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Rodion Kutsaiev, Unsplash+
오늘날 정부가 자본가들에게 재정 이전을 제공하는 일은 흔하다. 이는 법인세율을 낮추거나, 직접적인 현금 보조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이로써 자본가들의 더 큰 투자를 유도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도널드 트럼프의 첫 번째 대통령 임기 동안, 이와 같은 목표로 법인세율 인하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인도에서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모디 정부가 동일한 목표로 막대한 세금 감면을 제공했다. 그러나 경제학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만 있어도 이러한 자본가들에 대한 재정 이전이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비생산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러한 체제가 "재정 책임(fiscal responsibility)" 법제화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제화는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정 비율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상한선을 고정하며, 일반적으로 정부는 이 한계치에서 운영된다. 따라서 자본가들에게의 이전은 다른 곳에서의 지출 삭감, 일반적으로 노동 빈민을 위한 복지 지출 삭감이나 노동 빈민으로부터 거둬들인 세수 증가로 상쇄되어야 한다. 이제, 노동자들에게 100루피의 이전을 줄이고 이를 자본가들에게 넘기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이는 총수요와 고용, 생산량의 수준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경제를 회복시키기는커녕, 자본가들에게의 이전은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와 같은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느 시기에 이루어지는 투자는 이전에 내려진 투자 결정의 결과이며, 따라서 과거에 이루어진 투자 결정에 따라 투자 주문이 실행된 결과이다. 이는 투자 프로젝트가 긴 투자 회수 기간을 갖기 때문이며, 이는 민간 투자와 공공 투자 모두에 해당한다. 만약 투자 속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이를 위한 결정은 현재 시점에 내려지며, 실제 투자 속도의 증가는 이후에야 나타난다. 따라서 특정 시기의 투자는 주어진 크기, 즉 해당 기간 동안에는 변화하지 않는 크기로 간주해야 한다. 반면, 해당 기간 동안 변화하는 것은 소비의 수준이다.
그리고 여기서, 노동자들이 자본가들보다 소득의 더 많은 부분을 소비에 사용하기 때문에, 노동자들로부터 자본가들에게 구매력을 이전하는 것은 소비를 감소시키는 효과를 낳는다(정부가 자본가들에게 재정 이전을 하기 위해 자신의 소비를 줄이는 경우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노동자들로부터 자본가들에게의 이전(심지어 정부로부터 자본가들에게의 이전조차도)은 자본가들의 소비가 더 수입 집약적이기 때문에 순수출(즉, 수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부분)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해 조달된 자본가들에게의 이전이 순수출을 변화시키지 않는다고 가정함으로써 우리의 주장을 의도적으로 축소하여 살펴보자. 한 국가의 국민소득 ( Y )은 소비( C ), 투자 ( I ), 정부지출 ( G ), 그리고 국제수지의 경상수지 흑자(X-M, 수출에서 수입을 뺀 값)의 합과 같아야 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 Y = C + I + G + (X-M)] (i)
자본가들에게의 이전은 ( C) 를 감소시켜 위 식의 우변, 즉 총수요 수준을 감소시킨다. 따라서 위 식의 평형은 ( Y ), 즉 산출량과 고용의 감소를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경제에서 활용되지 않은 생산능력의 정도가 증가하고, 이는 현재 시점에서 자본가들의 투자 결정, 따라서 이후 기간의 실제 투자 수준을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경제는 활성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위축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위축 자체는, 다른 조건이 동일하게 유지될 경우, 이윤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따라서 자본가들에게의 이전 자체는 이윤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지지만, 이러한 이전이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는 반대로 이윤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그리고 꽤 현실적인 가정하에서는, 이 두 효과가 정확히 상쇄되어 자본가들의 총이윤은 이전이 없었을 경우와 정확히 동일하게 유지된다. 이 결과가 성립하는 가정은 노동 계층이 그들의 소득 전부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는 꽤 현실적인 가정이다. 경제 전체 부의 비율에서 하위 계층이 소유한 비율이 매우 미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하위 50%가 국가 총부의 단 2%만을 소유하고 있다. 모든 부는 반드시 저축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이는 그들이 거의 저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노동 계층이 저축하지 않으며 경제 내 모든 저축은 부유층과 정부로부터 나온다는 가정은 꽤 현실적이다.
