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물론 저널>(Historical Materialism journal, HM)은 런던에서 매년 학회를 연다. 이 학회에는 (주로) 학자들과 학생들이 (대부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가진 이들로) 참석하여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논의한다. 올해 주제는 "재앙에 맞서기: 반동 세력과 전쟁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Countering the plague: the forces of reaction and war and how to fight them)였다.
이번 학회는 매우 성황을 이루었으며, 나흘 동안 제출된 800편의 논문을 논의하기 위해 930명 이상이 등록했다. 또한, 지난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아이작 도이처 상’(Isaac Deutscher Prize) 수상작 하이데 거스텐베르거(Heide Gerstenberger)의 ⟪시장과 폭력(Market and Violence)⟫의 강연도 있었으며, ‘21세기 제국주의와 기후와 자본’에 관한 대형 총회도 열렸다.
지난 11월 12일, 영국 런던에서 <역사유물론 저널>(Historical Materialism journal)이 주최한 학회가 열렸다. 4일간 열린 학회에서는 800개 이상의 발표가 있었으며, 900명 이상이 참석했다. 출처: Historical Materialism journal
나흘 동안 논의된 모든 주제를 다 다룰 수는 없으므로, 이번 리뷰에서도 늘 그랬듯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관련 세션에 집중하려 한다(HM은 철학, 문화, 정치 전략 등 인간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모든 측면을 다룬다).
내가 참여했던 세션부터 시작해보겠다. 첫 번째 세션은 1970년대 초 벨기에 마르크스주의자인 에르네스트 만델(Ernest Mandel)이 쓴 책 후기 자본주의의 오늘날 영향과 관련성에 대한 원탁 토론이었다. 내 생각에, 이 책은 20세기 중반 세계 자본주의의 본질과 동향에 대해 획기적인 연구를 제공했다. 이번 세션은 프랑스 경제학자 세드릭 뒤랑(Cedric Durand)이 서문을 쓴 책의 새 판본 출간을 기념하여 열렸다. 이 세션에는 피터 그린, 외즐렘 오나란, 리카르도 벨로피오레, 앨런 프리먼, 그리고 내가 연사로 참여했다.
피터 그린(Peter Green)은 만델의 책에 대해 장단점을 제시했다. 장점 중 하나는 만델이 위기의 ‘단일 원인’ 관점을 비판했다는 점이다. 즉, 위기는 하나의 주요 원인만이 아닌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단점 중 하나는 만델이 불균형 이론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피터는 또한 자본 축적의 장기파동(수십 년간 상승했다가 하락하는) 이론에 대한 만델의 지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만델과 관련된 20세기의 특정 트로츠키주의 그룹에 속했던 외즐렘 오나란(Ozlem Onaran)은 후기 자본주의가 이제 페미니즘, 무급 돌봄 노동을 다루는 등 그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을 포스트 케인스주의자인 칼레츠키 이론과 ‘종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만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 같다.
리카르도 벨로피오레(Riccardo Bellofiore)는 더 나아가 만델의 위기 이론과 특히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에 대한 그의 집착을 대부분 일축했다. 앨런 프리먼(Alan Freeman)은 만델의 지칠 줄 모르는 혁명적 활동에 중점을 두어 발언했다.
나는 다른 연사들과 상당 부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만델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장기 호황을 설명하는 데 큰 진전을 이뤘으며, ‘후기 자본주의’가 여전히 자본주의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독점 자본주의’, ‘국가 독점 자본주의’, 또는 ‘금융화된 자본주의’로 변형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델은 여전히 자본 축적의 척도로서 이윤율을 기반으로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마르크스의 이윤율 법칙에 의존했다.
그러나 나는 만델이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단일 원인’ 설명, 특히 룩셈부르크의 소비 부족 이론과 그로스만의 이윤 총량 이론을 비판하면서 이 이론의 강점을 약화시켰다고 생각했다. 만델은 대신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이윤율 하락이 생산 위기의 기초가 되지만, ‘최종 소비자’의 수요 부족에서 비롯된 ‘실현’ 위기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약간 농담조로 ‘단일 원인’의 깃발을 들어 올렸는데, 이는 자본주의 생산의 각 위기마다 다양한 원인이 있고 그 원인들이 모두 다르다고 받아들인다면, 결국 위기에 대한 이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내 견해로는 자본주의 위기 이면에는 명확히 이윤 동기가 있으며, 마르크스의 이윤율 법칙이 위기의 근본적 (하지만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윤율과 이윤 총량의 하락이 투자 붕괴를 가져오고, 이는 결국 생산, 소득, 고용, 소비의 축소로 이어진다. 그 반대가 아니다.
만델의 자본 축적 분석에서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자본 축적의 장기파동 이론에 대한 그의 해석이었다. 즉, 자본 축적은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비교적 성공적인 확장기를 거치다가, 이윤율 하락과 기존 기술의 한계로 인해 상대적 침체의 하강기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장기파동이나 순환에 대한 경험적 증거는 점차 더 많이 뒷받침되고 있으며, 세계 경제 상황을 ‘장기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내 책 ⟪장기 불황(The Long Depression)⟫을 참조하라. 곧 검토할 새로운 연구들도 있다). 장기파동은 우리가 정치적 전략(주관적 요소)을 도출할 수 있는 객관적 상황을 나타낸다.
그러나 만델은 후기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경제 순환의 ‘내재적(endogenous)’ 이론을 콘드라티에프가 처음 제시한 것과 트로츠키가 주장한 정치적 요인이 순환을 주도해야 한다는 관점을 조화시키려 했다. 결국 그의 설명은 일종의 혼합물에 그치고 말았다. 내 입장에서는 축적의 상승 국면이 이윤율 상승기와 관련되고, 하강 국면은 이윤율 하락기와 관련된다. 경제 위기는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이윤율 상승을 이끄는 새로운 상승 파동의 조건을 만든다.
