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대한 회의(懷疑)
민주주의는 그리스어인 demos(민중)와 cratos(지배)라는 단어가 결합된 Democratia(데모크라티아)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민중’이나 ‘지배’는 당대의 지배적인 이념이나 가치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중에 의한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어느 사회에서든 민중 일반의 권력은 불평등하며, 고대 그리스의 경우 여성이나 이주노동자, 노예는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배제당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민주주의를 경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주주의를 ‘중우정치(어리석은 대중들의 지배)’라고 멸시했으며 민주정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고대 아테네에서 ‘선거’가 아닌 ‘추첨’을 통해 공직자를 선출한 것도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懷疑) 때문이었다. 훗날 카이사르나 히틀러의 독재나, 프랑스혁명, 러시아 혁명 등 세계를 뒤흔든 인류사의 거대한 갈등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의 대립이 낳은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절대다수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수많은 방식 중 한 가지에 불과하며, 오히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懷疑) 자체’를 제도화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발전시키고자 했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논리로 정립된 이념도 아닐뿐더러, 현대에 이르러서는 독재자나 혁명가도 동시에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것이다.
안티고네의 불복종, 세바스티앙 노르블랑, 1825
안티고네
그리스 신화는 서구문명사 전체에 이르러 문학, 조각, 회화, 건축 등 모든 예술 형식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특히 희곡을 통해 ‘신들의 이야기’에 자신들의 공동체와 문화를 투영하여 철학과 정치적 논쟁의 수단으로 삼았다. 이들에게 있어 희곡이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공동체의 집단적 활동을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성찰하기 위한 주요한 방편이었다.
그중 기원전 441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가 결투 끝에 사망하고, 새롭게 테베의 왕이 된 크레온은 다른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조국을 공격한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선포한다.
“조국보다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자를 나는 경멸한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조국의 땅이며, 조국이 무사해야만 우리가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다. 이런 원칙에 따라 나는 이 도시를 통치할 것이며, 오이디푸스의 아들들과 관련해 내가 내린 포고령 또한 이런 원칙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안티고네 언니, 우리가 법을 무시하고 왕의 명령이나 권력에 맞서다가는 가장 비참하게 죽게 될 거예요. 우린 명심해야 해요. 우리는 더 강한 자의 지배를 받고있는 만큼 복종해야 해요. 나는 도시의 뜻을 거역할 힘이 없다구요.”
동생인 이스메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티고네는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오라비를 위해 장례를 치러주고 크레온 앞에 끌려온다. 포고령을 어긴 안티고네를 질책하고 협박하는 크레온에게 안티고네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의 대가가 죽음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이 소식을 들은 안티고네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은 아버지를 만류해 보지만 크레온의 생각은 확고하다.
“오직 안티고네만이 이 도시에서 공공연히 내 명령을 어기다가 잡혔는데 그 자를 벌하지 않는다면 난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불복종보다 더 큰 악은 없다. 불복종은 도시를 파괴하고, 집들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번영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대개 복종이 안전을 보장해 주는 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법질서를 옹호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한낱 계집에게 패배해서는 안 된다.”
“저 같은 젊은이도 의견을 말씀드릴 수 있다면, 현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많은 것을 배우고 때로는 양보할 줄 아는 것은 수치가 아니라고 말하겠어요.”
“내가 이 나이에 너희 같은 애송이들에게 사리를 배워야 한다는 말이냐?”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크레온에게 ‘천륜을 어기면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하자,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가둔 석굴로 향한다. 하이몬은 목을 매단 안티고네를 붙들고 크레온을 공격하지만 이내 실패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궁전으로 돌아온 크레온은 아내 에우리디케마저 아들과 안티고네의 죽음에 절망하여 자살했다는 비보를 접하고는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다.
크레온 사회의 질서
⟪안티고네⟫를 쓴 소포클레스는 인민을 대표하는 자들은 흔히 그 모양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아주 어릴 적부터 가장 윤리적인 인간을 그들의 대표자로 가져본 경험이 별로 없다. 가부장이 그렇고, 반장이 그렇고, 국회의원이 그렇고, 대통령이 그러하며, 크레온 또한 마찬가지다. 우연히 성군을 만난다 한들 운이 좋았을 뿐이다. 로또만이 희망인 세계. 우리는 어쩌면 그것을 체제 또는 질서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의 체제 또한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양식을 갖춘 민주주의일 수 있을지 모르나, 배제당한 입장에서 살펴보면 노예체제의 한 국면일 뿐이다.
