴수록 진보정치 내지 노동자정치는 의석에 목매달아서는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각종 사회운동의 강화와 대중운동의 활성화에 복무하는 정치활동만이 이후의 본격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짧은 성공이 오히려 족쇄가 되었다. 일단 의석을 획득하고 최소한이나마 발언권을 획득한 이후에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버렸다. 한국의 정치환경에서 이를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은 민주당류의 정치세력과 연대연합하는 것이다. 민주대연합 중심의 사고방식이 널리 퍼져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어쨌든 수구기득권 세력은 아니니까 일정하게 연대가능한 대상이라는 것이 민주대연합 노선의 기본적 사고방식이므로.

그래도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당 활동가 대부분이 민중운동 출신이었기에 의회주의에 완전히 몰입하지는 않았으며, 이른바 ‘NL’ 세력 또한 초기에는 독자적 진보정당에 참여한 이상 민주당 등과의 전면적 선거연합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물론 지역에 따라 선거연합에 참여한 경우도 있었고 당내 패권주의 및 민주당과의 협조주의 등 많은 문제점들이 그때도 강력하게 존재했지만 어쨌든 진보정치의 독자성과 이를 위한 사회운동의 강화에는 뜻을 같이 했다.

하지만 2008년의 분당과 일부 명망가들의 의회 진출을 최우선하는 사고방식, 무엇보다도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수구세력의 집권을 막는 것이 사회운동의 성장 등 모든 것에 앞서는 최우선적인 과제라고 인식하는 민주대연합 노선의 문제점 등으로 인해, 이후의 진보정치는 오히려 민주당과 연대하되 적절한 정치협상 등을 통해 의회 의석을 늘리는 것에만 주로 치중하게 되었다. 특히 진보신당 탈당파만이 아니라 민주당류 정치세력의 일원인 국민참여당까지 포함해서 3자가 통합한 통합진보당이 출범한 이후로 해당 정당 내에서는 이에 대한 내부적 문제제기는 거의 없었다. 이후 통합진보당이 다시 분당되었지만 이러한 경향은 당시 통합진보당 잔류파든 정의당으로의 탈당파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즉 2012년 이후의 진보정당은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의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실상 거의 없었으며 의석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가속화되었다. 또한 이런 단기적인 정치적 유리함을 위해 민주당과 상호협력하는 경향도 더욱 강화되었고 민주대연합 노선은 이를 뒷받침했다. 결국 의회주의 강화와 민주대연합 노선은 상호 상승작용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의회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민주당과 상호협력하는 경향이 지속됨에 따라, 유권자들은 진보정치의 독자성이 지니는 가치 내지 중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기껏 비례대표 선거 때 표를 주는 정도일 뿐, 대선 독자출마 등으로 민주당의 승리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싶으면 바로 손절하게 된 것이다. 민주당 급진파 정도의 포지션일 뿐 기본적으로는 민주당과 별 차이도 없는 것 같은데, 왜 민주당 재집권을 방해하느냐는 식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했던 정치환경의 불리함 등으로 인해, 민주당과는 완전히 독립적인 진보정치의 가치와 중요성을 유권자들이 바로 체감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민주당의 하위파트너로서 의석 몇 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보정치의 독자적인 가치를 확산시켜 나가야 하며 이는 기본적으로 의회가 아니라 사회운동 및 대중운동 중심으로 활동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노동운동을 비롯한 각종 사회운동을 민주당 중심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종속시키려는 일부 집단의 시도는 철저히 비판되어야 할 것이다.

독립적이며 사회운동에 기반한 새로운 노동자정치를

결국 노동자정치 1기의 실패는 민주대연합 노선 및 이에 뒷받침된 의회 중심주의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후 다시 시작될 새로운 노동자정치는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 문제점을 확실하게 극복해야 한다.

민주대연합 노선이 아니라 독립적인 노동자정치의 가치와 중요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 또한 이것이 그간 변화된 한국의 현실에 부합하는 방향이며, 민주대연합 노선은 이미 낡은 것임을 확실히 천명해야 한다. 물론 필요할 경우 전술적이고 단기적인 연대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건 그 당시의 상황적 필요성에 따른 것일 뿐 이것이 지속적인 노선으로 자리를 잡아서는 곤란하다. 

또한 선거와 의석 획득을 아예 외면해서는 당연히 안 되겠지만, 이것이 정당 활동의 대부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선거나 의석 획득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운동과 대중운동에 기반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것이 정당 활동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지역과 현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투적인 구호처럼 들리겠지만, 이것이야말로 낡아보이지만 절대 낡지 않은 노동자정치의 기본이다. 당장은 그럴 듯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낡아버린 민주대연합-의회주의 노선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덧붙이는 말

이장규는 전 진보신당 기관지위원장으로 현 노동당 대변인실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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