이 접근은 ‘기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번 세션에서도 나는 기계론자의 입장을 고수했다. 만델이 후기 자본주의를 쓴 이후, 내재적으로 발생하는 장기파동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경험적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만델이 후기 자본주의를 쓴 이후, 전 세계 제조업은 주로 제국주의적 선진 자본주의 경제에서 주변부로 이동했다. 소련은 붕괴했고,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맞서는 주요 경제 경쟁자로 부상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전후 즉각적인 복지국가를 붕괴시키고, 경기 호황과 침체를 조절하기 위한 케인스주의 거시경제 관리 정책에 대한 신뢰를 끝냈다. 그 대신 국가 간, 그리고 국가 내에서 소득과 부의 격차가 급격히 증가했다. 무엇보다도 이윤을 추구하는 ‘화석 자본주의’에 의해 초래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는 인류와 자연에 대한 주요한 존재적 도전으로 떠올랐다. 이제 21세기의 ‘후기 자본주의’를 다룬 새로운 책이 필요한 때다.
이 글에서 한 세션에 대해 많은 공간을 할애했으니, 내가 참여한 또 다른 세션인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그 대응 정책’에 관한 세션으로 넘어가겠다. 이 세션에서 영국 킹스턴 대학교의 빌 던(Bill Dunn)은 인플레이션 정치학에 대해 직관에 반하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물가 인플레이션이 항상 노동자에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빌은 많은 부채를 지고 있을 때 인플레이션이 일부 부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고 상기시켰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인플레이션은 더 빠른 경제 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할 때, 그것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고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노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그렇게 큰 악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좌파가 반(反)인플레이션적 시각을 덜 가지도록 하자는 빌의 주장에 대해 그다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최근 팬데믹 이후 주요 경제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급등은 대부분의 노동자 계층 가구의 실질 소득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고 나는 명확하게 본다. 그 결과, 이것은 HM 학회가 시작되기 직전에 있었던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압승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계적인 ‘고통 지수’(Misery Index,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의 합)를 보라. 2021~22년의 높은 인플레이션은 1970년대 이후로 전례 없던 수준으로 세계적 고통 지수를 끌어올렸다.
내 생각에는 약간의 인플레이션을 선호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이다(물론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자본가들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가격을 인상하며 이윤을 유지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발표에서는 최근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에서 이윤-가격의 악순환(profit-price spiral)에 대한 증거를 제시했다.
내 발표는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에 대한 구글리에모 카르케디(Guglielmo Carchedi)와의 공동 연구에 기반을 두었다. 우리는 주류 통화주의, 케인스주의의 비용 인상 이론, 심리적 ‘기대’ 이론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대신, 우리는 가치 이론에 근거한 인플레이션 이론을 제시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처럼 총 가치가 생산가격과 같고, 화폐는 그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가치가 증가하면 화폐 공급도 그 가치 증가에 맞추어 늘어나게 되어 물가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의 증가(이를 전체 노동 인구가 일한 노동 시간으로 측정함)는 상품 생산량 증가에 비해 점차 둔화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단위 생산물당 가격은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서 하락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자본주의 정부의 통화 당국은 통화 공급을 늘리면 가치 성장 둔화를 회복할 수 있다는 통화주의 이론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유통) 화폐 증가와 새로운 가치 증가 간의 격차를 초래한다. 이 둘의 차이를 우리는 ‘가치 인플레이션율’(value rate of inflation)이라고 부른다. 미국 데이터를 활용해 본 결과, 전후 기간 동안 가치 인플레이션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했다. 1980년대까지의 첫 번째 하위 기간에서는 그 격차가 확대되면서 가치 인플레이션율이 상승했다(인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의 두 번째 기간에서는 그 격차가 축소되어 가치 인플레이션율이 둔화되었다(디스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우리는 미국에서 가치 인플레이션율과 공식 인플레이션율 간에 매우 높은 양의 상관관계를 발견했으며, 이는 현대 경제에서 우리의 인플레이션 이론을 경험적으로 뒷받침해준다.
이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의 가치 인플레이션율은 공식 인플레이션율보다 일관되게 높게 나타난다. 이는 공식적인 인플레이션 추정치가 현대 경제에서 실제 인플레이션율을 상당히 과소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가치 성장이 둔화될 때 통화 당국이 화폐 공급을 늘리면 물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다만 추가된 화폐가 금융 자산을 사들이거나 은행 계좌에 저장되면서 유통되지 않는 경우는 예외인데, 이는 2010년대 양적 완화에서 발생한 상황이다).
흥미롭게도, 우리의 이론은 만델이 후기 자본주의에서 설명한 ‘영구적 인플레이션’ 이론과 유사한 점이 있다. 만델은 "경제에서 총 노동 시간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는데 화폐 유통이 두 배로 늘어난다면, 물가 수준도 두 배로 상승할 것"이라고 말하며, 화폐의 양은 “항상 이윤율, 노동 생산성, 생산량, 시장 조건(과잉 생산 또는 부족 생산)과 같은 변동 요소와 결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의 이론에서는 가격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인(가치 성장)과 결정된 요인 또는 반작용 요인(화폐 공급)을 훨씬 더 명확하게 정의했다. 그 결과, 카르케디와 나는 가치 이론이 주류 이론에 비해 인플레이션의 설명력이 더 뛰어나며, 또한 미래 인플레이션 방향에 대한 예측력을 제공한다고 본다.
이번에 내가 참여한 세션에 대한 논의는 여기까지다. 다음 글에서는 올해 HM 학회에서 참석했던 다른 세션에서 배운 점들을 다루겠다.
[출처] HM 2024 part one: late capitalism and inflation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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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