⟪안티고네⟫에서 크레온은 권력과 법치를 강조하고, 안티고네는 도덕과 자유를 강조한다. 더불어 흔히 크레온을 폭군으로 묘사하며 안티고네는 그에 맞서는 영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오히려 크레온의 주장이야말로 가장 당대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에 가깝다. 그 근거로 테베의 시민 중 오직 안티고네만이 포고령에 저항했으며, 크레온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엔 절대다수가 크레온의 포고령에 복무했다.
요컨대 지배적인 인식이란 윤리와는 무관하다. 재벌의 세속은 비윤리적이지만 회장이나 사장의 명령엔 복종해야 한다. 성접대를 받은 검사(김학의)는 반인륜적이지만 그의 무죄를 선고한 법원은 정당하다. 전두환은 집단학살을 저지르고도 골프채를 신나게 휘둘렀으며, 박정희는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며 인민을 고문했지만 존중받거나 추앙받는다. 이것이 크레온의 방식이다. 크레온을 혐오하지만, 크레온을 욕망하는 것이 세계를 떠받친다. 크레온 사회의 질서는 그렇게 성립한다.
안티고네처럼 걸어가라
윤석열은 어떻게 왕이 되었나. 윤석열의 고대적 언어는 우리의 일상에 뿌리 깊게 침투해왔다. ‘공정과 상식’, ‘법치와 성장’은 굳이 윤석열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가 내내 부여잡고 있는 가치였다. 물론 그것은 일상에서 구현된 바 없는 허상이며, 절실한 욕망이라기보다는 크레온 사회의 결핍에 가깝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존엄’을 미루거나 연기할 수 있는 곳으로 배치했다. 당연히 세계는 크레온들 간의 다툼으로 점철되었고, 그런 사회에서 평등과 자유에 관한 이야기는 반드시 우선순위에서 배제당했다. 감히 광장의 요구와 언어를 계승하겠다는 정부 또한 안티고네를 짓밟고 또 다른 크레온을 탄생시켰다.
이를테면 저들은 여성(성)과 여자를 분간할 줄 모른다. 정확히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실눈을 뜨고 여자와 남자, 청년과 노인, 권력과 반권력, 민주와 반민주, 국힘과 민주당이라는 이분법적 대립과 허망한 갈등만을 폭로한다. 이분법의 세계에서 안티고네는 목격되지 않고, 광장의 혁명적 요구는 얼마간의 개혁이나 개선에 의해 저지당한다.
윤석열이 직접 작성했다는 포고령은 소포클레스(안티고네의 저자)가 지어낸 크레온의 포고령보다 삼엄하다. 그의 지지자이자 수호자를 자청하는 자들은 입과 손에 흉기를 들고 대낮부터 테러를 자행한다. 이들을 중계하는 이들도 그 중계를 바라보는 이들도 크레온 사회의 뜨악함에 혀를 찰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안티고네는 크레온과 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크레온의 세계에서는 승리한 자가 권력을 쟁취하고 패배자는 살해당하지만, 안티고네의 세계에는 승패가 없다. 안티고네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당면한 운명에 하루만큼 걸어갈 뿐이다. 포고령에 맞서 망설임 없이 도로 위의 광장으로 걸어갔던 가장 보통의 존재들. 국회 앞 팔차선 도로를 거침 없는 육탄과 자동차로 걸어 잠근 안티고네같은 인간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광장에서, 남태령에서, 구미의 망루 위에서. 각자의 할 일을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를 견디기 위해 비극을 사랑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안티고네는 그저 오라비의 죽음을 애도했을 뿐이다. 참담한 연속극이 유행하는 21세기 한국에서도 너무 많은 죽음이 무고한 행렬을 이룬다. 이태원에서 무안까지. 우리는 이것을 그리스처럼 애도한다. 안티고네처럼 걸어가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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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조는 노동자역사 한내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한내와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