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슬로보디언(Quinn Slobodian)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최근 저서 “하이에크의 변절자들: 신자유주의와 대중 우파의 뿌리(Hayek’s Bastards: The Neoliberal Roots of the Populist Right)”를 집필하기 위해, 경제적 종말을 예고하는 영화, 소설, 투자 뉴스레터, 만화책을 만들어낸 광신적 집단의 세계로 직접 뛰어들었다. 이들은 반세기 동안 매년 몇 차례씩 다가오는 경제적 재앙을 경고하고, 황당한 음모론을 퍼뜨리며,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주장했다.
이 모든 것은 거액의 자금을 댄 여러 재벌 덕분에 가능했다. 이들은 몽펠르랭 소사이어티(Mont Pelerin Society) 회원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면서 출판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했고, 덕분에 이들은 리비에라의 고급 호텔과 알프스 리조트, 심지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도 만나 서로 불길한 예언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독자는 이 세계가 정말 광기의 영역인지, 아니면 영악한 사람들이 미친 척 연기하며 탐욕스러운 과두제 엘리트와 순진한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들(소위 "투자자"라 불리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끌어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이는 겉으로는 겸손과 사랑을 설교하면서 실제로는 돈벌이에 몰두하는 복음주의 스캔들을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사기 사업처럼 보인다.
과연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진지한 사상가다. 그런데 그의 사상이 광신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그들이 그의 사상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일까? 아마도 그렇다. 이유는 하이에크가 말년으로 갈수록 단순한 고전적 사유재산권 및 자유시장 옹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도덕적 근거, 더 나아가 겉보기에는 과학적으로 보이는 심리학적 또는 민족생물학적 규범으로 보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거의 알지 못하는 영역을 건드리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학파 특유의 기묘한 은유, 경계선에 가까운 인종주의 ("기독교 서구만이 현대 문명의 도덕을 창조했다", p. 35), 그리고 민족 경제학에 빠져들고 말았다.
하이에크가 심리학, 민족생물학, 그리고 ‘타고난’ 도덕적 미덕과 같은 영역으로 발을 들이면서, 슬로보디언이 책에서 다룬 광신적 집단에 문이 열렸다. 그들은 그 문을 넘어 훨씬 더 멀리 나아갔다. 슬로보디언이 설명하듯, 이들은 세 가지 ‘하드(hard)’ 원칙을 신봉했다. 즉, 민족적 또는 인종적으로 결정된 타고난 인간 본성(hard-wired human nature), 금과 같은 경직된 화폐(hard money), 그리고 이민을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국경 통제(hard borders)다. 이 중 적어도 두 가지는 전통적 자유주의를 완전히 왜곡한 것에 불과하다.
전통적 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세계주의적(cosmopolitan)이다. 개인 간 차별을 두지 않으며, 자유주의 원칙을 전 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대안 우파(alt-Right)가 민족, 종교, 인종 간 차이를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전통적 자유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가장 원시적인 경험주의(empiricism)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들에 따르면, 동아시아인은 원래 경제적 성공을 위한 ‘타고난’ 특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이 부유해지자, 동아시아인들은 경제적 성공을 기반으로 통치할 권리를 가진 지적 우월 집단으로 인정받았고, 백인 및 아슈케나지 유대인(Ashkenazi Jews)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만약 내일 아프리카 국가들이 부유해진다면,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흑인들도 통치할 권리를 가진 집단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이는 단지 그들의 ‘타고난 본성(hard-wiredness)’ 이론이 문화와 민족성을 기준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누가 성공하고 실패할지를 예측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들의 경제적 성공에 대한 설명은 완전히 임의적이며, 역사적·구조적 요인에 초점을 맞춘 훨씬 더 합리적인 설명을 거부함으로써, 대안 우파는 자신의 인식론적 무능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유로운 이동권을 거부하는 데 성공했을까? 이는 전통적 자유주의의 핵심 원칙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다루는 대안 우파 사상가들이 밀접하게 연관된 신자유주의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조차도 스스로 인정하듯 매우 빈약하다. 그 논리는 ‘IQ주의(IQ-ism)’에 기반을 둔다. 즉, ‘똑똑한 사람들’이 사는 성공한 지역은, 그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머리가 둔한’ 사람들이 사는 실패한 지역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 자유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난 주장이다. 인간의 선천적 불평등을 하나의 교리(dogma)로 만들고, 이를 정책으로까지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인종 간 교류(결혼 포함)를 강제로 차단하고 생산 요소 중 하나인 ‘노동력’의 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하드(hard)’ 원칙인 ‘경직된 화폐(hard money)’, 즉 금(金)조차도 슬로보디언이 지적하듯 잘못 해석되었다. 심지어 미제스조차도 금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그는 금을 정부의 통화 남용을 막는 기준점으로 보았을 뿐, 대안 우파가 신비로운 특성을 부여한 것처럼 숭배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대안 우파는 베를린 금 박물관 방문객들에게 금괴를 직접 만져보게 하면서, 마치 피부를 통한 경험(epidermal experience)으로 올바른 통화 정책을 깨우칠 수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대안 우파는 모든 핵심적인 논점에서 하이에크 사상이 변질된 형태였으며, 슬로보디언이 표현한 대로 "신자유주의의 돌연변이(mutant strain)"(p.19)이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하이에크 자신도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는 조심스럽고 망설이는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사상의 왜곡과 사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문을 열어주었다.
이 사기는 결국 "하이에크의 변절자들"이 겉으로는 그와 반대되는 태도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은 지적 탐구를 하는 학자도 아니었고, 사상 자체에 관심이 있는 이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확신하게 되겠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자화자찬하며 "지적 기업가(intellectual entrepreneurs)"라 불렀던 것처럼, 본질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의 목표는 자신의 사상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들 자신도 자신의 사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냉소적인 독자라면,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사상이 절대 실행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현실에서 그 사상이 실현된다면, 그들의 지적 파산이 드러날 것이고, 순진한 재벌들과 쉽게 속아 넘어가는 대중에게서 돈을 빨아들이는 영구적인 수입원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저자들은 오늘날 서구 지성사에서 일부로 언급되긴 하지만, 그것은 서구 지성사가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들의 존재가 이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정한 업적은 대중에게 다가올 재앙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적 타락을 가속화하고, 학문적 탐구를 순수한 돈벌이로 변질시킨 데 있다.
P.S.
대안 우파의 비현실성을 트로츠키주의 분파들과 비교할 수도 있다. 둘 다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이론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사상에 진정으로 헌신했던 반면, 대안 우파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오직 돈에만 관심을 두었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출처] Gold, volk and IQs - by Branko Milanovic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
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