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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경제학자 J. B. 세이는 어떤 경제에서든 총수요의 문제는 결코 발생할 수 없으며, 생산된 것은 무엇이든 그 자체로 수요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물론 안전핀은 너무 많고 칼날은 부족할 수 있지만, 그러한 미세한 불균형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총생산량에 대한 수요가 부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세이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이 주장은 분명 터무니없는 것이다. 만약 이 법칙이 성립한다면 과잉 생산 위기가 결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세이의 법칙을 비판했으며, 1930년대에 J. M. 케인스와 미하우 칼레츠키도 거의 동시에 그리고 개별적으로 세이의 법칙의 논리적 허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부르주아 경제학은 자본주의의 작동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과학적 타당성이 결여된 여러 모호한 이론적 전략을 통해 세이의 법칙을 재확립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이 모든 것을 여기서 상기시키는 이유는 자유 무역에 대한 모든 주장이 세이의 법칙의 타당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유 무역의 주장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세이의 법칙을 가정하며, 모든 경제가 무역 전후에 완전 고용을 경험하고, 무역은 각 국가가 '비교 우위'를 가진 영역에 특화되어 모든 자원을 완전 고용 상태로 유지하면서 세계 총생산량을 증가시킨다고 가정한다. 이로 인해 자유무역은 모든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이 명제는 세이의 법칙이 유효하지 않기 때문에 성립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는 일반적으로 국내 수요 부족으로 인해 자원의 완전한 활용을 경험하지 못하며, 이는 세계 경제 전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 전체가 수요 제약을 받고 있다면, 한 국가가 무역을 통해 생산량과 고용 수준을 높이면 다른 국가는 첫 번째 국가의 생산량과 고용 증가에 상응하는 생산량과 고용 감소를 겪어야 한다. 따라서 자유무역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간 치열한 생존 경쟁을 초래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가 내포하는 성장 전략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 이 전략은 제3세계 국가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며, 이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인 전략이다. 자본주의가 노동자들끼리 경쟁하게 만드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의지에 반해 노동조합으로 결합하더라도, 고용된 자와 실업자 간의 경쟁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도 제3세계 국가들끼리 경쟁하게 만든다. 각국이 각각의 반식민 투쟁 동안 형성한 연대 의식과 단결을 유지해야 하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제국주의에 맞서 자신들끼리 연대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더 나아가 인류가 생존과 번영을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고려할 때,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가하는 이 반대 방향의 압력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만하다.
자유무역 또는 제한 없는 무역에 기반한 성장 전략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신자유주의의 경험에 따르면 무역에 대한 규제가 제거되면 자본 흐름에 대한 규제도 함께 제거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많은 국가에서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국가들은 세계 금융 흐름에 노출되어 역량이 약화되고, 고용과 생산 수준을 높이기 위한 개입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그들의 통제 밖에 있는 비인격적인 힘, 즉 세계 수요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들에 의존하게 된다. 탈식민 투쟁의 약속은, 탈식민화 이후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가 그 자체의 내재된 경향에 의해 비인격적으로 지배되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이는 식민지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비자유가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전체 구조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하는 "주체"가 아닌, 시장의 자비에 맡겨진 단순한 "객체"의 상태로 격하시키며, 이는 매우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세이의 법칙이 무효하다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모든 윤리적 반대를 제쳐두고 오로지 경제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무제한 무역에 기반한 성장 전략은 국내 시장 확장에 기반한 전략보다 확연히 열등하다. 만약 세계 경제가 수요 제약을 받고 있다면, 이는 그 안에 속한 개별 경제(반드시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들이 수요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3세계 전체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총수요 부족으로 인해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총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국가 개입은 무제한 무역을 특징으로 하는 성장 경로를 따라가는 것보다 고용과 생산의 장기적 수준이 더 높은 경로를 가짐으로써 제3세계 전체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세 가지 주의사항이 필요하다. 첫째, 우리는 제3세계 전체를 이야기했지만, 제3세계 내에서도 수출이 매우 성공적이어서 이미 고용과 생산의 장기적 수준이 매우 높아, 국가가 개입해 총수요를 더 이상 증대시키려 해도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나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이 다른 나라들의 실패를 가리게 해서는 안 되며, 또한 부르주아 경제학이 항상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의 성공이 제3세계 전체에서 재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마치 한 사람이 복권에 당첨된 것을 모든 참가자가 동일하게 경험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둘째, 제3세계 내의 이러한 "성공 사례"들은 일반적으로 총수요를 증대시키는 국가 개입의 결과가 아니라, 수출 성과를 증대시키기 위한 국가 개입의 결과이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제3세계 국가들이 "자유무역"에 맡기기보다는 수출 성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전략이 아닌 신중상주의적 전략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수요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 나라가 신중상주의적 전략으로 수출을 증대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다른 어떤 나라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제3세계에 대한 이러한 조언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경제적으로도 불가능한 목표이다.
셋째,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은 자원을 모두 활용할 경우 도달할 수 있는 잠재 생산량에 비해 실제 생산량이 훨씬 낮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이 국가 개입을 통해 총수요, 그리고 그에 따른 고용과 생산 수준을 높이려 한다면, 외환 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수출을 증대시키는 전략 외에는 대안이 없어 보인다. 단순히 국내 수요를 증대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수출을 증대시키는 전형적인 방법은 '환 절하'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환 절하는 석유와 같은 필수 수입품을 포함한 수입 원자재의 국내 가격을 인상시킨다. 이러한 가격 인상이 최종 가격에 반영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은, 환 절하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을 줄이거나 노동 생산성에 따른 임금 인상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것은 단순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가 부유층이 소비하는 다양한 사치 소비재에 대한 수입 통제를 시행한다면 불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가가 국내에서 총수요를 증대시키기 위해 개입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환 부족 문제를 무역 통제(물론 자본 통제와 함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논리는 외채 부담에 시달리는 국가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모든 채권자들과의 일반적인 채무 경감 합의를 시도하기보다는, 일부 채무를 우선적으로 상환한 후 다른 채무로 순차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향적" 전략은 세계화된 금융 자본과 그 뒤에 있는 지배적인 권력들에 의해 반대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모든 "이론"과 그 이론을 기반으로 제시하는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는 조언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 경제는 그들이 상상하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세이의 법칙은 성립하지 않으며, 세계 경제는 수요 제약을 받고 있다. 따라서 제3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단독으로든 상호 협력하든 간에, 이 수요 제약을 극복하여 고용과 생산을 증대시키고, 외환의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출처] The Pitfalls of Growth Under Unrestricted Trade
[번역] 류민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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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서 가르쳤다. 참세상은 이 글을 동시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