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윤석열이 구속되었다.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짓밟은 자의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 과정은 당연하지 못했다. 그는 시종일관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체포에 저항했다. 문제는 윤석열의 이러한 ‘저항’과 함께 극우정치가 대중적으로 조직되었다는 것이다. 윤석열을 지키겠다며 한남동에 모인 극우대중집회에 이어, 구속에 항의하며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하는 이들을 보며 우리는 ‘윤석열 파면’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내야한다는 공감대를 우리는 이미 광장에서 확인해왔다. 더 나아가 이제는 윤석열 파면 이후에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극우대중운동’에 맞서고 이러한 극우정치가 자랄 수 있는 토대 자체를 바꿔내는 싸움을 전면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윤석열의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자는 것은 우리의 출발점이지만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가리키지는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극우정치는 우리의 중요한 참조점이다. 이들은 반북, 반노조, 반페미니즘, 반이주민, 반성소수자, 반기후를 외치면서 이러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민주주의 쯤은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는 ‘보편적 기본권’에 격렬하게 반발하며 사회적 위계와 불평등을 당연시한다. 다른 무엇보다 ‘평등의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이야 하는지 좀 더 또렷해진다. 민주주의는 앙상한 제도와 절차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삶의 불안과 위기를 함께 넘을 수 있는 ‘평등정치’의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평등정치’는 모든 사회구성원의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정치’이자 ‘대중운동’이다. 성별, 인종, 장애, 성적지향 등에 따른 모든 차별과 배제에 반대하며 우리 삶을 지탱하는 필수재와 사회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평등하고 존엄한 삶이 실현되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기후생태위기를 초래한 기업과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민주적 통제와 개입이 필수적이다. 현재의 민주주의 제도 수준을 뛰어넘어, 일터와 삶터 전반으로 민주주의가 확장되어야 한다. 극우정치가 사회적 위계와 불평등을 강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다면, 우리는 모두가 존엄한 삶을 누리는 ‘평등정치’를 위해 ‘민주주의’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세워야 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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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가 발행하는 <평등으로>에 실린 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