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모습의 트럼프가 과거의 트럼프와 다르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세계와 미국은 국제적·국내적으로 상황을 바꿔 놓은 엄청난 명령과 결정의 홍수에 휩싸였다. 지난 3주는 거칠고 격동적인 시간이었고, 아직 그 기세가 꺾일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트럼프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러한 차이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요소로, 트럼프의 개인적인 성격과 관련이 있다. 2017년 그가 집권했을 때, 그는 공화당 경선을 통과하는 것조차 예상하지 못했으며, 대통령 당선은 더욱 뜻밖의 일이었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의 이념은 부동산 사업과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운영하며 익힌 여러 요소가 뒤섞인 잡탕이었다. 게다가 정부라는 조직 안에서 일해 본 적도 없고 선출직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믿고 있던 모호한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트럼프의 이념 자체는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난 8년 동안 성숙해졌다.
실제로, 누구든 지난 8년 동안 끊임없는 수사와 언론의 비난, 끝없는 법정 공방, 법정에 앉아 자신의 실제 또는 조작된 과거 행적이 낱낱이 공개되는 경험을 하고, 두 차례 탄핵당하며, 최소 한 차례 암살 위협까지 겪었다면 결코 같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그를 정치적으로 제거하거나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스스로를 운명적인 인물로 여기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라면 반드시 역사에 길이 남을 유산을 남겨야 한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그가 이제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기존 체제를 깨부수려는 혁신가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부 효율성 부서(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라는 명목 아래 국가 조직을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런 움직임은 혁명적 변화의 경험이 없거나 그 개념조차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새롭게 보일 수 있다.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이뤄진 혁명적 변화는 1930년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기존 국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었으며, 그 체제에 수많은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다. 이 기능들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마르크스주의 기본 원칙에 따르면, 혁명 운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 국가 기구를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세워야 한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혁명의 다음 시도는 더 이상 과거처럼 관료적·군사적 기구를 한 세력에서 다른 세력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박살 내는 것이다.”(1871년 4월 12일, 쿠겔만에게 보낸 편지) 이후 레닌은 권력을 잡자마자 이를 실행에 옮겼다. 국가 기구를 장악하지 못한 혁명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전복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현재의 혁명은 미국적인 특성이 있다. 미국 정부는 막대한 규모의 관료 기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는 정권이 누구에게 있든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트럼프주의 혁명의 이데올로그들은 이 점을 인식했다. 즉, 국가 기구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되며,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발생하는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특히 심화하었다. 그 이유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한이 상당 부분 외부로 위임되었거나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무부는 정권이 바뀌어도 월가(Wall Street)가 계속 운영을 주도해 왔다(폴슨, 루빈, 므누신, 브래디 등). 연준(Fed)은 법적으로 독립되어 있으며, 미국은 19세기부터 현재까지 법원과 정당이 주요 정치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즉, 입법부가 아니라 사법부가 실질적인 정치 결정을 내리는 구조다. 이러한 요소를 종합하면, 행정부의 권한은 일반적으로 의회와 독립적인 사법부에 의해 제한된다고 여겨지는 것보다 훨씬 더 축소되어 있다. 또한, 금융·재정 정책 및 규제 정책과 같은 주요 결정들은 정권과 상관없이 독립적인 ‘관료들’에 의해 수행되며, 이들은 집권 정당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트럼프주의 혁명의 이론가들(특히 N. S. 라이언스, 그의 대표적인 글 The China Convergence와 American Strong Gods가 있다)은 또 다른 요소를 발견했다. 즉, 국가 기구가 극단적 자유주의자들로 채워졌으며, 이들은 트럼프주의 혁명가들의 세계관을 전혀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 기구 자체가 트럼프주의 행정부와는 별개의 이념적 성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혁명가들은 이 과정이 미국의 지식 생산을 장악한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들은 미국의 최상위 대학들, 싱크탱크, 준정부 기관들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가 기구에 들어오는 인력들을 선별하고, 자신들과 같은 이념을 가진 사람들로 대체한다. 이들은 이를 ‘전문 관리 계급(PMC)’의 지배로 보고 있다. 다만, 필자는 이 설명이 완전히 설득력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 접근법은 갈등의 중심을 이념에 두며, 물질적 토대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적 생산에서의 우위가 국가 기구에 대한 통제로 이어진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진단이 맞다면, 혁명가들이 기존 국가 기구를 장악하거나 파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단순히 새 정부가 들어설 때 이루어지는 고위직 교체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더 깊이 파고들어 일반적인 기술직 자리까지 정치적 임명으로 채워야 한다. 이미 행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정부 기구들이 많고, 우파의 이념적 ‘헤게모니’가 확립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선거에서 계속 승리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한다. 즉, 표면적인 변화만 있을 뿐, 근본적인 체제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혁명가들은 더욱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려 하고 있다.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흔히 그들이 ‘딥 스테이트(deep state)’를 파괴하려 한다고 조롱하면서, 미국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주장이다. 튀르키예나 파키스탄에서 군부가 정권을 초월해 권력을 행사하는 ‘딥 스테이트’와는 달리, 미국에서의 국가 기구 장악 시도는 단순한 당파적 행위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놓친 비판이다.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권력 투쟁이다. 일론 머스크와 그의 지지자들이 미국의 국가 기구와 충돌하는 모습은, 혁명 세력이 미래에 더 깊은 흔적을 남기려 할 때마다 반복되는 전형적인 권력 투쟁의 모습이다.
[출처] Trump, the state and the revolution - by Branko Milanovic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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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랑코 밀라노비치(Branko Milanovic)는 경제학자로 불평등과 경제정의 문제를 연구한다.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LIS)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CUNY)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다.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