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가 낳은 비인간성

출처 : NEOM, Unsplash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한때 최악의 사회주의조차 최고의 자본주의보다 낫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1969년과 1971년에 반복된 이 발언은 루카치가 익숙했던 소련과 동유럽에서의 실제 사회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당시 서구 좌파 진영에서도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그러나 최근 미국에서 추방된 사람들이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군용기에 수갑과 족쇄를 찬 채 인도와 제3세계 국가들로 송환되는 장면을 보면루카치의 이 말이 다시 떠오른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실존했던 사회주의가 어떤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이러한 강제 송환이 보여주는 냉혹함더 나아가 인종적 멸시의 문제다세계에서 가장 앞선 자본주의 국가가 보이는 이러한 태도는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물론 당시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대중들 사이에 인종적 편견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다하지만 이는 체제 차원에서 명확히 배격되었으며사회주의가 몰락한 후에야 표면적으로 드러났다반면최근 들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인종적 관용을 포함한 보다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진보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따라서 이번 추방 사태에서 드러난 비인간성을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닌 '트럼프주의(Trumpism)'—즉현재 미국의 권력을 쥐고 있는 신파시스트 세력의 잔혹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트럼프주의가 자본주의 그 자체와 동일한 것은 아닐지라도이를 완전히 별개의 이질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은 실수다현대의 인종주의는 제국주의의 산물이며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은 제국주의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심지어 자본주의 내 진보적인 흐름조차 제국주의를 과거의 착취적이고 혐오스러운 현상으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근대화"를 전파한 긍정적인 요소로 바라본다이는 특정 사회가 스스로 발전하고 근대화할 능력이 없다는 인식즉 제국주의를 온정적인 존재로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이러한 사고방식 속에는 필연적으로 제국주의를 수행한 인종이 우월하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따라서 오늘날 서구의 진보적 세력이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해도제국주의를 명확히 부정하지 않는 이상 인종주의의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그리고 이들이 제국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서구 강대국들이 최근 벌어진 두 차례의 전쟁을 광범위하게 지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그중 하나는 한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집단학살이며다른 하나는 서구 제국주의 확장의 결과로 발생한 전쟁이다.

인종주의는 단순한 잔재적 편견이 아니라서구 국가의 지배층 내부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며심지어 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인 지배층 내에서도 유지되고 있다그리고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독점자본은 자신들의 패권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기 위해 특정 이주민 집단을 타자화하는 수단으로 인종주의를 적극 활용한다반면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지배 정치 세력이 인종주의에 철저히 반대하며 사회 내 그 어떤 형태의 인종주의적 표현도 억제했다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를 강제적인 억압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하지만 중요한 점은그것이 강제적이었든 아니었든트럼프주의와 같은 입장이 발호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두 번째 측면즉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보다 우월했던 또 다른 점을 살펴보자그것은 바로 완전 고용의 실현이다이는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조성하는 주요한 경제적 요인인 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거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3세계 국가의 사람들이 미국과 같은 나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본국에서 만연한 실업 문제 때문이다물론 이주자들이 모두 절대적 빈곤층은 아닐 수도 있다예를 들어이번에 미국으로 밀입국하려 했던 사람들은 '당나귀 루트(donkey route)'라는 불법 경로를 통해 입국하기 위해 알선업자에게 최대 450만 루피(약 7,200만 원)를 지불했다이는 이들이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었음을 시사한다그러나 그들이 이주를 결심한 근본적인 이유는 두 가지다첫째충분히 보상받을 만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둘째극심한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자신의 경제적 처지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그리고 이 두 가지 문제는 모두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려는 국가적 프로젝트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GDP 성장률이 높고국가 경제 규모가 수조 달러에 달한다 해도이러한 문제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그리고 그 결과일정한 계층의 사람들은 항상 이주를 희망하게 된다문제는독립 후 75년이 지난 지금도 자국을 떠나야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절박하게 느끼는 사회를 우리가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그것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수갑을 찬 채 강제 송환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이것이 바로 오늘날 제3세계에서 자본주의를 추구한 필연적인 결과다.

한편트럼프가 이런 이민자들을 거리낌 없이 추방할 수 있는 이유는 대규모 실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미국 사회 자체가 이주민들에 의해 형성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실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은 이상독점자본은 이민자들을 경제적 희생양으로 삼고이를 이용해 극우적 반이민 정책을 정당화한다독일에서도 가장 좌파적인 정당으로 평가받는 자라 바겐크네히트의 신당조차실업 문제로 인해 극우 세력과 유사한 반이민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반면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은 실업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다오히려 이들 사회는 실업이 아니라 노동력 부족 문제를 겪었다헝가리 경제학자 야노쉬 코르나이는 이를 수요 제약’(demand-constrained)과 자원 제약’(resource-constrained)으로 구분하며자본주의는 수요 제약 경제이고사회주의는 자원 제약 경제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자원이 최대한 활용되었고노동력 또한 100% 활용되었다심지어 여성 노동 참여율이 많이 증가하면서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변화를 불러왔다무엇보다도사회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은 실업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뿐만 아니라실업이 초래하는 자존감의 상실을 경험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자본주의를 추구하는 한 우리는 억만장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노동계급이 식민지 시대의 하층민과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 해외로 떠난 사람들은 끝내 족쇄를 찬 채 본국으로 강제 송환될 것이다오직 사회주의 체제만이 실업의 고통을 없애고국민들이 더 이상 가축처럼 취급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출처] The Inhumanity Engendered by Capitalism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