잠시만, 부유층, 즉 자본가들이 그들의 소득 전부를 저축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민간 저축은 이윤과 같다. 어떤 경제에서든, 총 국내 저축은 총 국내 투자에서 외국 저축의 유입을 뺀 값과 같아야 하며, 정부 투자가 정부 저축에서 뺀 값이 재정 적자로 정의되기 때문에, 이는 민간 저축, 즉 이윤이 반드시 민간 투자와 재정 적자에서 해당 기간 동안 유입된 외국 저축 ( F ) 을 뺀 값과 같아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 이윤 = 민간 투자 + 재정적자 - F ] (ii)
앞서 민간 투자와 외국 저축의 유입(이는 앞서 정의한 ( X-M )의 음수와 같다)이 해당 기간 동안 변화하지 않을 것이며, “재정 책임” 법제화로 인해 재정 적자 또한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논의했기 때문에, 자본가들에게의 이전에도 불구하고 이윤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모든 이윤이 저축된다는 가정을 버려도 위 논의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만약 이윤의 일부 (α) 가 저축된다면, 식 (ii)는 단순히 다음과 같이 변경된다.
[ α. 이윤 = 민간 투자 + 재정 적자- F ] (iii)
방금 논의한 이유로 식 (iii)의 우변이 변하지 않는다면, (α) 가 1이 아니더라도 이윤은 변하지 않는다. 요컨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재정 적자가 이러한 이전을 조달하기 위해 증가할 수 없고, 따라서 노동자들의 소득을 그에 상응하게 감소시켜야 하는 조건에서, 자본가들에게의 예산 이전은 산출량과 고용의 축소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신의 소득 전부를 소비한다면 자본가들의 소득 크기를 증가시키지도 못한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에게의 예산 이전은 자본가들의 소득을 증가시키지도 않으면서 경제에서 불평등만 증가시킨다. 이는 산출량 축소를 초래하여 이러한 이전의 이윤 증가 효과를 상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전은 다른 중요한 효과를 가진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이러한 이전을 실행하는 실제 이유인데, 그것은 자본가들 간 이윤 분배를 비독점 자본가들로부터 독점 계층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앞서 논의했듯이, 자본가들에게의 예산 이전은 총 이윤이 변하지 않게 한다. 이는 이전이 이윤의 증가 요인이 되지만, 이러한 이전이 노동자들의 소득을 감소시키고 총수요를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윤을 동일한 정도로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전체적으로는 성립하지만, 수요 감소의 영향을 받는 자본가들과 이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본가들은 동일하지 않다. 특히, 대규모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소비 수요 감소로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대신 예산 이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그들은 순이익을 얻는 반면, 노동자들의 소비재 시장에서 더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는 소규모 자본가들은 순손실을 입는다. 이는 총이윤이 집합적으로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발생한다.
따라서 자본가들에게의 예산 이전은 마르크스가 “자본의 중앙집중”이라고 부른 현상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소규모 자본(또는 노동자들의 소비재를 생산하는 소규모 생산자들)을 대규모 자본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가속화한다. 이는 “정실 자본가들(crony capitalists)”이 원하는 것이며, 정부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다. 이러한 이전은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지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활성화 효과도 없으며, 오히려 경제를 위축시킬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축된 경제에서도 독점 자본가들의 입지는 강화된다.
언론과 야당들 사이에서 일부 인정되는 바는, 소규모 생산자들이 화폐개혁(demonetisation)과 부가가치세(GST)의 도입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에게 제공된 세금 감면과 기타 형태의 예산 이전이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서는 인정이 부족하다.
[출처] Fiscal Transfers to Capitalists
[번역] 류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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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