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Susan Wilkinson, Unsplash+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벌이고 있는 표현의 자유 억압은 1950년대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이 주도한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매카시는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예술가와 지식인 세대를 탄압했을 뿐 아니라, 수십 년간 미국의 창의적 삶 전반에 부정적인 흔적을 남겼다. 그 마녀사냥의 희생자에는 대실 해밋, 돌턴 트럼보, 베르톨트 브레히트, 찰리 채플린 같은 예술가와 작가들, 그리고 로렌스 클라인, 리처드 굿윈, E. H. 노먼, 대니얼 소너, 모세스 핀레이, 오웬 래티모어 같은 학자들이 포함되었다.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맨해튼 프로젝트의 로버트 오펜하이머나 브레튼우즈 체제를 구축한 해리 덱스터 화이트 같은 저명한 공공 인물들조차 이 마녀사냥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공산주의 조사를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들에 소환되었다. 이 마녀사냥이 미국에 끼친 피해는 막대했다. 어떤 이들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것도,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 대한 학문적 역량이 매카시즘으로 인해 붕괴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만약 그 지식들이 유지되었더라면, 미국은 그로부터 교훈을 얻고 진흙탕 전쟁에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트럼프가 주도하는 움직임과 매카시즘 현상 간의 유사성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고, 이 점은 콜롬비아 대학교의 브루스 히긴스 교수가 명확히 지적하기도 했다(MR Online, 3월 21일). 처음엔 이 두 사건을 비교하는 것이 과장처럼 보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체포나 추방 사례가 몇 건에 불과하니,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매카시즘과 비교하느냐는 주장도 가능하다. 또한, 현재의 탄압 대상이 미국 시민이 아니라 비자나 영주권을 가진 비시민권자라는 점에서, 미국 시민들이 희생당했던 매카시즘 시기와는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점들에서 위안을 얻기는 어렵다. 트럼프는 마흐무드 칼릴 같은 사례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히며, 앞으로 수천 건의 유사한 조치를 예고했다. 칼릴은 컬럼비아대학 학생으로, 미국 시민과 결혼해 영주권을 가진 상태였고, 아내는 임신 8개월이었다. 그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반대하는 컬럼비아대학 학생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와 연계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추방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비자나 영주권 소지자들이 대규모로 추방되기 시작하면, 가자지구 학살이나 그에 대한 추방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하는 미국 시민들도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들 역시 외국 ‘테러 활동’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탄압 대상이 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특정 집단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면, 그것이 그 집단에만 국한될 것이라 믿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지금 매카시즘식 마녀사냥이 시작되는 시점에 있다는 정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이번 마녀사냥은 매카시가 주도한 과거보다 더 심각한 측면도 있다. 첫째, 칼릴의 추방은 1952년 제정된 미국 이민 및 국적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은 “국무장관이 그 외국인의 존재나 활동이 미국의 외교정책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경우, 그 외국인은 추방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이 적용되면, 비자나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은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비판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칼릴은 하마스와 가까운 인물이라는 증거도 없는 혐의를 받았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저지른 학살을 반대한 것이 반유대주의로 간주되었다. 미국 외교정책은 전 세계에서 반유대주의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므로, 그의 행동은 미국 외교정책에 해로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미국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어떤 외국인도 같은 혐의를 받을 수 있고, 그런 외국인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한 미국 시민들 또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즉, 이번 마녀사냥은 단지 공산주의자나 그 동조자에 국한되었던 매카시즘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 특히 서아시아에서의 이스라엘 식민 확장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 모두가 대상이 된다.
둘째, 매카시즘은 냉전이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펼쳐졌다. 냉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얻은 위신과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제국주의 전략의 일환이었다. 당시 미국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소련을 침략 세력으로 그리며 위협을 과장했지만, 소련은 실제로 침략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매카시즘은 특정한 제국주의 전략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트럼프가 주도하는 지금의 탄압은 어떤 특정 국가의 위협을 이유로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는 신자유주의 질서가 강요한 위기로 벼랑 끝에 몰린 여러 국가들이 대안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제국주의의 공격성을 가리기 위한 시도다. 오늘날의 탄압은 특정 반제국주의 국가의 도덕적 우위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제국주의 자체의 도덕적 파산을 가리고자 하는 시도다.
셋째, 트럼프의 표현의 자유 탄압은 그 범위 면에서 매카시즘보다도 넓다는 점이 명백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대학들에 대해 운영 방식을 지시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연방 기금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컬럼비아대학은 4억 5천만 달러의 연방 기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놓였고, 결국 행정부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대학이 연방 기금을 받기 위해 정부의 입맛에 맞춰 운영된다면, 더 이상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의 공간이 아니라 정부의 기관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매카시즘 시절에도 없던 새로운 방식의 억압이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1950년대 매카시즘보다도 훨씬 광범위한 신파시즘적 사상 탄압의 공세를 목격하고 있다. 물론 신파시즘 정권이 집권하고 있지 않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도 비판적 사고와 표현의 자유는 공격받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사실과 다른 러시아의 팽창주의 위협을 조장하고 있으며(실제로는 NATO가 러시아 국경까지 확장하고 독일군이 리투아니아에 주둔하고 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이스라엘 비판은 반유대주의로 낙인찍히고 있고, 독일에서는 가자지구 학살을 논의하려는 회의가 당국의 명령으로 취소되었다.
결국 제국주의 국가들은 신파시즘 정권이든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권이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으며 점점 더 억압적이 되어가고 있다. 신파시즘 정권이 상대적으로 더 억압적이지만, 자유주의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불어 제국주의 국가들은 군비 지출도 강화하고 있다. 독일은 헌법을 개정해 재정적자 상한을 해제했고, 프랑스와 영국도 국내총생산 대비 군사비 지출을 늘리고 있다. 중심부 자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볼 수 없었던 억압적 군국주의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민중에게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출처] The Return of Mccarthyism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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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